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과 종교의 접점 – 서울대 우종학 교수 인터뷰 2

the Science Life는 국내에서 과학과 종교의 접점에 대해서 가장 많은 활동을 하고 계신 서울대학교 우종학 교수를 만나 인터뷰를 진행하였습니다. 지난 기사에서는 주로 자유 의지, 과학의 확증 편향 등에 대해서 이야기 하였고, 이번 기사에서는 삶과 종교, 그리고 과학자에게 있어서 종교란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에 관한 이야기를 보실 수 있습니다. 지난 기사에서 이어지는 내용 입니다.

(기사 전반에 걸친 우종학 교수의 견해는 THE SCIENCE LIFE의 관점과는 독립적이며 TSL의 견해를 대변하지 않습니다.)

 


신의 역사 (役事, Divine action)

tSL : 가지고 계신 세계관에 신의 존재가 있습니다. 실제 삶에서는 자연법칙과 물질이 존재합니다. 이 둘 각각의 위치가 어떻게 된다고 보시나요? 신의 간섭이 물질을 통해 이루어진다고 보시나요? 그것을 뛰어 넘는 방식으로 나온다고 보시나요?

“결국 과학 신학에서 말하는 divine action이고, 신이 자연 안에서 어떻게 영향을 줄 것이냐의 문제인데, 여기서 가장 중요한 개념은 신의 행위는 과학적으로 탐지가 불가능하다는 겁니다. 가능하면 재밌을것 같기는 한데 탐지가 안되죠. 물론 창조 과학이나 지적 설계자들은 이게 된다고 하니 골치가 아픈건데, 사실 탐지가 안되죠.

전 이게 철학의 영역이라고 봐요. Metaphysics (형이상학)인거죠. 형이상학적인 레벨에서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지는 과학 신학적 노력은 수 천년 동안 되어 온거고, 최근에는 과학을 통해서 밝혀진 내용과 모순되지 않는 방향으로 형이상학적인 이해를 하는 것이 과학 신학의 작업이예요. 그러면 어떤 맥락에서 신이 인간이 경험하는 세계에서 뭔가 영향을 미칠 수 있냐에 대해서 크게 두가지 입장이 있는거죠.

하나는 전통적인 인터벤션 (intervention) 즉, 간섭론이죠. 신이라고 하는 존재를 물질적인 자연 세계에 초월한 존재로 보면 초월한 존재가 자연 세계 안으로 들어오는거죠. 쉽게는 천사를 보내서 이야기 하는. 이게 아주 전통적인 개념이고 근대 과학 성립 이전까지이고…”

20세기 가장 유명한 인터벤션의 예로 여겨지는 포르투갈 파티마의 성모 발현. Wikipedia

“그런데 인터벤션이 아닌것이 있습니다. 비간섭주의. 비간섭주의는 뭐냐면 물질 세계가 있는데 갑자기 초월적인 신이 나타나서 뭔가를 갑자기 하는게 아니라는 거죠.”

 

tSL : 그렇다면 아무리 우리가 타협을 해도 기독교가 신비의 종교라고 하잖아요? 그 안에서 보자면 인간이 어떻게든 죽었다 살아났다. 그렇다면 이건 비간섭적인 방법으로는 설명이 안되지 않을까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예전에 과학이 발달하기 전에는 생물이 자연발생으로 생겼다고 하잖아요. 하지만 과학이 발전한 다음에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잖아요.. 기본적인 생물학의 전제가 무생물에서 생물이 나오지는 못한다는거예요. 그런데 지구의 나이가 46억년이잖아요. 그런데 지구의 46억년 역사에서 생명체가 38억년쯤 나왔어요. 46-38억까지는 무생물의 시대였거든요. 그런데 생명체가 나왔어요. 우리가 알고 있는 자연 발생설이 맞는건가요 아닌가요? 생물학의 근간임에도 불구하고 어찌되었건 무생물에서 생물이 나왔고, 그게 어떻게 나온 것인지  아무도 설명하지 못해요. 아이디어만 있을 뿐이고.

분명한건 생명체가 처음에는 없었어요. 그런데 38억년부터 생명체가 있었던 증거들이 있어요. 이건 자연 발생설이란 말이죠. 무생물에서 생명이 나왔다고 모든 과학자들이 믿고 있어요. 이것을 부활에 적용하자면, 어떤 현상을 우리가 이성적으로 파악할 수 없는 입장, 그리고 여전히 인과 관계로 설명을 하려는 과학자의 입장에서도 38억년전 무생물에서 생물이 발생했다고 그대로 믿는 것처럼, 부활도 우리가 경험적으로 일어났다고 믿는 것이 나는 그렇게 심각하게 한 문제는 아니라고 봐요.”

 

tSL : 그런 입장에서는 예수의 승천도 다르게 볼 수 있겠네요.

“아까 이야기 한 비간섭주의는, 과학적으로는 불가능한게 신이 간섭해서 주도적으로 일으킨 것이 간섭주의라면, 비간섭주의는 인과관계가 전혀 없이 뭔가 짠 하고 나타난게 아니라 인식론적으로 파악이 안되지만 이게 뭔가 자연 세계 내의 인과관계에 의해서 이 프로세스가 가능할 수 있다고 보는 거고, 신이 인간 세계에서 일하는 방법이 비간섭적인 방법이 아니라 자연계 안의 여러 프로세스에 관섭하는 방법으로 작용한다는거예요. 부활도 반드시 간섭이 아니라 비간섭적으로도 작용 할 수 있다는거죠.”

Photo : the Science Life

 

tSL : 그런데 거기에 인과관계를 부여하기 시작하면 인과관계의 시발점이 있어야 합니다. 직접적으로 일어나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전단계들이 있어야 하는데, 어디까지 봐야 한다고 생각하시나요? 신이 어느 시점에, 예를 들어, 10일 뒤에 부활 시킬거야. 이것도 간섭이라고 볼 수 있지 않나요?

“과학자들이 생각하는 divine action은 여러가지가 있는데요, 만약 양자역학이 완전하지 않다면 모든게 계획이 되어 있어야 하는거죠. 우리는 우연인것 같지만 사실은 신이 모두 계획을 세워 놓은 것이고, 모든 것이 쌓여서 마침 그 순간에 그것이 일어나는 방식으로 설명하는게 있어요.

또 다른 하나는 자연 세계의 미결정된 세계를 놓고 본다면.. 전자가 어디 떨어지건 모두 합리적입니다. 하지만 신이 양자역학적으로 불확정적인 범위 안에서 전자가 여기에 떨어지도록 하는거죠. 우리가 기존에는 신이 뭔가 간섭적으로 하면 신이 한거고, 그렇지 않으면 과학으로 밝혀지니 신이 아무것도 못하는거고.. 이런 식으로 이원론적으로 생각했던 사고 방식이 근대 과학이 생겨나기 시작하면서 깨지기 시작한거죠. 디이즘(deism, 이신론, 理神論)이라고 하죠. 시계공이 시계를 만들고 나면 그 다음에는 시계공이 죽어도 시계는 가잖아요. 그런식으로 뉴턴의 결정론으로 설명하다보니 신이 필요가 없는거예요. 어쨌건 우주는 굴러가는거죠.”

 

이신론(理神論, deism)은 18세기 계몽주의시대에 등장한 철학(신학)이론이다. 세계를 창조한 하나의 신을 인정하되, 그 신은 세계와 별도로 존재하며 세상을 창조한 뒤에는 세상, 물리법칙을 바꾸거나 인간에게 접촉하는 인격적 주재자로 보지 않는다. 그에 따라 계시, 기적등이 없다고 보는 철학, 종교관이다. 계몽주의에서 이신론은 신은 인간을 초월한 존재이며 또 우주의 창조주라고 생각하는 점에서는 일종의 유신론(有神論)이지만, 한편에서는 인간은 이성(理性)을 가지고 있기때문에 이 신의 존재나 우주의 법칙을 이성으로 알 수가 있다고 간주하였다. 자연신교(자연신론) 라고도 한다. Wikipedia

 

“그럼 기적은 어떻게 설명하냐? 자연이 시계처럼 돌아가다가 가끔 신이 나타나서 뭔가를 해 주는거죠. 그럼 여전히 신은 자연 과학으로 설명되지는 않는 세계에 갇혀 있는거고, 기적을 행할때에만 나타는 거잖아요. 과학 신학자들은 이것을 인정하지 않는 거예요. 결정론인것처럼 보이는 모든 인과 관계가 신이 모두 하고 있는거죠. 신이 초월적인 존재가 아니라 조금 더 내재적인 존재로 보는거예요. 자연적인 세계 내에서 움직이는 내재적인 존재로 보면, 신이 가끔 와서 기적을 베푸는게 아니라, 모든 과학 법칙 하나 하나가 다 이게 신이 섭리하고 있는걸로 보는거고, 특히 그 중에서 인간의 인식론 안에서 파악이 되지 않아서 미결정적으로 보이는 그 영역까지 하나님이 섭리하기 때문에 그 영역을 통해서 divine action이 가능하다고 보는거예요.”

 

삶의 의미와 목적

tSL : 과학자이자 한명의 신앙인으로서 교수님의 삶에 있서 종교와 믿음이란 어떤 의미인가요?

“저는 기독교인이기 때문에 내가 경험한 실체에 대한 믿음이 있어요. 그게 없는 삶은 상상이 안돼요. 제가 대학때 고민하던 내용은 어떻게 인간이 자살을 하지 않고 살 수 있을까였습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이 허무한 세상에서 어떻게 자살을 하지 않고 살 수 있는가…. 이것을 버텨 주는 것은 신앙 밖에 없는 것 같아요. 신앙은 단순히 신에게 귀의하기 보다는 신적 존재에 대한 믿음에 기초하고 있고 내가 보지 못하는 것에 대한 한계의 인식, 내 삶의 모든 경험의 차원에서 그런 것이 있기 때문에 가능했던것 같아요. 그런 면에서 제가 이상한 길로 빠지지 않은 이유 중의 하나가 내 안에 어릴때부터 있어 왔던 신앙이라는 면이 아닌가 싶어요.”

Photo : the Science Life

 

tSL : 종교가 없는 사람들은 어떨 거라고 보시나요?

“신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합리성에 근거해서 치열하게 밀고 나가 보자 라는 관점일거라고 봅니다. 그런데 저는 여전히 궁금한거예요.. 어떻게 삶을 유지할 수 있는지.. 무신론적인 입장에서 어떻게 삶을 밀고 갈 수 있는 것인지.”

Photo : the Science Life

“반대로 생각하면 어떤 사람들은 믿음이 안생기거든요. 그렇게 보고 싶어도 안되고. 거꾸로는 그게 더 신기할 수 있어요. 어떻게 신이 느껴질 수 있는가… 과학으로 설명이 되지 않는게 매우 많습니다. 과학을 넘어서 인생 전체를 볼때 우리가 어떤 가치를 두고 의미를 두고 열심히 살아야 하는 모티베이션을 어디에 둬야 하는가.. 예를 들면 가족이라던가 이런 것이 있을 수 있죠.

교회에서 들었던 말 중에 몇 %가 거짓말인지, 이것을 확인하는 작업을 대학교때 진행했죠. 그런 과정을 통해서 재정립을 해야 하는데, 어떤 사람들은 또 그런 재정립이 깡그리 무너지고. 그런 경우도 있죠. 잠을 잘 수 없는 밤들. 어떻게 인간이 자살하지 않고 살 수 있는지에 대해서 고민을 해 보는거죠.

어쨌거나 저는 개인적으로 그게 한계라기 보다는 감사하다, 다행이다, 라고 보는거죠. 물론 사고 실험을 해 볼수 있어요. 얼마든지 방탕하게 살아볼 수 있고, 저는 해 볼 수도 있다고 보는데요, 저는 그런 경험을 통해서 더 명확하게 세상을 조망해 볼 수 있고, 실제 경험을 하지 않더라도 간접 경험을 통하거나, 사고 실험을 통해서 어느 정도는 알 수 있는거죠.”

 

tSL : 유럽은 무신론자들의 비율이 점점 높아지고 있거든요. 그리고 유럽의 교회들은 사적(史蹟)으로서의 의미 외에는 없어지고 있고요. 교인 숫자는 점점 줄어들고요. 그 정도로 거의 무신론화 된 사회인데, 어떤 관점에서는 이 사람들이 한국 사람들보다 더 행복하게 사는 것 같습니다. 이 사람들이 행복하게 사는데 종교가 큰 지장이 없다는 느낌이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유럽의 국가별 무신론자 비율 (2005), Wikipedia

 

“한 영국의 신학자는 기독교 입장을 변증하면서 글을 쓰는데요, 최근 무신론자들의 주장에 반론을 제기한게 뭐가 있냐면, 말씀하신 맥락에서 탈기독교화가 되었고요. 사람들이 많이 예측하기를. 그래서 기독교는 완전히 없어질걸로 20세기 초부터 예상을 했다는거죠. 하지만 최근 100년간의 유럽의 기독교를 보면 점점 부흥한다는거죠. 물론 20세기 초의 관점에서 볼때 이 사회가 자본주의가 발전하면서 기독교가 없어질 것이라 보는데 사실은 거꾸로 부흥을 한다는거죠.”

 

Photo : the Science Life

“쉽게 생각하면 유럽이 탈기독교화가 됐는데도 사람들이 행복하게 잘 살고 있고, 기독교를 종교로 가지고 있는 것보다 더 우월한거 아니냐라고 할 수 있는데요, 이것은 역사적 사회적 맥락을 다양하게 봐야 하기 때문에 쉽지 않은 이야기고요.

지금 말씀하신 내용은 한국에서 매우 통해요. 최근 한국에서는 가나안 (거꾸로 하면 “안나가”) 성도들의 비율이 점점 증가하고 있어요. 그 이유가 뭐냐하면 교회를 가면 신앙을 지킬 수 없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은거예요. 일요일 교회에 가고 하는 것이 자신의 신앙 정체성을 정의하는게 아니라, 일요일 그때 가지 않더라도 내 삶 속에서 성경의 삶대로 살아가는 것을 종교성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더 늘어난거죠.

그렇게 보면 단순히 표면적으로 종교화 된 사회학적으로 카운트 되는 이런 방식으로는 기독교 신앙을 정량적으로 평가할 수 는 없을것 같고요, 그것을 사람의 행복과 연관 시키는 것도 의미 없을것 같아요. 세계에서 가장 행복하다는 나라가 부탄이잖아요. 이게 정량적으로 판단하기가 조금 어렵다는거죠. 행복이라는 것이 다양한 맥락이 있기 때문에 단순히 물질적인 욕구를  만족 시킬 수 있느냐 아니며 정신적인 것이 있느냐가 판단하기 어렵죠.”

(편집자 주 : 참고자료 – UN 2014-2016 세계 행복 리포트)

 

 

tSL : 시간이 거의 다 되어서 마지막 질문 하나 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과학의 편에서 근본주의적 기독교관을 가지신 분들과 대화를 할때 가장 어려운 점은 무엇인가요? 기독교 내에서 기독교 근본주의를 어떤 식으로 해결하시나요?

“학교에서 가르치는 입장에서 보면 학생들의 다양한 스펙트럼이 있거든요. 어떤 학생이 가장 힘드냐면, 배울 생각이 없는  학생들이예요. 지적 수준이나 이해력이나 다 충분한데, 배울 생각이 없는 학생은 아무리 해도 가르칠 수가 없어요. 성경을 문자주의적으로 해석하시는 분들도 다소 배울 생각이 없는 경우가 많아요. 이런 경우가 가장 힘든것 같습니다.”

 


 

이번 인터뷰는 사전 질문지와 같은 기획 없이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주제들로 진행되었으며, 기사 내용 또한 문어체로 사후 편집된 형식 보다는 편집자의 개입을 관련 자료 제공 수준으로 제한하고 거의 녹취 수준으로 전달하는 것을 목표로 하였습니다. 그러다보니 구어체 표현이 그대로 들어간 부분들도 있습니다만, 우종학 교수와 마주보고 대화 하는 듯한 느낌을 살리기 위해 대화를 그대로 전달하는 데 중점을 두었습니다.

이번 인터뷰가 한 명의 유능한 천문학자이자 깊은 신앙심을 가진 한 사람으로서 이러한 고민을 그 누구보다도 더 깊게 해 왔을 우종학 교수의 생각을 조금이나마 들여다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종교와 과학의 경계선에서 (이 또한 우교수의 표현에 따르면 이원론적인 사고입니다만) 비슷한 고민을 하신 분들이 계시다면 이번 인터뷰가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기를 바랍니다.

다시 한번 the Science Life와 자리를 함께 해 주신 우종학 교수님께 깊은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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