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국과 개도국 도시 개발의 차이

커버이미지 출처: cosmolearning.org

지난 글들에서는 개발도상국의 도시화와 슬럼의 형성, 그리고 개별 집들은 어떻게 지어지는지를 살펴보았습니다. 오늘은 초점을 마을로 옮겨서, 왜 개인들의 집을 짓는 노력이 슬럼으로 귀결되는지 살펴보려 합니다.  문제를 인식 한 후에는, 개선을 위한 어떤 노력들이 있는지에 대해서도 살펴보겠습니다.

 

선진국형 도시개발과 개도국형 도시성장의 차이

우리는 새로운 도시가 어떻게 생겨나는지 잘 압니다. 신도시를 개발의 필요성이 확인되면, 대상지를 정한 후에 계획을 세웁니다. 주거지역, 상업지역, 공업지역 등으로 구분된 토지이용계획을 세우고, 이에 맞게 길, 전기, 상하수도 등 인프라를 공급하지요. 그 후에야 비로소 아파트나 상가 등 건물이 들어서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물론, 공사가 끝난 후에 사람이 들어와 살게 되지요.

비교적 최근에 계획되었고 지금도 건설중인 ‘세종시’의 경우를 간단히 살펴보겠습니다. 여차저차 하여 2004년에 ‘신행정수도 건설 특별법’이 제정되지만, 그 해 헌법재판소에 의해 ‘관습헌법’이라는 논리로 수도이전이 무력화되고, 다음해 ‘행정중심복합도시’라는 이름으로 세종시 건설이 진행되기 시작합니다. 2006년에는 ‘행정중심복합도시 건설 기본계획’이 확정되고, 여차저차 기타등등 일 들이 있은 후, 2011년 말, 2,242세대가 첫 입주를 하게 됩니다. 자세한 연혁은 ‘행정중심복합도시 연혁’ 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하여튼, 제가 하고픈 말의 핵심은, 일단 계획을 하고, 큰 그림을 그리고, 작은 그림을 그리고, 길을 내고, 집을 짓고, 그 이후에 사람이 살게 된다는 말입니다. 이를 Planning-Servicing-Building-Occupation 의 약자를 따서 PSBO모델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우리 말로는 ‘계획→공급→건설→거주’ 방식이라고 이해할 수 있겠습니다.

 

 

반면, 개발도상국의 도시는 정 반대의 양상으로 성장합니다. 앞의 두 편의 글에서 살펴보았듯이, ‘일단 점유하여 살면서 집을 지어 나가는, 후에 상하수도가 공급되면 좋고, 길이나 공원도 생기면 좋은’, 즉 OBSP (Occupation-Building-Servicing-Planning, 거주→건설→공급→계획) 방식으로 도시가 형성되는 것입니다. ‘공급’이나 ‘계획’ 과정 까지 가기 위해서는 상당한 시간이 걸리는 일이 태반이고, 이런 배경에서 적당한 서비스가 결여되는 ‘슬럼’이 형성되는 것입니다.

 

 

자조주택의 점진적 프로세스와 과밀화 과정에 대한 개념도[1] (출처- Bredenoord and Van Lidert, 2010)

이런 OBSP 방식 하에서는 주거민이 심각한 주거 환경을 마주하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고 과밀화는 여러모로 주거 환경에 부정적 영향을 끼치는데요, 일단 햇볕을 덜 받게 되고, 통풍에도 문제가 됩니다. 소음은 물론이고, 옆집에서 뭘 하는지가 훤히 들여다 보이는 상황을 맞습니다. 제대로 된 길이 없다 보니, 응급 상황시 구급차가 진입하지 못하게 되지요. 좀 더 친근한 예로는, 주소 체계가 제대로 정비되어 있지 못하면, 치킨을 배달시켜 먹을 수가 없게 됩니다. 찾을 수가 있어야 배달을 하죠!

구글로 검색해 본 인도의 한 슬럼. 아예 길이 없네요. 과연 치킨이 배달될 수 있을까요? (Google Maps에서 캡쳐)

이런 물건도 무용지물. (합성사진. 출처)

 

공급과 계획이 나중에 따라오는 OBSP 방식은 아주 비효율적인 방식임에 틀림없지만, 그래도 아예 손을 놓고 있지는 않습니다. ‘슬럽 업그레이딩’이라는 이름으로 세계 곳곳에서 여러 프로젝트들이 진행되고 있는데요, 1969년 이래 시작된 인도네시아의 KIP(Kampung Improvement Program)의 예를 통해 어떤 업그레이드 들이 진행되는지 이해 해 볼 수 있습니다.

KIP 프로그램을 통해 정비된 길. (사진 출처: Asian Community Architects Forum, 2010)

 

이렇게 번듯한 길이 생기는 등 점차 개선이 되고 있다고는 해도, OBSP 방식은 아주 부적절한 방식입니다. 세상은 우리의 기대처럼 ‘깔끔하게’ 작동하지 않습니다. ‘선계획-후실행’이 우리에게는 당연할지 모르겠지만, 당장 내일을 알 수 없는 사람들에게 ‘계획’이라는 말은 먼 나라 남의 이야기가 될 수도 있는 것이겠죠.

문제는, 어느 정도 먹고 사는 각 나라의 지도자들입니다. 필자는 몇년 전 중앙아시아의 한 개도국의 도시계획을 담당하고 있는 고위직 공무원들 앞에서, 해당 도시의 정비 전략에 대해 발표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이런 저런 비판, 그리고 향후 가능성을 발견 해 나가는 내용이었는데요, 인프라 공급은 어려웠을지라도 길이라도 내 두었으면 좋았을 것이다라고 했더니, 글세 한다는 말이, 그렇게 많은 인구가 도시로 몰려들 줄 그 누구도 몰랐다더군요. 화가 나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하고, 그러다가는 또 ‘원조’라는 이름으로 잔뜩 들어와있는 국제기구들은 뭘 한건가 싶기도 하고… 저는 여전히 혼란스럽습니다.

오늘은 개발도상국의 도시 성장은 선진국의 도시개발 과정과 ‘반대로’ 일어난다는 점을 살펴보았습니다. ‘과학적 사고’의 중요성이 묻어나길 바랬는데 어땠을지 모르겠네요. 다음 글에는, 중앙아시아의 한 개발도상국 사례를 통해서 지금까지 살펴본 도시화, 슬럼의 형성, 자조주택, OBSP 등의 문제를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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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정

예전에는 많이 먹어도 살이 찌지 않았어요. "집"과 "도시"에 대해 연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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