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자가 “바꾼” 길 이름

오스트리아의 수도 비엔나는 우리에게 음악의 도시로 가장 잘 알려져 있지만, 역사적으로 볼 때 동유럽과 서유럽이 만나는 교충지이자 신성 로마 제국의 수도로서 수 많은 음악가 뿐만 아니라, 미술가, 철학가, 과학자들의 자취가 남아 있는 도시 입니다. 대표적인 철학가로는 지그문트 프로이트와 비트겐슈타인이 있으며 과학자로는 막스 페루츠와 그레고 멘델, 그리고 도플러 효과로 유명한 크리스티안 도플러 등, 수 많은 걸출한 인물들이 이 도시로부터 배출이 되었습니다.

이런 역사적 인물이 많은 도시답게, 비엔나의 길이나 광장은 유명인들의 이름을 따서 명명된 것들이 여럿 있습니다. 이들 중 한 노벨 수상자 관련한 재미있는 일화가 있는 길 이름이 있습니다. 단순히 그 과학자의 이름을 딴 것이 아니라 그의 요청에 따라 도로명이 전혀 다른 이름으로 변경된 사례입니다.

이 이야기의 이해를 위해서는 비엔나라는 도시의 구조에 대해서 조금 알 필요가 있습니다.

  1. 비엔나의 링 슈트라세 (Ringstrasse)

Afbeeldingsresultaat voor vienna map
Source : http://jornalmaker.com/vienna-travel-map/

예로부터 동서양 교역의 중심지였던 비엔나는 수 많은 전쟁을 겪어야 했습니다. 특히 동쪽으로부터 오는 터키군과는 두번에 걸친 치열한 공성전을 벌인 역사도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비엔나 시는 자연스럽게 도시의 중요한 부분을 보호할 수 있는 튼튼한 방벽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큰 전쟁의 위험이 사라졌다고 판단한 1850년, 오스트리아 제국의 왕 프란즈 요셉 1세는 도시를 둘러싸고 있던 성벽을 허물고, 그 자리에 마차들의 교통을 위한 길을 만들도록 지시합니다. 건설 비용은 그 길 주변의 땅을 부호나 귀족들에게 팔아서 마련하였습니다. 도시를 둘러싸고 있던 성벽을 무너뜨리고 그 자리에 지었으니 이 길은 자연스럽게 도시를 감싸는 고리(링)과 같은 구조를 지니게 되었습니다. 이 주변 땅을 매입한 귀족들이나 부자들은 자신의 부와 명성에 걸맞는 호화스런 건물들을 그 자리에 경쟁적으로 지었습니다. 그 결과 오늘날에도 비엔나의 중요한 건물들과 주요 볼거리들은 다 이 길 양쪽으로 자리를 잡게 되었습니다. 이 길이 유명한 비엔나 환상길 (Vienna Ring Road)이고, 저 위의 지도에서 노란색으로 표시된 길입니다.

이 길은 총 9개의 구간으로 나누어져 있으며, 그 구간 안에 가장 중요한 건물이나 주요 길 이름을 토대로 이름을 붙였습니다. 그래서 국립 오페라 극장이 있는 주간은 Opernring, 시립 공원이 있는 구간은 Parkring 등의 이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오늘 이야기 하고자 하는 구간은 위 지도 상 서쪽에 있는 구간인 Dr. Karl-Lueger ring 입니다. 칼 뤼거(Karl Lueger)는 1800년대 말 오스트리아의 정치인으로서 비엔나시의 시장을 지낸 인물입니다. 국제 도시로서의 비엔나가 자리 잡는데 큰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받는 정치인이나, 그는 히틀러가 자신의 대표 저서 “나의 투쟁 (Mein Kampf)”에서 자신이 영향을 받은 정치인으로 지목하였고, 그가 창당한 기독 사회당 (Christian Social Party)은 히틀러의 나치당의 모델로 여겨지고 있는 등 긍정적인 평과와 부정적인 평가가 공존하는 인물입니다.

 

2. 2000년도 노벨 생리학상 수상자, 에릭 칸델

2000년도 노벨 생리의학상이 세 명의 과학자에게 공동 수여됩니다. 이 세 사람은 아비드 칼슨 (Arvid Carlsson), 폴 그린가드(Paul Greengard) 그리고 에릭 칸델(Eric Kandel)인데, 이들은 신경계의 신호 전달에 관한 분자적 메카니즘에 대한 연구로 노벨상을 받습니다. 요즈음 생물학 교과서에서 설명하고 있는 시냅스와 도파민 관련한 내용은 이들이 발견한 원리를 기본으로 하고 있습니다.

ⓒ The Nobel Foundation

이 중 오늘 이야기 할 인물은 바로 에릭 칸델입니다.

Eric Kandel 01.JPG
By Bengt Oberger (Own work) [CC BY-SA 4.0 (http://creativecommons.org/licenses/by-sa/4.0)], via Wikimedia Commons
에릭 칸델은 1927년 11월 오스트리아의 수도 비엔나에서 태어났습니다. 유태인 집안인 칸델의 가족은 나치 독일하의 오스트리아에서 유태인 박해를 피해 1939년 미국으로 가족과 함께 이주합니다. 이후 미국에서 교육을 받으며 인생의 대부분은 미국에서 보내게 되고 뉴욕 콜럼비아 대학의 교수로 재직하던 중 노벨상을 수상하게 됩니다.

(동쪽의 어느 나라 만큼이나 노벨상에 목을 매고 있던) 오스트리아에서는 자국 출생의 과학자가 노벨상을 탄 것에 대해서 매우 기뻐하고, 비엔나 시는 (어느 나라의 지방 자치 단체도 그러는 것 처럼 생가 보존 및 여러가지 기념 사업을 포함한) 성대한 자축을 준비합니다.

이에 대하여 에릭 칸델은 “전형적인 비엔나스럽게(?) 참으로 기회주의적이고 위선적이며, 매우 불쾌하다(typically Viennese: very opportunistic, very disingenuous, somewhat hypocritical)”라고 이야기 합니다. 이에 당황한 오스트리아 정부는 대통령인 토마스 클레스틸이 직접 에릭 칸델에게 전화를 걸어 어떻게 하면 그의 마음을 돌릴 수 있을지 물어봅니다. 이에 에릭 칸델은 세가지 요구 조건을 내걸었습니다. 그 중 첫번째로 내건 조건이 바로 Dr. Karl-Lueuger strasse의 이름을 변경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유태인으로서 박해를 피해 오스트리아에서 미국으로 건너간 칸델의 입장에서 나치즘의 아버지라 할 수 있는 사람의 이름이 길거리에 붙어 있는 것은 참을 수 없었던 모양입니다.

 

3. 길 이름의 변경

내부의 반발이 있었지만 비엔나 시는 내부 회의를 통해 결국 길의 이름을 변경하기로 하였습니다. 그래서 2012년 9월부터 Karl Lueuger strasse는 그 근처에 있는 가장 큰 건물인 비엔나 대학교를 기념하여 대학교길 (Universitätsring)으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바뀐지 불과 5년 정도 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에 아직도 지도를 검색하면 예전의 이름으로 나오는 경우를 많이 볼 수 있습니다.

Afbeeldingsresultaat voor Universitätsring
Source : Website of University of Vienna

다만, 시내 동쪽에 위치한 Stubentor라는 중심가에는 칼뤼거의 이름을 딴 (Dr. Karl Lueuger platz)라는 광장이 있는데 이 이름은 그대로 남겨 두기로 하였습니다. 도시의 발전에 큰 공을 세운 한 인물을 완전히 포기할 수는 없었던 모양입니다. 당시 칸델이 이것을 알고 있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이후 비엔나는 칸델에게 명예 시민권을 부여하였고 (어느 축구 감독에게 명예 시민권을 준 어느 나라의 모 도시가 또 떠오릅니다.) 칸델은 비엔나로 강연도 가고 자신의 저서에서도 비엔나를 특별히 언급해 주는 등 공식적으로 이 둘은 그리 나쁜 사이는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비엔나는 현재 비엔나 대학 외에도 비엔나 공대, 막스 페루츠 연구소 (MFPL), 분자 생명공학 연구소 (IMBA), 그레고 멘델 연구소 (GMI)등이 위치한 과학 중심 도시로 성장하고 있습니다.

외국에서 한국계 혈통을 지닌 누군가가 조금이라도 유명세를 탄다 싶으면 언론에서 바로 떠들기 시작하는 우리 나라도 한번 곱씹어 볼만한 사례가 아닌가 싶습니다. 우리도 한 때 모 축구 선수의 이름을 딴 길을 만들려다 본인의 고사로 백지화 된 경험이 있습니다. 과연 한국인이라는 순수 혈통(?)이라는 것이 존재는 하는 것인지, “한국계” 라는 단어는 어디까지 정의를 할 것인지. 매년 노벨상 시즌이 되면 한국계 과학자들 중 누가 가장 가능성이 높은가, 왜 한국은 노벨상 수상자가 없는가 등등의 기사가 양산되는 우리의 현실을 한번 떠 올려 보게 됩니다.

한 사람의 노벨 상 수상을 지역이나 국가 단위의 영광으로 치환하지 않고 한 개인만의 노력과 성취를 향한 당연한 보상이라고 받아들이고 진심으로 축하의 박수를 쳐 줄 수 있는 분위기를 누군가의 노벨상 수상 소식 만큼이나 기다려 보게 됩니다. 과학에는 국경이 없어도 과학자에게는 조국이 있다는 누군가의 말에 조소를 보낼 수 있는 그런 사회 분위기를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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