개발도상국 주택과 슬럼의 이해

(커버 사진 출처 : 사진 출처: UN-Habitat, 2016)

(편집장 주) 역사를 통해 인류가 이룩해 놓은 위대한 업적 몇가지를 꼽는다면 그 안에 "도시"는 반드시 들어갈 것입니다. 수백 수천만의 사람이 좁은 면적의 땅에 고밀도로 모여 살면서도 위생이나 치안, 오염 등을 철저히 관리하면서 모두가 공존할 수 있게 해 주는 도시라는 공간은 인류 최고의 발명품이라 해도 손색이 없을 것입니다. 도시는 그 구성원들의 삶의 공간이라는 사회 과학적인 의미 뿐만 아니라 상하수도, 교통, 환경 등을 포함하는 과학 및 공학적 의미도 지니고 있습니다. 따라서 the Science Life에서는 도시 사회학 전문가이신 김호정(필명)님을 모시고 도시와 슬럼, 그리고 이의 사회 과학적 의미를 개발 도상국의 예를 들어서 한번 짚어 보는 코너를 마련하였습니다.

그 첫번째 시간, "개발 도상국 주택과 슬럼의 이해" 입니다. 어려운 시간 내 주신 김호정님께 이 서문을 빌어 감사드립니다.

 

개발도상국 주택과 슬럼의 이해

지구상에는 어마어마한 숫자의 사람들이 슬럼에 살고 있습니다. 2013년 작성된 UN 새천년개발목표 보고서는 슬럼에 거주하는 빈민의 숫자가 1990년 6억 5천만, 2000년 7억 6천만, 그리고 2013년 8억 6천만으로 증가했다고 보고합니다. [1] 비율로 따져 보면 개발도상국 도시 인구의 30% 정도인데요, 그 비율은 점차 줄어드는 중에 있지만, 도시인구가 늘어나면서 숫자는 계속 늘고 있습니다. [2]

저 숫자가 어떻게 세어졌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슬럼이라고 불리우는 조건도 아주 분명한 것은 아닙니다. 다만, 슬럼이라고 할 때는 아래와 같은 이미지를 연상할 수 있습니다. 빽빽하게 들어선 좁은 집들. 햇볕은 잘 들어올 지, 바람은 잘 통할지 궁금하고, 상하수도는 제대로 갖추어 져 있을지 걱정이 되지요. 지금 이 글을 읽고 계실 여러분께는 이런 풍경이 낯설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8억 6천만명, 남한 전체 인구의 열배가 넘는 사람들이 이런 집에 살고 있답니다.

 

단층과 복층의 집들이 빽빽하게 들어서 있다. 지붕이 날아가는 것을 막기 위해 돌들이 올려져있다. 비가 새는 것을 막기 위함인지 지붕에 비닐을 올려둔 것 같은데, 오래 된 비닐들은 쓰레기처럼 보이기도 한다. (사진-김호정)

 

슬럼에 대해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그 기준이 아주 명확한 것은 아닙니다만, UN-Habitat보고서는 다음의 다섯가지 조건 중 한가지 이상이 결여된 곳에 사는 사람들을 슬럼 거주자라고 부릅니다.

– 극심한 기후조건으로부터 당신을 지켜줄 튼튼한 ‘집’이 있을 것.

– 한 방을 세 명 이하가 쓰고 있을 것.

– 물을 적당한 가격으로 쉽게 이용할 수 있을 것.

– 개인이 혹은 몇 사람이 공동으로 사용하는 화장실이 있을 것.

– 아무렇게나 강제로 쫒겨나지 않을 보호장치가 있을 것.

수 많은 사람들이, 비단 안 좋은 집에 산다는 것 뿐만 아니라, 엄청나게 불편한 생활을 하고 있음을 짐작 해 볼 수 있습니다.

슬럼은 기본적으로 ‘도시화’ 때문에 생겨납니다. 한국 사람들은 사회 시간에 ‘이촌향도현상’을 배웠던 기억이 있지요. 1960년대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찾아 서울로 이주하였는데, 집이 부족했기 때문에 강변이나 산비탈에 판자촌을 이루어 살았었다고 배웠습니다. 개발도상국에서 슬럼이 발생하는 이유도 똑같습니다. 한국말의 판자촌, 불량촌, 달동네, 그리고 지금은 쪽방촌 등이 모두 슬럼에 해당되는 이야기입니다.

도시는 시골에 비해 다양한 기회를 제공합니다. 직장 외에도, 교육 여건, 병원, 문화시설 등 사람들이 도시로 몰려들 이유는 많습니다. 하지만 특별한 기술이나 지식이 없는 많은 사람들은 좋은 일자리를 찾기가 어렵지요. 꿈꿔왔던 삶과는 다르게, 이 사람들은 건설 현장에서의 일용직이나 소규모 가게의 점원 등 비공식 적인 부분에서 일 하며 적은 수입으로 생계를 이어갑니다.[4] 이런 사람들은 주로 번듯한 집을 사거나 임대할 수 없기 때문에, 비공식 주택부분인 슬럼에서 생활하게 됩니다.

 

(왼쪽) 한 할머니의 침실. 빛이 전혀 들어오지 않아 플래시를 터트렸다. 침대가 겨우 들어가는 방에는 눅눅한 기운이 가득했다. (가운데) 단층과 복층의 집들이 좁은 골목을 사이로 늘어서 있다. 골목은 포장되어 있지 않아 비가 올 때마다 질척거린다. (오른쪽) 어떤 집 들은 옹벽을 한쪽 벽 삼아 지어지기도 했는데, 집 안과 밖의 경계가 모호하다. 골목에서 바로 연결되는 간단한 계단을 통해 2층 침실로 올라갈 수 있다. (사진 – 김호정)

우리 모두는 집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집에서 비, 바람, 추위를 피할 수 있습니다. 집에서 쉼을 얻고 우리는 학교에 가거나 직장에 다닐 수 있습니다. 이처럼 집은 다양한 기능을 하고 있으며 인간의 삶에서 필수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주택을 사유재임과 동시에 공공재로 인식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개발도상국의 슬럼은 집의 역할을 잘 해 내지 못합니다. 재충전을 위한 안락한 보금자리가 되어 주지 못할 뿐 아니라, 강가나 산비탈 등 위험한 지역에 자리잡은 경우 거주자들을 실제로 위험에 빠뜨리기도 합니다. 나아가, 슬럼의 불안한 생활환경은 거주자들을 각종 범죄에 노출시키기도 합니다.[5]

이런 문제에 대해 개발도상국 국가들이나 국제기구들이 아예 손 놓고 있지는 않았습다만, 아주 성공적으로 대처하지는 못했습니다. 슬럼에 거주하는 인구가 계속 증가하는 것을 보아 알 수 있지요. 공공주택을 공급하려는 노력은 도시 빈민 인구의 증가를 따라잡지 못했다는 비판이 있고,[6] 주택 금융 지원은 거주자들의 부채와 빈곤을 증가시켰다는 비판이 있습니다. [7]

힘든 상황이지만, 개발도상국의 사람들은 스스로 내일을 만들어 나갑니다. 주민들은 스스로 집을 지어 나가고, 그 집에 살며 꾸준히 집을 가꾸어 나갑니다. 이런 방식을 self-help housing(자조 주택) 혹은 incremental housing(점진 주택)이라고 부릅니다. 너무 빽빽하게 들어설 경우에는 슬럼화를 피할 수 없게 되지만, 적당한 땅과 인프라 공급 등의 지원이 더해진다면, 언젠가는 슬럼의 고통에서 벗어나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는 집을 이뤄낼 수 있는 가능성이 있습니다. 다음 글에서는 이러한 개발도상국 주민들의 노력에 대해 조금 더 살펴보겠습니다.

 


참고문헌

1. United Nations (2013), The Millennium Development Goals Report, 2013, United Nations
2. UN-Habitat (2016), Slum Almanac 2015/2016—Tracking the Lives of Slum Dwellers, UN-Habitat
3. UN-Habitat (2016), State of the world’s cities 2006/7
4. Bangasser, P. E.(2000), The ILO and the informal sector: and institutional history, Employment paper 2000/9, ILO
5. Davis, M.(2007), “Planet of Slums”, Verso
6. Gattoni, G.(2009). A Case for the incremental housing process in sites-and-services programmes and comments on a new initiative in Guyana. Inter-American Development Bank, Department of international Capacity and Finance, Washington D.C
7. Jones, B.G. (2012). Bankable slums: the global politics of slum upgrading. Third World Quarterly, 33(5), 769-7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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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정

예전에는 많이 먹어도 살이 찌지 않았어요. "집"과 "도시"에 대해 연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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