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과 종교의 접점 – 서울대 우종학 교수 인터뷰 1

 (photo : the Science Life)

과학자들은 일반인에 비해 종교를 받아들이는 다소 비율이 낮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당수의 과학자들은 종교를 가지고 있습니다. 아래 자료에 따르면 여전히 과학자 세 명 중 한명은 신의 존재를 믿고 있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이들은 과학과 종교간의 괴리를 어떤 식으로 정리하고 극복할까요. 혹은 그것이 괴리가 아니라고 인식하는 것일까요? 아니면 과학의 영역과 신앙의 영역을 독립적인 세계로 인식하는 것일까요?

 

Pew Research center (2009) 원본보기

the Science Life (이하 tSL)에서는 종교와 과학간의 접점에서 대중을 위한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서울대학교 물리 천문학부 우종학 교수를 만났습니다. 워낙 빠듯한 스케줄을 소화하시는 분인지라 인터뷰는 우교수의 학회 일정에 맞추어 멀리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진행되었습니다.

모태 기독교 신앙을 가지고 있는 천문학자로서 종교와 과학간의 대화에 많은 노력을 기울여 온 그는 양쪽 진영 모두로부터 찬사비판을 동시에 받는 위치에서 꿋꿋이 지난 수 년간 서 왔으며, 수 많은 신문 칼럼들과 강연들을 통해 국내에서 종교와 과학의 대화에 힘쓰고 있는 대표적인 과학자로 손꼽힙니다.

그의 대표적인 저서 “무신론 기자 크리스천 과학자에게 따지다 (IVP)“는 2009년 발간 이후로 지속적인 인기를 거듭하여 2014년도에는 확대 개정판으로 스테디 셀러의 반열에 이름을 올리고 있습니다.

클릭하시면 서평을 보실 수 있습니다.

그동안 우종학 교수의 청중들은 대부분 문자주의 성경 해석을 하는 근본주의적 기독교인이거나 혹은 젊은 지구론을 주장하는 창조 과학계의 사람들이었는데요, 이번 인터뷰에서는 그 반대편인 과학쪽에서 바라보는 기독교 과학자로서 우종학 교수와의 인터뷰를 진행하였습니다. 총 4시간여 동안 진행된 자유로운 분위기의 인터뷰에서 많은 의미있는 대화들이 오고 갔으며, 과학과 종교와의 양립에 관해 고민하시는 분들에게 이러한 견해도 있다는 점을 보여줄 수 있는것 같습니다.

the Science Life에서는 이 대화 내용이 많은 분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고 판단하여 이 대화 내용을 기사화하였으며 총 2회에 걸쳐 여러분과 나누겠습니다.

(기사 전반에 걸친 우종학 교수의 견해는 the Science Life의 관점과는 독립적이며 tSL의 견해를 대변하지 않습니다.)

 


우종학 교수

Photo : the Science Life
서울대학교 물리천문학부 교수이며 거대 블랙홀과 은하 진화를 연구하는 천문학자다. 예일 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후 산타 바바라 소재 캘리포니아 대학교와 UCLA에서 연구원으로 일했고, 미항공우주국(NASA)이 젊은 연구자에게 수여하는 허블 펠로십을 수상했다. 그리스도인이자 과학자인 그는 과학에 관한 균형 있고 건강한 시각을 그리스도인들에게 제공함으로써 교회의 필요를 채우는 일을 주요 사역으로 삼아 다양한 강연과 저술 활동을 펼치고 있다. 과학과 신학의 대화를 모토로 연구하고 교육하는 단체인 “과학과 신학의 대화” 설립자로서 대표를 맡고 있으며, 그리스도인 과학자의 소박한 삶 이야기와 과학과 신앙에 대한 글을 담은 블로그 “별아저씨의 집”도 운영 중이다.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 소속 교회에서 모태신앙인으로 성장하여 대학생, 대학원생 시절에는 IVF(한국기독학생회)와 GSF(기독대학원생회), 기독교학문연구소에서 활동했고, 유학생 시절에는 KOSTA(국제복음주의학생연합회)에서 리더와 간사 등으로 섬겼다. 「천체물리학 저널」(ApJ) 등 국제 학술지에 약 100여 편의 논문을 게재했고, 저서로는 『블랙홀 교향곡』(동녘사이언스, 2009), 『무신론 기자, 크리스천 과학자에게 따지다』(IVP, 2014 확대개정판), 『기원』(휴머니스트, 2016, 공저)이 있고, 번역서로는 『현대과학과 기독교의 논쟁』(살림, 2003), 『쿼크, 카오스 그리고 기독교』(SFC, 2009), 『우주의 본질』(시그마프레스, 2015, 공역)이 있다.

 

과학의 여집합은 종교인가?

tSL : 귀한 시간 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동안 과학과 신학과의 경계에서 많은 담론과 토론을 이끌어 오셨는데요, 주로 청중이 기독교계인 것으로 보입니다. 오늘은 그 반대편인 과학계쪽에서 몇가지 질문을 드려볼까 합니다.

과학과 신학의 중요한 차이점 중 하나는 지식과 무지의 경계에 대한 접근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무신론의 관점에서는 우리가 연구해서 아는 부분까지는 알되, 그것을 넘어서는 부분, 즉 우리가 알지 못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모르는 부분으로 남겨두어야 한다고 봅니다. 하지만 종교는 그 영역을 남겨두지 않고 신의 영역이다라고 봅니다. 이러한 시선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그것이 바로 무신론자들이 전형적으로 갖는 이원론입니다. 과거에는 모르는 영역이 많았죠. 점점 과학으로 설명되는 영역이 늘어나니까 아직 과학이 탐지하지 못하는 영역에만 신을 가둬 두는겁니다. 실제로 제가 아는 사람들은 우리가 알 수 없는 영역에만 신이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과학으로 중력의 현상이나 날씨를 예측하지만, 그 영역 또한 신의 영역이라고 보는겁니다. 종교와 과학의 영역을 나눠서 여기는 종교, 여기는 과학이라고 나누는 것이 아니라, 하나는 작동 원리인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목적으로 보는거죠.”

Photo : the Science Life

“이렇게 예를 들어 볼 수 있습니다. 물이 끓는 것은 열이 가해짐으로서 발생하는 과학적 현상이지만, 누군가 라면을 먹으려고 끓이는 것일 수도 있는거죠. 둘 중 한가지만 선택할 필요는 없습니다. 무신론자의 입장에서는  이런 다른 차원의 설명을 인정하지 않아요. 이것은 너무나 단순화 된 기계적인 영역이고 저는 조금 지나치다 봅니다. 자연주의나 무신론은 어떻게라는 질문에만 주목하고 왜라는 질문은 무시하는 셈입니다. 자연주의나 무신론이 되면 “가치”라는 것이 성립이 안됩니다. 어떤 사건은 그 전 사건의 결과물에 불과하니까요.”

 

자유의지 (Free will)

tSL : 그런데 예를 들면, 유전자를 퍼뜨린다는 것도 생존이 중요하다라는 가치를 미리 깔고 들어가는 것이거든요. 하지만 그게 증명된 것은 아닙니다. 마치 생존에 유리한게 가치가 있다고 약간 자연스럽게 함의하고 넘어가는거죠. 이런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무신론자들 중에는 인간의 자유의지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스티븐 호킹은 인간에 자유 의지는 없다고 선언하고 가요. (편집자 주 : 아래 삽화 참조) 이게 무슨 말이냐면 모든 것이 인과 관계에  의한 것이냐, 예를 들어 짜장면을 먹을지 짬뽕을 먹을지 결정할때, 인간이 자유 의지에 의해 그런것 같지만 사실은 다 뇌의 작용에 의해 내가 짜장면 보다는 짬뽕을 선택하게 되는 것이다 라는관점인데, 이것은 전혀 자유 의지를 인정하지 않는 결정론적 세계관인 것이죠. 그래서 이런식으로 생각을 하게 되면 결국 결정론적인 세계관으로 갈 수 밖에 없습니다.

스티븐 호킹의 “Grand design”중 자유 의지 (free will)에 관한 부분
“인간은 “자유의지”를 가지고 있을까? 만약 가지고 있다면 그것은 진화의 과정 중 어디에서부터 시작되었을까? 해조류나 박테리아가 자유 의지가 있을까? 아니라면 그들의 움직임은 과학적으로 설명 가능한 반사적인 행동인걸까? 다세포 생명체만 자유의지를 가지고 있을까? 혹은 포유류만? 침팬지가 바나나를 먹거나, 고양이가 소파를 물어 뜯거나 하는 것이 자유 의지에 의한 것이라고 생각하곤 한다. 하지만 959개의 세포로 이루어진 꼬마 선충 (C. elegans)의 경우는 어떨까? 꼬마 선충은 “음… 오늘 저녁에 먹은 박테리아는 정말 맛있었어”라고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꼬마 선충은 섭식행위에 대한 아주 명확한 선호도를 가지고 있어서 스스로의 경험을 토대로 조금 덜 맛있는 지금의 먹이에 안주하거나, 더 나은 다른 맛있는 먹이를 찾아 가거나 하는 등의 선택을 한다. 이것도 자유 의지의 발현일까?”

tSL : 그것이 자유 의지가 아니거나, 혹은 랜덤 (random)에 의한 선택일 수 있다고 봅니다. 그 랜덤을 우리가 자유 의지로 착각하는 것은 아닐까요?

“그것은 철학적인 문제일 수 있어요. 뉴턴 역학이라면 반드시 무언가가 이 지점에 떨어져야 하는데, 양자 역학에서는 아무데나 떨어질 수 있단 말이죠. 그렇다면 원래 자연 세계 내에 미결정성이 있는 것이냐, 아니면 이게 실제로는 결정되어 있는 것인데 우리가 몰라서 결정되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것이냐. 그게 양자 역학 해석의 가장 큰 숙제입니다.  과학적으로 밝히기도 쉽지 않고요. 자연 자체에 미결정성이 있다 없다, 다른 말로는 신이 주사위 놀이를 하냐 안하냐는건데, 이건 현재 과학의 영역을 넘어섭니다.

만얀 인간이 자유 의지가 없다면, 그리고 모든 것이 인과관계, 혹은 랜덤에 의한 것이라면, 윤리적으로 큰 문제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내 행동에 대한 책임을 물을 수 없게 되거든요. 만약 누군가가 어떤 범죄를 저질렀는데, 그게 그런 유전자가 있고 나는 그에 따랐을 뿐이다라고 이야기 한다면 책임을 지울 수 없게 됩니다. 자유 의지 문제가 간단해 보이지만 인간 윤리의 근본을 흔들 수 있는 복잡한 문제예요. 스티븐 호킹은 자유 의지가 없다고 하지만 그건 철학계에서 크게 논란이 되는 이슈 입니다.”

 

tSL : 심신 장애를 이유로 감형 해 주는것. 이런 것은 우리에게 자유 의지가 없다는 것을 어느정도 인정하는 것은 아닐까요?

“그런 특별한 상황에서는 우리가 자유 의지의 부재를 인정할 수 있지만, 일반적인 상황에서 자유 의지가 있는지 없는지를 밝히는 것도 사실 불가능합니다. 만약 우리의 매일의 생활이 이미 결정된 것들에 대한 랜덤한 스냅샷들 뿐이라면 인간의 사회적 행동에 대한 판단 자체를 무너뜨릴 수 있습니다. 어떤 정신병을 앓고 있는 사람이 약을 계속 먹어야 하는데 한 이 주 정도 안먹고 살해 충동이 와서 살인을 했다.. 그런 것은 인과 관계가 워낙 명확하지만, 그런게 보이지 않는 영역들에 대해서 자유 의지가 없다고 하는 것은 무리라고 봅니다.”

 

심신장애자의 범죄에 대한 처벌을 제한하고 있는 형법 제 10조 1, 2, 3항

 

tSL : 인간의 감정이 거의 대부분 화학 반응에 의한 결과라는 것이 현대 정신 분석학의 방향입니다. 또 대부분의 정신 질환이 약물을 통해 성공적으로 치료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이런 면에서 볼때 인간은 화학적으로 돌아가는 기계라고 보는 관점도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그건 인과 관계를 잘 생각해야 하는데요, 뇌의 어느 한 부분을 망가뜨리면 말을 못한다던지 합니다. 어떤 호르몬 약을 먹으면 기분이 좋아질 수도 우울해 질 수도 있고요.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거꾸로 우울함이나 기분 좋음이 이런 단순한 화학적 작용에 불가한거냐, 이건 아니라는 겁니다. 다시 말하자면 그런 기계적인 화학 반응은 어떤 정신이나 감정이 표현되기 위한 도구인거예요. 도구가 망가진다고 해서 그 도구를 통해 만들어지는 내용이 없다고 할 수는 없는거죠. 예를 들어 떡볶이를 먹으면 이런 이런 느낌이 오잖아요? 그건 떡볶이의 어떤 맛이 혀의 어떤 부분을 자극함으로서 알게 되는 것인데, 만약 이 자극의 전달체계를 우리가 알아서 떡볶이를 먹지 않아도 먹은 느낌이 들게 할 수 있어요. 그렇다고 해서 떡볶이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라는거죠. 단지 맛이 전달되는 프로세스를 밝히는 것이 떡볶이가 있냐 없냐를 결정할 수는 없는겁니다.

결론적으로, 어떤 케미칼을 먹음으로서 기분이 괜찮아지고 이런 것이 인간 정신의 기계성을 증명하는 것은 아닙니다. 인간의 생각이 드러나기 위한 도구로 있는 것이지 그게 그 자체의 존재를 결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면 컴퓨터의 하드웨어가 망가지면 프로그램이 돌아갈 수 없지만 그렇다고 프로그램이 존재하지 않고 하드웨어만 있는거라고 할 수는 없지요.”

 

tSL : 자유의지의 존재 여부가 안 밝혀질 것이다라고 생각하시는 이유는 뭔가요?

“과학은 근대주의에 기반을 하고 있어요. 하지만 역사적으로 보면 사실 20세기에 현대 물리학의 혁명이 일어나면서 인간의 합리성에 대한 근원적인 물음이 일어났어요. 특정 시간의 위치와 속도를 알면 완벽하게 모든 것을 알 수 있다는 것이 뉴턴 역학의 관점이었는데, 양자역학을 통해 그렇지 않다는 것이 알려졌고, 그러면서 근대주의가 무너졌고, 1,2 차세계 대전을 거치면서 인간의 합리성에 의하면 행복할 줄 알았더니 수많은 안좋은 일들이 일어나는 것을 사람들이 목격했습니다. 그런 경험들이 사실 포스트모더니즘의 바탕이 된 것입니다. 아무리 관찰적으로 데이타를 얻어도 1+1이 2가 되는 것처럼 명박하게 일어나는 것이 거의 없어요. 이게 인간의 한계네 자연 세계의 신비네 라고 이야기하지만 뭐건간에 인간의 이성을 100% 신뢰하기는 어렵습니다.”

 

tSL : 지구상에 존재하는 생명체들은 박테리아에서 시작하여 식물, 동물에 이르기까지 일종의 스펙트럼을 이루고 있습니다. 교수님은 진화론과 창조론 모두를 인정하시는 입장으로서 자유의지는 이 스펙트럼에서 어디부터 발생한다고 보시나요?

“저는 인간의 정신활동은 인간에게만 있는 특별한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자유의지는 뇌를 기반으로 하는 정신이 가지고 있는 인간만 가지고 있는 거라고 보고요. 플라톤의 이원론적으로 봐서 몸은 버려야 할 것이고 뭐.. 이런 것은 아주 그리스적인 개념이고, 구약성서의 개념은 일원론이거든요. 몸이 죽고 영혼만 구원받는게 아니라 몸도 구원받거든요. 사도 바울도 육체와 정신을 분리하기 보다는 홀리스틱(holistic)하게 일원론으로 보는거거든요. 그런면에서 볼때 두뇌활동이 가지고 있는 정신은 인간을 구분해 내는 중요한 면이죠. 영장류 정도의 상당히 큰 뇌를 가지고 있는 생명들도 정신 활동이 어느 정도 있습니다. 그런데 인간이 가지고 있는 정신 활동과 영장류가 가지고 있는 정신활동 사이에 어떤 생물학적 차이가 있느냐는 아직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지요.”

Photo : the Science Life

“이게 정성적인거냐, 아니면 정량적인 차이냐. 동물도 어느 정도의 정보 프로세스는 할 수 있죠. 사자도 할 수 있죠. 하지만 이런 정보 처리의 뇌의 기능은 인간성을 우리가 규정지을때 쓸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고릴라가 자아 개념이 있느냐라고 했을때, 동물 실험 윤리의 규정은 동물들이 얼마나 고통을 느끼는가와 같은 면을 고려합니다. 조금더 고등한 동물의 고통은 조금 더 인정하고, 그보다 정신 활동이 약한 것들은 자아 개념이 있냐 없냐에 대한 판단이 다른거거든요. 만약 이야기 한 오랑우탄이 자아 개념이 있느냐…할때 약간은 있어요. 가장 큰 차이는 언어 차이죠.. 돌고래도 언어를 쓰거든요. 그런 의사소통을 위한 어느 정도의 언어가 아니라 추상적인 개념들은 동물들과 확연하게 차이가 나거든요. 사기를 칠 수 있는 유일한 동물이 인간이거든요.  이게 동물들에게는 안된다고 보고 있거든요. 물론 아직까지 완전히는 몰라요.. 그래서 모른다고 말씀 드린거고, 근원적인 차이는 정량적으로 조금 더 있냐 없냐 수준이 아니라 정성적인 차이가 있다고 보는거예요.”

tSL : 그렇다면 인간이 진화의 산물이지만 자유의지는 인간에게는 신이 특별히 부여한 것이다라고 보신다는 말씀이신거죠?

“여기서 말하는 특별히라는 것이 신이 인간에게 부여한 자유 의지나 고등적인 정신 활동을 특별하게 부여했다고 할때, 신학적인 개념에서는 특별한거죠. 과학적인 관점에서 어느 메카니즘이냐 에 대해서 진화적 창조론자들의 다양한 스펙트럼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생물학적 구조나 뇌의 크기와 같은 것은 진화의 일부지만, 영혼만큼은 과학으로 설명되지 않는 방법으로 불어 넣었다고 보는사람이 있고요, 어떤 사람들은 정신적인 활동도 긴 시간의 지화적인 과정을 통해 인간에게 주셨다고 보는 사람들도 있어요. 자유 의지의 과학적인 statement는 그 메카니즘을 자연으로 볼것이냐 자연 외적으로 볼것이냐에 따라서 달라지는 것이고요, 그게 무엇이건간에 신학적으로 설명하는 것과 상충되지는 않죠.”

tSL : 교수님은 말씀하신 다양한 스펙트럼중 어디에 위치하신다고 보십니까?

“자아개념을 바탕으로 하는 인격은 인간에게만 주어진 것으로 봅니다. 인간에게 주어진 고도의 정신활동 혹은 인격이 과학적인 면에서 어떤 프로세스로 주어졌는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봅니다. 그것은 과학이 밝히면 되는거고. 인간의 언어 영역이 어떻게 되었다. 못밝힌다. 얼마든지 여기에 대해서는 중요하지 않다. 하지만 관심은 많다.. 이 정도로 정리하죠.”

(편집자 주 : 자유 의지는 정신 활동이나 자아 개념과는 별개로 보아야 한다는 우종학 교수의 추가 의견이 있었습니다.)

 

지구상에 출현했던 모든 생명체들의 진화 가지. 자유 의지는 신에 의해 인간에게만 주어진 고유한 특징이라는 견해

과학의 확증편향 (Confirmation bias)

“과학 철학쪽에서는 과학이라는 인간의 활동이 가치 중립적으로 이루어져서 오로지 관찰을 통해 결론을 이끌어낸다는게 기존의 이론이었는데, 최근에는 과학도 결국 인간의 활동이기 때문에 수행자의 영향을 받는다는 관점이 있습니다. 과학철학도 영국과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굉장히 실용적인 입장과 유럽을 중심으로 하는 입장이 다릅니다. 소칼 논쟁(Sokal affair)에서 보듯이 과학 사회학적으로 과학이라는 학문을 하는 주체가 인간이다보니 생명에 관한 연구라 하더라도 생명이 중요하다는 전제를 깔고 가니 그게 연구에 반영되는겁니다.”

 

(편집자 주) 소칼 사건 : 앨런 소칼이 1996년에 유명 인문학 저널인 《소셜 텍스트》(Social Text)를 상대로 벌인 지적 사기극이다. 이는 포스트모더니즘 철학과 과학의 관계에 대한 논쟁을 불러 일으켰다. 뉴욕대학교의 물리학 교수였던 소칼은 포스트모더니즘이 학문적 엄정성을 잃었다고 생각하고, 논문이 '그럴듯 하게 들리고, 편집자의 이데올로기적 선입견에 편승하기만 하면' 내용에 관계없이 게재가 되는지 시험하기 위해 가짜 논문을 투고하였다. 이를 위하여 1994년에 그는 양자 중력이 언어, 사회적 구성(Construct)이라는 것을 제안한〈경계를 넘어서: 양자 중력의 변형적 해석학을 위하여〉("Transgressing the Boundaries: Toward a Transformative Hermeneutics of Quantum Gravity")를 《소셜 텍스트》지에 투고하였다. 당시 《소셜 텍스트》 지는 동료 평가를 하지 않았으며, 물리학자에 의한 전문가 평가를 거치지 않았다. 결국 이 논문은 1996년 《소셜 텍스트》의 봄/여름 ‘과학전쟁’ 특별호에 개제되었으며, 소칼은 이 논문의 출판일인 1996년 5월에 《링구아 프랑카》(Lingua Franca)라는 학술지에 <문화연구에 대한 어느 물리학자의 실험> (A Physicist Experiments with Cultural Studies)을 게재해 이 사실을 폭로하였다. 이후, 이 사건은 포스트모더니즘 계열 프랑스 철학계를 발칵 뒤집었으며, 포스트모더니즘 철학에 대한 논쟁을 불러왔을 뿐만 아니라, 연구윤리와 동료평가에 대한 격렬한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Wikipedia)

“참고로 ,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학이 가지고 있는 큰 힘은 매우 빠른 속도로 이루어지는 합의입니다. 서로 중구난방으로 이야기 하다가도 결정적인 결론이 나면 그 의견들이 굉장히 빠른 속도로 합의에 이릅니다. 이게 일어날 수 있는 학문은 과학밖에 없습니다.

과학은 결국 인간이 하는 행동이기 때문에 확증편향을 피할 수 없어요. 예를 들어서 블랙홀이 내는 에너지의 5%면 뭔가 거대한 일이 발생한다고 가정해 봅시다. 그러면 이론적인 연구자들이 이게 5%가 맞다라고 발표를 해요.  그럼 데이타를 수집하는 과학자들이 측정해서 5%와 유사한 값이다 라고 이야기를 해요.

그런데 10년이 지나서 다시 계산해보니 1%정도가 맞다라는 새로운 계산이 나와요. 그러면 또 그것을 확인 하는 방향으로 관측을 하는거예요. 이런 식으로 과학 행위를 하는 주체가 단순히 데이타가 무엇을 말해 주는지를 객관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그 데이타의 해석에 주관이 끼어 들어갈 수 있다는 겁니다. 이런식으로 주관이 개입되면 이것은 최종적으로 확인이 안됩니다.

이런 확증편향에 의해서 예측을 하면 그 예측이 잘못되겠고 그건 확정이 안되겠죠. 그러면 그것은 도태될 수 밖에 없요. 짧은 관점으로 보면 이런 것이 나오겠지만, 결과적으로는 가 장 훌륭한 것이 살아남게 되고, 이게 과학이 가진 가장 큰 장점입니다. 일반적으로 이런 관점은 영미 과학자들의 입장이고 유럽쪽의 과학자는 포스트 모던 방향에서 조금 다르게 접근하죠. 하지만 저는 후자는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Photo : the Science Life

tSL : 영미 과학자들의 입장은 토마스 쿤의 과학 혁명의 구조와 비슷하게 보입니다.

“토마스 쿤이 이야기 한게 너무 널리 인용되고 있는데 사실 저는 그 제자들이 너무 밀고 나갔다고 봅니다. 심지어는 쿤 자신 마저도 이제 그만 하라고 말렸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뉴턴 역학 다음에 양자 역학이 나왔잖아요. 이게 패러다임 쉬프트냐. 쿤의 용어를 빌리면 그렇습니다. 하지만 이게 기존의 학설이 모두 무너지고 새로운 것이 된거냐. 그건 아닙니다. 기존 학설은 여전히 살아있고 미지의 세계에서 설명이 되지 않는 부분을 새로운 학설이 보충한 것이라고 봅니다. 따라서 패러다임 쉬프트가 아닌 패러다임 확장이라고 보는 것이 맞습니다.”

 

과학, 공학, 예술, 그리고 근대 주의

“우리나라에서 10년전 쯤에 유행했던게 한국인이 젓가락을 잘 써서 배아를 잘 굴린다 라는 말이 있었죠. 그런게 충분히 가능하다는 가능성을 밝히는게 과학이고, 물리학도 마찬가지인데.. 실제 손기술이 좋은 한국인이 그것을 아주 경제적으로 응용할 수 있는 것은 공학이죠.”

tSL : 특정인의 손에서만 나온다면 그건 과학이 아니라 예술이라고 불러야죠. 혹은 공예.

“위대한 작품을 만든 사람들이 자기가 직접 깎지는 않았습니다. 석상 같은 것을 예로 들면 작가는 주로 디자인을 하고 실제로 깎는 것은 석공이거든요.”

 

우리나라에서 미술계의 관행을 최초로 알린 조영남 그림 대작 논란. (아시아뉴스 통신)

“예술은 그 원리와 현상을 바라보는게 예술이지 그것을 구체화 해서 깎고 하는 것은 공학에 더 가깝습니다. 과학은 사실 예술과 통해요. 사실 한국의 과학은 엔지니어링이 너무 강해요. 예를 들면 물리학 분야에도 반도체나 이런 것들은 공학에 가까운 것이고요. 한국에 얼마나 많은 과학자가 있느냐 라고 할때 제 생각에는 조금..”

 

tSL : 공부하시다 위기가 오셨을것 같은데.. 그런 근대적인 관점을 깨고 다른 방향으로 가신거잖아요.

“저는 아직 근대주의자예요. 사이언스를 하는 입장이기 때문에 근대주의를 깰 수 없어요. 하지만 클래시컬하게 과학이 자연을 100% 재현하는 것이다 이런 것은 아니고요, 어느 정도 인간의 경험은 실재에 대한 어느 정도의 반영이다 이렇게 보는거죠. 우리가 가지는 데이타와 데이타를 종합한 것은 실제 자연을 반영하는 거기 때문에, 저는 이것은 포기할수 없어요. 그러나 어떤 차원에서 자연상의 미결정성이건 인간의 인식의 한계이건간에, 인간의 이성 안에 신뢰할 수 없는 어떤 영역에 대한 고백은 있는거죠. 그러니까 포스트모던한 영역을 열어 두고 있는거죠.”


2편이 곧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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