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도상국 사람들의 집 짓기 (self-help housing)

커버사진: John Hill, 2009
지난 글에서는 슬럼이란 무엇인지, 슬럼은 왜 형성되는지, 슬럼 거주자의 어려움은 무엇인지를 간단히 살펴보았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개발도상국의 주요 주택 공급 방식인 self-help housing(자조주택)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당신이 어떤 개발도상국에 살고 있는 젊은이라고 상상 해 봅시다. 직장을 찾아 도시로 향했습니다. 당장 집을 구할 돈이 없습니다. 그렇다고 번듯한 직장이나 담보가 있어서 은행에서 대출을 받을 수도 없습니다. 도시의 구석진 부분들을 둘러보니 비슷한 형편의 사람들이 누구 땅인지 모를 곳에 얼기설기 집을 짓고 살고 있습니다. 먼저 자리를 잡아 살고 있던 친척이 빈 땅을 한군데 소개 해 줬습니다. 일단 세멘트와 벽돌을 한 트럭 사다가 방을 하나 만듭니다. 잘 모르는 부분은 옆집 아저씨게 물어 봅니다.

며칠 지나지 않아, 아직은 단칸방이지만, 일단 내 집이 생겼습니다! 몇달간 일을 했더니 방을 하나 더 만들만한 돈이 생겼습니다. 아이들을 위해 작은 방을 만들어 줍니다. 그리고 그 다음달에는 페인트 칠을, 또 다음달에는 주방도 만들어 봅니다. 언젠가 2층도 올려서 그럴듯 한 집을 이룰 날도 기대 해 봅니다!’

마당 앞에 쌓여 져 있던 벽돌이 실제로 집이 되어 가는 과정을 촬영했다. 일단 자리를 잡아 두고, 형편 되는대로 자재를 모은 후 조금씩 집을 늘려나가거나 완성시켜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사진-김호정)

이처럼 ‘능력껏, 조금씩, 스스로’ 집을 짓는 방식을 self-help housing (자조주택) 혹은 incremental housing (점진주택) 이라고 부릅니다. 강조하는 바가 ‘스스로’ 인지, ‘점진적’ 인지에 따라 연구자들은 다른 용어를 사용하지만, 같은 현상을 나타내는 표현입니다. 이 글에서도 두 개념 모두를 다루지만, 저는 ‘스스로’를 강조하기 때문에 자조주택(self-help housing)이라고 쓰려고 합니다.

종합적으로 정리하면, 자조주택은 스스로의 노력을 통해 집을 짓는데, 한번에 완성하는 것이 아니라 차근차근(incrementally) 살면서 지어나가는 방식입니다. 그리고 어쩔 때는 정부 등 외부의 지원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assist self-help). 딱히 몇 %라고 말 하기는 어렵지만, 개발도상국에서는 정말 많은 부분의 집들(혹은 대부분)이 이런 방식으로 지어진답니다. [1]

석기시대의 움집이나 가까운 과거의 초가집을 생각 해 봅시다. 건축가, 시공자, 건축주가 따로 있었을까요? 그렇게 상상하기 힘듭니다. 이처럼 자조주택은 인류가 존재한 이후 집을 지어나가는 방식이었습니다.

 

현대 선진국의 건축은 세 주체가 역할을 분담하여 수행된다. 그러나 개발도상국에서의 self-help housing은 건축주가 설계, 시공, 감리를 모두 맡아 수행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그것도 일단 살면서… (사진 출처: 인터넷 여기 저기서 떠도는 그림)

 

자조주택이 본격적으로 학계에 등장한 것은 1960년대 이후라고 볼 수 있습니다. 당시 존 터너로 대표되는 학자들은 남반구의 자조주택 단지를 ‘승리의 장(place of triumph)’으로 불렀습니다. 그는 주민들이 재정 여건에 따라서 점차적으로 집을 개선 해 나가는 과정을 관찰하며 자조주택에 ‘자아실현’의 의미를 부여했고, ‘집 지을 자유(freedom to build)’ 그리고 ‘동사로서의 집(housing as a verb)’를 강조했지요. [2]

물론 비판도 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이 스스로의 집을 짓는 과정에서 대가 없이 노동력을 투입하기 때문에 ‘이중 착취’의 구조를 형성할 수 있다는 비판이 대표적입니다. 반면, 자조주택이 도시 빈민들에게 저축과 투자의 수단이 되기도 하고 [3], 또 고용과 소득을 창출하기도 한다는 긍정적 평가도 있습니다[4]. 나아가 한 사람의 삶에서 집이 얼마나 중요한 ‘실용적 가치’를 갖는가에 대해 생각 해 볼 때[5], 그리고 딱히 이 방법 말고는 대안이 없다는 것을 생각 해 볼 때 [6], 저는 자조주택의 긍정적으로 평가에 더욱 눈길이 갑니다.

각각의 책은 1976년, 1982년, 2014년에 나왔다. 제목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옹호도 되고 비판도 당하는 가운데, 자조주택은 여전히 개발도상국 주택공급에서 중요한 역할을 차지한다. 세권 다 가지고 있다는 자랑이 핵심!

물론, 너무 빽빽하게 지어지고, 상하수도 등 인프라가 공급되지 않고, 주민들이 언제든지 쫒겨날 처지에 있다면, 자조주택은 그저 슬럼을 형성해 나가는 방식에 불과할 것입니다. 하지만 적절한 정부의 지원이나 가이드라인을 통해 그럴듯한 집이 지어지고 살기 좋은 마을이 만들어 질 수 있다면, 그야말로 ‘승리의 장’이라고 불리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 자조주택에서 한가지 주목할 점은, ‘계속 그 땅을 이용할 수 있는 안정성 (security of tenure)’ 이 주택의 지속적인 개량에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입니다. [7] 거주자가 점유하고 있는 땅이 국유지이든 사유지이든 간에, 쫓겨날 위험이 없다면 최대한의 자원을 동원해서 집을 가꾸어 나가겠지요. 앞으로도 따로 다루지는 않겠지만, 독자들이 상식적으로 ‘안정성’의 중요성을 인식하시리라 생각합니다.

 

영화 홀리데이의 한 장면(좌). 극 중 주인공은 무허가 판자촌 강제철거에 맞서다가 감옥에 가게 된다. 지금도 완전히 사라진 이슈는 아니지만, 특히 올림픽을 준비하던 80년대에는 도시미화를 명분/목적으로 불량 주거지의 강제 철거가 많았는데, 83-88년 동안 약 4만 8천채의 건물이 철거되었다고 한다.[8] (사진 출처- (좌)씨네21, (우)한겨레 21)

 

지난 번 글과 이번 글을 통해서 개발도상국 주택과 슬럼을 살펴보았습니다. 다음 글에서는 집 밖의 이야기, 동네 주거환경에 대해 조금 더 살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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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1] Bredenoord, J., Van Lindert, P., & Smets, P. (Eds.). (2014). Affordable housing in the urban global south: seeking sustainable solutions. Routledge.

[2] Pugh, C.(1995). Urbanization in Developming Countries: An Overview of the Economic and Policy Issues in the 1990s. Cities, 12(6), 381-398

[3] Jimenez, E. (1982). The economics of self-help housing: theory and some evidence from a developing country. Journal of Urban Economics, 11, 205-208

[4] Rahman, M. (2011). Sustainable Squatter Housing in the Developing World: Changing Conceptualization. Archnet-IJAR, 5, 143-159

[5] Marcussen, L. (1990). Third World Housing in Social and Spatial Development. Avebury

[6] Jenkins, P. Smith. H & Wang, Y.P. (2007). Planning and Housing in the Rapidly Urbanising World. Routledge

[7] De Soto, H.(2000), The Mystery of Capital: Why Capitalism Triumphs in the West and Fails Everywhere Else. Basic Books

[8] 한겨레 21, 2010-11-24. ‘쌍팔년도식’ 손님맞이는 이제 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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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는 많이 먹어도 살이 찌지 않았어요. "집"과 "도시"에 대해 연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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