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말라야 설인의 정체가 밝혀지다.

(커버사진 : 영화 “몬스터 주식회사”에 등장하는 예티)

예로부터 히말라야 산맥 인근 지역에서는 흰색의 털로 뒤덮여 있으며 두 발로 직립 보행을 하는 유인원과 유사한 설인이 살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 되어 왔습니다. 예티(Yeti)라 이름이 붙은 이 설인은 인근의 셰르파들의 목격담은 물론이거니와, 털이나 발자국 등과 같은 직접적인 증거들도 끊임 없이 제시되었습니다.

이 주장들에 가장 큰 힘을 실어 준 것은 바로 에베레스트 산을 최초로 등정한 에드먼드 힐러리 (1919-2008)경인데, 그는 히말라야에서 거대한 발자국을 발견하였다는 증언을 한 바 있습니다. 그는 여기에서 더 나아가 예티의 존재를 증명할 추가적인 조사를 위한 팀을 꾸려서 히말라야 인근을 탐사하였습니다. 그 결과, 예티의 것으로 추정되는 발자국의 사진과 몇가지 증거물을 확보하여 일반에 공개하기도 하였습니다.

자신의 기억을 토대로 재구성한 예티의 스케치를 들고 설명하는 에드문드 힐러리 경

그가 발견한 발자국 (출처)

힐러리와 같은 당대의 범지구적 유명인의 주장은 예티의 존재 여부에 큰 신빙성을 심어 주었습니다. 예티 이야기는 전세계로 퍼져 나갔으며, 이 높은 산 속에 사는 털복숭이 설인에 관한 이야기는 세계 각지에서 다양한 2차 산물들을 만들어 냈습니다. (커버 사진인 몬스터 주식회사에서도 예티는 회사에서 쫓겨나 히말라야에서 귀양살이를 하고 있는 몬스터로 그려집니다.)

러시아 시베리아에서는 알마스티라는 털복숭이가 살고 있다는 이야기가 전해졌고, 북미에서는 새스쿼치의 수많은 목격담이 제기 되었습니다. 심지어는 걸어가다 뒤를 힐끔 돌아보는 새스쿼치의 동영상도 공개가 된 바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에게 이런 털복숭이 덩치 괴물의 상상을 가장 먼저 알려준 것은 아마도 1970년대 말 TV를 통해 방영된 “내 친구 바야바 (원제 : Bigfoot and wild boy)”일겁니다. 바야바라 불리는 빅풋을 어려울때 힘이 되는 든든한 친구로 묘사해 놓은 시리즈물이었습니다.

이 영상을 보며 추억에 젖으시는 분들은 최소 40세는 넘으셨을겁니다.

6개국의 연구진으로 구성된 한 팀이 이 예티의 흔적이라고 추정되는 증거들을 대상으로 유전자 분석을 진행했습니다. 사실 이 연구진은 예티의 존재를 증명하기 보다는 혹시나 아직까지 알려지지 않은 새로운 종의 유인원을 발견할 수 있을지 모른다는 기대감이 더 컸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들은 예티의 흔적이라고 여겨지는 털, 분변, 이빨, 피부등 총 24개의 샘플들을 대상으로 PCR 후 차세대 시퀀싱 기술(ion torrent sequencer)을 이용하여 분석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를 Genbank 데이타베이스와 분석하여 종을 확인하였습니다.

그 결과, 이 샘플들은 히말라야 지역에 널리 서식하는 것으로 알려진 아시아 흑곰, 히말라야 갈색 곰, 그리고 티벳 갈색곰들의 흔적인 것으로 밝혀졌다고 합니다. 다소 김 빠지는 결과이기는 합니다만 혹한의 날씨 속에서, 혹은 좋지 않은 시계 속에서 관찰자들이 눈으로 뒤덮인 곰들을 설인으로 착각한 것일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관련 논문은 “티벳 고원과 히말라야 지역에 서식하는 수수께끼의 곰의 진화 역사와 예티의 정체 (Evolutionary history of enigmatic bears in the Tibetan Plateau–Himalaya region and the identity of the yeti)라는 제목으로 Proceedings of the Royal Society B에 발표되었습니다.

사실 유사한 논문은 지난 2014년도에도 한번 발표가 된 적이 있습니다. 그 당시에는 차세대시퀀싱을 이용한 것은 아니었지만, 조사의 범위가 이번 논문에서보다 더 넓었습니다. 예티 뿐만 아니라 러시아의 알마스티, 미국의 빅풋(혹은 새스쿼치)까지 대상에 포함시켰습니다. 이들의 흔적이라고 여겨지는 샘플들 총 50여종을 대상으로 분석을 한 결과 모든 샘플이 예외 없이 곰, 말, 양, 너구리등의 흔적인 것으로 밝혀진 바 있습니다.

사실 예티가 존재한다는 결과가 나왔으면 조금 더 재미있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언젠가 만나게 될지 모른다고 생각했던 예티를 이제 마음 속에서 떠나 보내야 할 것 같습니다. 과학은 인간의 상상력을 키워주기도 하지만, 이렇게 가끔 동심 파괴도 하는군요. 그 많던 UFO들이 핸드폰의 보급 이후로 싹 종적을 감춘 것 처럼 말입니다.

The following two tabs change content below.
the Science Life의 편집장 입니다.

Latest posts by Editor (see al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