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보사 사태 – 사건의 전말

생명과학쪽은 한 6개월마다 한번씩 사건이 터지는 주기가 있는것 같다. 지난번에는 유전자 조작 인간을 만들어 한 과학자가 전세계적인 공분을 산 일이 있었는데, 반년 쯤 지나니 이번에는 주사제 하나가 문제가 됐다. 다행이 전세계적인 사태는 아니고 국내에서만 발생한 사건인데, 그 사건의 내막이 심히 경악스럽다. 더욱 놀라운 것은 사건의 심각성에 비해 전혀 이슈화가 되지 않고 있다. 아마도 생명과학을 전공하지 않은 일반인들이 알기에는 너무 전문적인 내용이라서 그런것 같다. 그래서 한번 짚어 보기로 했다.

결론을 먼저 이야기 한다.

 

“환자 3700여명을 인간 마루타로 만들어 버린 사건”

“엔진 오일이 식용유로 둔갑하여 판매된 사건”

 

실수에 의한 것인지 고의적인 것인지는 법정에서 가려야 할 일이지만, 둘 중 무엇이건간에 21세기의 현실 세계에서는 일어나서는 안될 일이 일어난 것이다. 믿기 어려운, 믿고 싶지 않은 사건이다. 우리 나라 역사는 물론이거니와 앞으로의 인류 역사를 통틀어서 절대 반복되어서는 안될 일이다. 매우 부끄러운 일이다.

인보사는 세계 최초로 “시판 허가”를 받은 “유전자 세포 치료제”이다. 시판 허가와 유전자 세포 치료제, 그리고 문제의 “신장 세포”가 무엇인지를 통해 이 사건의 전말을 알아보도록 하자.

 

약은 어떻게 시판 허가를 받나

100여년전만 하더라도 칭얼대는 아이를 잠재우기 위해 클로로포름이 사용됐다.

아기들 이빨 앓이 시작할때 달래느라 먹이는 약. (주성분 : 클로로포름, 마취제니 당연히 애가 조용해진다.)

 

담배는 건강에 좋은 것으로 환자들에게 권유 되었다.

기관지 건강을 위해 담배를 피우라는 광고

 

무지의 소산이 사람들에게 널리 팔려 나갈 때에는 인류가 공멸의 길을 걸을 수도 있다는 역사적 경험을 토대로 미국 식품의약품안전청 (FDA)은 새로 약으로 신청되는 물질들에 대해 매우 엄격한 테스트를 거친다. 흔히 “임상 시험”이라고 이야기 하는 테스트다. (간단하게는) 총 3가지 단계의 테스트를 거치며 이를 각각 임상 1상, 2상, 3상으로 각각 부르고 영어로는 Phase I, Phase II, Phase III라고 표현하는데, 그냥 간단하게 3단계 시험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첫번째 단계에서는 약의 안전성을 시험한다. 약효는 거들떠도 보지 않는다. 사람에게 주입해서 위험한 상황이 발생하는지, 예상치 못한 부작용이 있는것은 아닌지 아닌지만을 본다. 약효보다 중요한 것이 안전이라는 뜻이다. 제 아무리 약효가 좋아도 위험하면 탈락이다. 암세포를 죽이는데 탁월하지만 멀쩡한 세포도 죽이면 아무 의미 없는 거다. 고혈압 치료제로 개발되어 임상 시험에 들어갔다가 임상 1상에서 예상치 못한 (하지만 아름다운?) 부작용을 발견하여 발기부전 치료제로 탄생한 비아그라의 이야기는 워낙 유명하다.

두번째 단계에서는 첫번째에서 검증된 안전한 투약 범위 내에서 약효가 얼마나 있는지를 본다. 위험 없이 효과가 있다고 판단되는 물질들만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다. 또 상당수의 후보 물질들이 여기에서 탈락한다.

세번째 단계에서는 기존에 이미 나와 있는 약과 비교 실험을 하여 얼마나 더 우월한지를 테스트한다. 여기서도 또 무더기처럼 떨어진다.

이 단계를 모두 통과하는 물질은 전체 후보 물질의 10% 내외이며 보통 시험 기간만 약 10년 정도 걸린다. 그 사이에 물론 천문학적인 금액이 소요된다. 이 모든 과정을 뚫고 시판 허가를 받는다 하더라도 생산 비용, 가격, 수요, 경쟁 약품과의 차별성 등의 시장성이 있어야 성공할 수 있기 때문에 제약회사가 신약을 개발하여 성공에 이르는 길은 고난의 가시밭길이다. 투자의 관점에서는 망할 리스크가 매우 높은 투자이다. 다만, 리스크가 높으면 이익도 높을 수 있는 법. 한번 성공하면 그야말로 대박에 이를 수 있는 산업이 제약 산업이다.

 

임상 시험 통과율. 이것 저것 다 하면 결국 약 9.6% 정도만이 임상 시험을 통과한다. (원본 : Fortune)

 

미국의 FDA처럼 각 나라마다 이를 담당하는 기관들이 있다. 우리나라는 식약처 (KFDA)가 이를 담당한다. 미국이 아닌 나라에서 임상시험을 통과하여 현지에서 판매 허가를 받았다 하더라도 미국 FDA의 인증을 받지 못했다면 세계 최대의 시장인 미국에서 판매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반면 미국 FDA만 통과하면 다른 나라들에서는 쉽게 받아준다. 따라서 미국 FDA의 허가는 사실상 전세계적인 판매 허가를 받는 것인 만큼, 제약회사들에게 있어 미국 FDA 통과는 말 그대로 성배이며, 그 회사가 개발하고 있는 후보 물질이 미국 FDA 임상 시험 통과가 임박했다는 소식만으로도 그 회사의 주가가 요동친다. 이번에 인보사의 문제가 수면위에 떠오른 것도 미국 FDA의 임상 시험을 통과 하던 과정에서였다.

 

유전자 세포 치료제는 무엇인가?

우리가 “약”이라고 하는 것이 보통 분자 단위의 화학 물질인 경우가 많다. 예를들면 아스피린은 2-Acetoxybenzoic acid이라고 불리는 작은 분자 물질이고, 두통 치통 생리통의 타이레놀은 acetaminophen이라고 불리는 작은 크기의 화학 물질이다.

인보사는 “유전자 세포 치료제”라고 한단다. 소위 말하는 “간지” 나는 단어는 모두 들어가 있다. 보통은 “유전자 치료제” 아니면 “세포 치료제”로 나누어 부른다. 유전자 치료제는 아스피린이나 타이레놀과 같은 작은 크기의 분자 성분이 아니라 DNA 혹은 RNA, 즉, 우리 몸의 정보 물질을 몸에 직접 넣는 치료제이다. 당연히 성분은 DNA 또는 RNA 이다. 세포 치료제는 특정 세포를 몸에 주입하는 것이다. 인보사는 세포 치료제에 더 가깝다. 세포가 통째로 들어가다 보니 아스피린 같이 한가지 물질만 딱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세포안의 모든 물질이 통째로 다 들어간다.

전통적인 약인 아스피린이나 타이레놀에 비해 유전자 치료제나 세포 치료제는 그 역사가 그리 오래 되지 않았다. 그리고 그 효능이 정확히 증명 되지도 않았다. FDA 공식 홈페이지를 가면 인증 받은 유전자 세포 치료제의 목록이 나온다. 현재까지 겨우 16개 밖에 안된다. 인보사도 여기에 끼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을 것이다.

FDA 홈페이지, 원본

 

연골 세포

무릎 연골, 좀 더 정확하게는 반월상연골 (반달처럼 생겨서 반월상 연골이다.)은 무릎의 안쪽과 바깥쪽에 하나씩 자리하고 있어 무릎관절을 보호하고 무릎이 받는 충격을 완화해 주는 역할을 한다. 안타깝게도 연골은 한번 손상되면 재생이 안된다. 이게 재생만 되었어도 우리는 국가대표 주장 박지성을 몇년 더 볼 수 있었을 지 모른다.

연골에는 신경이 없다 보니 찢어지거나 닳아도 통증을 느끼지 못하며, 연골이 닳아 아래위 뼈가 부딪쳐야 비로소 통증을 느낀다.

인보사는 이 연골이 재생되도록 도와줌으로써(!) 퇴행성 관절염을 개선한다는 주사제이다. 연골이 닳아 없어진 부위에 연골 세포를 직접 주입함으로써 연골이 재생될 수 있다는 원리이다. 연골이 재생된다니! 관절염 환자들에게는 정말 귀가 번쩍 뜨이는 소식이다.

인보사는 두개의 주사제로 구성되어 있는데, 하나는 연골 세포를 포함하고 있는 주사, 또 다른 하나는 연골세포 + 세포의 성장을 돕는 요소들이 들어있는 주사이다. 이 두가지를 섞어서 무릎에 직접 주사함으로써 연골을 재생하겠다는 것이 인보사의 희망 사항이었다.

세상 만사가 다 이렇게 쉽게 풀리면 얼마나 좋겠냐만은 안타깝게도 인보사는 연골 재생의 효과가 검증되지는 않았다. 대신 이 주사제를 맞은 사람은 통증이 조금 완화된다는 보고가 있었다. 그래서 허가가 났다. 솔직히 무릎에 히알루론산(관절액의 주 성분인 윤활성 물질)을 주입해도 좀 덜 아플것 같다고 보지만, 어쨌건 어쨌건 환자들이 덜아프다고 하니 식약처에서 허가를 내 줬고 판매가 되었다. 이 허가 과정에도 석연찮은 부분들이 많이 있으나, 이는 법정에서 다투어야 할 부분인 만큼 이 글에서 다루지는 않겠다.

문제는, 두번째 주사액, 연골세포 + 세포의 성장을 돕는 요소들이 들어있는 주사제 안에서 발견된 세포들이 연골세포가 아니라 신장 세포였다는 말이다.

신장 세포 (HEK293)

가장 경악스러운 사실이다. 원래 들어가 있어야 할 연골 세포가 아니라 다른 세포가 들어가 있단다. 그런데 뜬금 없이 웬 신장 세포인가?

의학이나 생물학에서는 연구에서는 소위 “세포주” 혹은 쎌라인(cell line)이라는 개념이 있다. 실험이나 연구를 하기 좋은 유명한 세포들을 말한다. 이 세포들은 여러 차례 계대 배양을 해도 잘 변하거나 죽지 않고, 재현성 있는 실험 결과를 만들어 주기 때문에 전세계 수 많은 실험실에서 공통적으로 사용하는 세포들을 말한다. 가장 유명한 것으로는 헨리에타 랙스(Henretta Lacks)라는 한 여성의 자궁암 조직 세포로서 그녀의 이름 첫머리를 따 HeLa 세포라 부는 세포주인데, 인권에 대한 개념이 전혀 없던 시절, 그녀 몸에서 분리된 뒤 전세계 랩으로 퍼져 나가 정작 세포 주인은 사망한지 수십년이 지났는데도 그녀의 세포는 여기 저기에서 아직도 살고 있는 안타까운 쎌라인이다.

그것이 미안했던지 최초로 그녀의 세포로 셀라인을 만든 존스홉킨스 대학은 새로 지은 건물에 그녀의 (의도치 않은) 공헌을 기렸다.

 

이번에 인보사에 들어가 있는 것으로 알려진 신장 세포는 HEK293라 불리우는 녀석인데. 이 세포는 위에서 말한 HeLa와 같은 실험용 세포주들 중 하나이다. 이 또한 인권에 대한 개념이 전혀 없던 시절인 1973년 네덜란드의 한 연구자가 낙태한 아기의 신장에서 뽑아낸 뒤 바이러스를 감염시켜 지속적으로 자라날 수 있는 (영구증식이 가능한) 하나의 세포주로 정립 시킨 것이다. 293번째로 실험한 결과 만들어진 세포주라고 해서 Human Embryo Kidney 293이라고 명명되었다. 키우기가 워낙 쉽고 단백질 발현도 잘 되어서 주로 외래 유전자를 삽입한 후 이를 단백질로 만드는데 많이 사용되는 실험용 세포주이다. 이번에 인보사에서 발견되었다는 세포가 바로 이 HEK293이다. 살짝 느낌이 오는가? 그냥 단순히 인간 유래 신장 세포가 잘못 들어간 것이 아니라, 실험용으로, 단백질 발현용으로 실험실에서 도구처럼 사용하던 무한 증식이 가능한 세포가 연골 세포로 둔갑하여 환자들의 몸 속에 투여된 것이다. 그리고 이 잘못을 십수년간 전혀 인지하지 못한 채 약을 시판하고 있던 것이다.

간단하게 말하면 식용유 제조 라인 기계에 들어가는 윤활유를 식용유로 판매한것이다. 아니, 그보다 훨씬 더 심한 일이다.

정확한 원인은 좀 더 조사해 보아야 나오겠지만, 이번 사건을 처음 들었을때 필자의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초기 샘플의 라벨링 실수일것 같다는 생각이다. 실험실에서 튜브 바뀌는거, 은근 자주 발생하는 일이다. 아무리 실험을 잘 했어도 라벨링이 잘못 됐으면 아무 의미 없다. 이것을 막기 위해 대학원생들은 실험실 생활 초기부터 라벨링이 생명이라는 교육을 뼈저리게 받는다.

작년에 나온 한 논문에 따르면 전세계적으로 연구에 사용되는 세포주들 중 약 15-30% 정도가 잘못된 라벨링, 혹은 다른 세포주와의 오염으로 인해 연구자가 생각하고 있는 그 세포가 아닐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그런데 이게 단순 대학원 실험실에서의 문제였다면 논문은 철회되고 지도교수는 매우 부끄럽고 시말서 쓰고 실험자는 아마도 해고 되고 말겠지만, 이게 전문 제약 생산 기업의 생산 라인에서 발생한 일이라는게 문제다. 약 만들어 돈벌이 하는 회사가 이 정도의 아마추어 수준의 세포 관리를 하고 있었다? 상상하기 힘든 일이다. 위에서도 설명했지만 HEK293은 수십년전 유럽에서 낙태한 태아에서 뽑아낸 신장 세포에 특정 바이러스를 감염시켜 영구 증식이 가능하도록 만든 세포이다. 영구증식은 사실상 “암”을 말한다. 세포는 고칠 수 없는 문제가 발생하면 스스로 사멸의 길로 접어들어 전체 개체를 보호하는 프로그램이 있다. 이것을 벗어나 무한 증식하는 세포가 암세포이다. 대부분의 세포주들이 암세포인 것도 이러한 이유이다. 암세포로 발전할 가능성이 농후한 세포를 무릎에 주입한 것이다.

 

시사점

이 회사가 고의적으로 연골 세포 대신 HEK293을 넣었을 가능성은 적다고 본다. 회사가 양심적이어서라기 보다는 그렇게 해서 얻을 수 있는 이익이 별로 없을 뿐만 아니라 발각될 경우 몰려올 쓰나미를 예상하지 못할 정도로 바보는 아니었을 것이라 보기 때문이다. 하지만 회사가 이 사실을 인지한 시점에 대한 의문은 여전히 남는다. 이번에 마치 회사가 자수한 모양새를 취하기는 했으나 미국 FDA의 인증을 위한 추가 조사를 하다가 발견된 것이고, 몇가지 정황에 따르면 이미 2년 전에 다른 파트너로부터 이 문제에 대한 지적을 받은 바가 있다는 의혹이 제기 되었기 때문이다. 이 부분들은 과학이라기 보다는 형사/민사 소송, 그리고 법정의 증거 싸움의 소재인 만큼 이 글에서는 다루지 않겠다. 다만, 아주 간단한 테스트 하나만 해 보았어도 확인할 수 있었을 일을, 회사가 제공하는 자료만 믿고 판매 허가를 내 준 식약처 내 관련자들에 대한 조사는 반드시 필요할 것 같다. 이와 관련하여서는 비디오머그의 영상에서 매우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이 주사제를 맞은 사람의 수가 3700여명이다. 주사 한번 맞는데 700만원이라고 하니 단순 계산해봐도 대충 260억원이다. 초등학생도 하지 않을 실수를, 그리고 절대로 해서는 안될 실수로 탄생한 주사제가 국민 수천명에게 이미 투여가 되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21세기 한복판, GDP 대비 R&D 투자 비중이 세계에서 가장 높다는 대한민국에서 일어날 수 있는가 싶다. 게다가 그 인증 과정마저도 여러가지 의혹이 있으며, 업체는 이 문제를 적어도 수년 전에 인지하고 있었을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방사선으로 세포를 사멸시켰기 때문에 종양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없다고 주장하지만, 그것은 발생 가능한 최악의 상황만은 피하고자 하는 회사의 희망 사항일 것이다.

황우석 사건은 논문 조작이자 사기, 그리고 신뢰의 배신이었지만, 이번 사건은 3000명의 생명을 담보로 한 러시안 룰렛이다. 그래서 훨씬 더 죄질이 나쁘다. 해당 주사제를 투여 받은 환자들을 대상으로 전수 조사가 이루어져 한다. 정부는 법적으로 가능한 가장 큰 징계를 통해 일벌백계를 보여줄 필요가 있다. 회사의 서류만을 믿고 허가를 내 준 식약처도 조사가 필요하다. 이런것 잡아내라고 국민의 세금으로 월급 주는 기관이 식약처 아닌가.

있을 수 없는, 있어서도 안되는 일이 벌어졌다.

안타깝다는 말만으로 부족한 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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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KD

나는 누구고 여긴 어딘데 나는 왜 유전자에 관한 글을 쓰고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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