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ISPR-Cas9에 의해 잘라지는 DNA의 동영상

수만년 전에 쓰여진 어떤 책이 발견되었다고 가정해 봅시다. 이 책은 아직까지 알려지지 않은 어떤 독특한 문자 체계로 쓰여져 있습니다. 수많은 학자들이 오랜 기간의 노력 끝에 이 문자를 이해하게 되었고 그 언어의 문법 체계를 파악했습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이 문자와 언어를 이용해서 새로운 문장을 만들어 내고 문법적인 오류를 찾아내서 수정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책까지도 만들어 낼 수 있는 경지에 도달했다고 합시다. 하나의 고대 언어를 마스터 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유전자도 이와 유사합니다. 다만 그 책이 인간에 의해서 쓰여진 것이 아니라 수억년간의 진화 과정에 의해 쓰여졌다는 점이 다릅니다. 인간은 이미 유전자의 문자를 50여년 전에 발견 (ATGC)했을 뿐만 아니라, 유전자의 문장을 대단위로 읽어 낼 수 있는 기술을 발전 시켰고 (시퀀싱), 문법을 이해하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생명정보학), 그 문자로 문장을 만들고 책을 출판해 내는 능력 (Gene synthesis)까지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책의 특정 한 부분을 매우 높은 정확도로 수정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되었는데, 이 기술이 바로 CRISPR-Cas9 입니다.

기존에도 유전자의 특정 부분을 잘라낼 수 있는 기술은 있었습니다. 제한효소 (Restriction enzyme)이라 불리우는 효소를 이용하면 어떤 “특정 서열”을 가지고 있는 DNA의 한 부분을 잘라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특정 서열”을 인위적으로 정해 주는 것에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자연계에 존재하는 제한 효소들 중에서 연구자가 원하는 위치를 잘라 줄 수 있는 효소를 골라서 쓸 수 밖에 없었습니다.

여기에 돌파구를 열어준 기술이 바로 CRISPR-Cas9 입니다. 위에서 말한 “특정 서열”을 연구자의 의도대로 자유롭게 결정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잘라내는 효율도 아주 좋습니다. 이는 수퍼마켓의 3분 요리 코너에 있는 인스턴트 식품만 사다 먹어야 하던 사람이, 이제 최고급 부엌 시설과 지구상의 모든 식자재가 들어있는 냉장고를 가지고 본인이 원하는 요리를 해 먹게 된 것과 비슷합니다. 그리고 이 기술은 매우 빠르게 진화중이어서 좀 더 정확하게 원하는 곳만 잘라주는 새로운 업그레이드 버전이 계속 나오고 있습니다.

이 기사에서는 CRISPR-Cas9 시스템의 원리와 유래를 다루지는 않을 예정입니다. 다만 지난 6월에 미국 몬타나에서 있었던 CRISPR 학회에서 발표되었던 한 의미 있는 동영상이 지난 주 트위터를 통해서 공개가 되었기에 이를 공유하고자 합니다. 바로 CRISPR-Cas9이 DNA를 자르는 모습의 영상입니다.

DNA는 워낙 많이 시각화 작업이 이루어져서 얼핏 생각하기에는 현미경으로 보일만한 실 같은 이미지로 우리에게 다가옵니다만, 사실 DNA  염기 하나의 크기는 340pm 정도 입니다 이는 일반적인 빛의 파장의 길이보다도 1/1000 가량 작은 크기입니다. 광학 현미경으로는 꿈도 꾸지 못할 크기 입니다. 최근 노벨상을 받은 Cryo-EM의 해상도로도 보기 어렵습니다.

CRISPR-Cas9이 DNA를 자르는 모습을 촬영하기 위하여 일본의 연구진은 High-speed atomic force microscopy를 이용하였다고 합니다. 관련 논문은 지난주 Nature Communication에 발표되었습니다.

저런 모습을 동영상으로 촬영한 일본 연구진들도 대단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수 많은 다른 간접 증거들을 통해 검증하여 확신하고 이미 연구에 활용해 온 과학의 힘에도 큰 경외감을 느낍니다. 10억 광년 (상상도 못할 거리 입니다) 떨어진 곳에서 두 개의 블랙홀이 충돌한 사건도 알아내는 세상이니 말입니다.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The following two tabs change content below.
Editor
the Science Life의 편집장 입니다.
Editor

Latest posts by Editor (see al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