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역설 – 길어진 수명과 증가한 노인 빈곤

다음 글은 영국의 the Guardian의 "South Korea's inequality paradox : long life, good health and poverty"를 번역한 글 입니다. 과학 관련한 내용은 아닙니다만 곱씹어 볼만한 내용이 있다 판단하여 게재합니다. (커버 사진 :  A cardboard collector near Tapgol Park in Seoul. Paper and cardboard can be sold to earn for a few thousand won a day. Photograph: Justin McCurry)

올해 초, 여러 나라의 과학자들로 구성된 연구진은 2030년이 되면 한국의 여성이 현재 세계 최장수 국가인 일본을 제치고 평균 90세까지의 기대 수명을 지닌다는 놀라운 보고서를 내 놓았다. Lancet에 발표된 이 보고서는 남녀 통틀어 평균 수명 90세 이상을 최초로 예측한 보고서다.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산업화가 진행된 국가들 중 가장 크게 늘어난 기대 수명을 보이는 국가인데, 이는 2010년에 비하여 6.6년이나 늘어난 기대 수명이다. 한국 남성의 경우에도 비슷한 수준의 증가를 보여 세계 최고 수준인 84세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보고서는 한국이 1950년 625동란의 참화를 딛고 발전을 거듭하여 현재는 핸드폰과 같은 전자 제품 심지어는 김치나 K-pop의 수출 국가로까지 탈바꿈 한 것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보고서는 이러한 기대 수명 증가와는 모순적이게도 한국의 65세 이상 국민의 절반 가량이 가난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였다. OECD 자료에 따르면 2011년도 한국 고령 인구의 48.6%가 평균 가구 소득의 절반 이하를 벌어들이고 있으며 이 비율은 OECD 34개국 중 가장 높은 수치이다.

이들 중 1/4 정도는 독거 노인들로서 고독과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으며 그 결과, 2000년도에 10만명당 34명이었던 노인 자살율은 불과 10년만에 72명으로 증가하였다.

중앙대학교 사회학과 교수인 신광영씨는 “한국의 기대 수명은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증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너무 빠르게 증가한 나머지 대다수의 노인들이 상대적 가난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라고 이야기 한다.

 

빈곤한 가계 저축과 돌봐 줄 가족의 부재

서울의 탑골 공원에는 인근 사찰에서 제공하는 무료 점심 배급을 받기 위하여 노인들이 줄을 선다. 공원 입구에는 “당신은 우리의 희망입니다”라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일년 내내 여는 이 무료 급식소는 하루 평균 140여명에게 급식을 제공해 왔으나, 자원 봉사자 강소윤씨에 따르면 이 숫자는 최근 200여명으로 증가하였다.

“가장 큰 이유는 경제 구조가 좋지 않은 방향으로 만들어지고, 나이 드신 분들이 일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무료 급식이 하루에 드시는 유일한 식사이신 분들도 있어요. 이것 마저 없다면 길거리에서 동냥을 하셔야 할지도 모릅니다” 라고 강씨는 이야기 한다.

역설적이게도 이들 노인 빈곤의 일부 이유는 자식 양육 때문이다. 중앙대의 신교수는 “이 분들이 경제활동을 하시던 시기에 벌어들인 수입은 모두 자식 교육을 위해 쏟아 붓다 보니 정작 본인의 노후 자금을 마련하지 못했습니다.” 라고 이야기 한다.

이름을 밝히지 않은 한 70대 후반의 한 노인은 자신의 연금만으로는 생계를 유지할 수 없다고 한다. “무료 급식 받으러 나왔어요. 제 자식들은 자기 살림 살기에도 바빠요. 아이들에게 바라는 것은 별로 없습니다. 그저 매달 용돈이라도 조금 준다면 아주 고맙겠어요.”

신교수는 “전통적인 유교 사상에서는 아이들이 부모를 봉양해야 하는 것은 매우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나 가족 단위가 큰 변화를 겪으면서 결혼한 자녀와 같이 사는 노인들이 상대적으로 – 예를 들어 일본과 비규한다면 – 매우 적어졌습니다. 증가하는 양극화는 자식들이 부모를 봉양하기가 점점 어려워지게 만들고 있습니다”라고 한다.

무료 급식소 주변으로는 노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실버 경제”가 만들어지고 있다. 싸구려 중고 시계, 보석, 옷가지 등이 공원 주변의 도로가에 펼쳐져 있다. 폐지를 실은 리어카를 끌고 다니는 노인들의 모습도 종종 보인다. 이렇게 하루 종일 수집 된 폐지는 불과 몇천원에 매입된다.

공원을 정기적으로 찾는 김진양씨(72)는 월남전에 참전한 덕분에 가장 높은 금액의 연금 대상에 포함이 되었지만 고엽제의 후유증으로 고생하고 있다. 미군 부대에서 배달원으로 근무했던 김씨는 “조국을 위해 내 자신을 바쳤습니다. 하지만 나는 정부로부터 받은게 없어요. 그래도 내 생활 방식을 형편에 맞춰 그럭 저럭 살아가고 있어요.”

 

저렴한 보건 시스템

노인 재정 문제는 지난 5월의 대선에서 키 이슈로 부각되었다. 이 대선에서 진보 계열의 인권 변호사 출신으로 나섰던 문재인 후보의 승리에는 기존 보수 정당 출신의 대통령이었으나 사회적 소득 격차 문제를 잡지 못하던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반감도 일부 기여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 당시 기초 연금 수령액을 월 20만원에서 30만원으로 증가시키고, 노인을 위한 일자리 80만개를 창출하고 법정 최저 임금을 올리겠다는 공약을 내세웠다. 그는 알츠하이머나 치매와 같은 노인성 질환 환자에 대한 보조금을 지급하고 간병인에 대한 지급액을 높이며 노인들을 위한 사회 주택 (social housing)의 보조금을 높일 예정이다.

일본과 마찬가지로 한국은 향후 수십년 이내에 매우 큰 인구 구성 비율의 변화를 겪을 예정이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60년 경에는 65세 이상이 전체 인구의 40%를 차지할 것으로 보이며 이는 현재의 13%에 비하면 매우 높은 비율이다.

이 글 첫머리에서 언급하였던 보고서의 저자인 바릴리스 콘티스는 “최근 20년간 한국의 기대 수명은 매우 높은 속도로 증가하였습니다. 감소세를 전혀 찾아볼 수 없었죠. 그래서 2030년에는 이 정도 수준에 도달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라고 이야기 한다.

영국 임페리얼 칼리지에서 공공 보건학을 연구하는 콘티스는 이러한 한국의 높은 기대 수명과 낮은 노인 소득은 매우 모순적이라는 사실에 동의한다. “이 모순은 한국이 노인 보건을 포함하여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의 보건 시스템을 갖춘 나라라는 점으로 설명됩니다. 그리고 한국의 낮은 노인 비만율도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이 두가지는 노인들의 심혈관 질환 발병율을 스위스나 호주, 뉴질랜드와 같은 서구 사회에 비해 크게 낮췄습니다. ”

연세대학교 행정학과의 양재진 교수에 따르면 공공 한국의 수십년간의 급격한 경제 발전의 혜택이 모든 이에게 동등하게 분배된 것이 아닌것은 분명하지만, 포괄적이면서도 저렴한 보건 시스템이 노인들의 건강에 크게 기여한 것이 사실이다. “한국의 고령 빈곤화는 절대적 빈곤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평균 소득의 50% 이하의 상대 빈곤을 말하는 것이지요. 그게 바로 가난한 노인들이 여전히 오래 살 수 있는 이유입니다. 게다가 보건 정책은 모든 이에게 적용되기 때문에 가난한 사람들의 치료는 국가가 부담합니다.”

한국의 놀라운 기대 수명 증가가 결국 미래의 위협으로 다가올 것인가? 콘티스는 기대 수명 증가 예상이 바뀔수도 있다는 점을 전혀 배제하지는 않는다. 특히 만약 경제 위기가 찾아오고 노인 정책에 장기적인 해결책을 찾지 못한다면 말이다.

앞서 만났던 월남전 참전 용사 김씨는 탑골 공원의 무료 급식소를 찾는 것이 반드시 끼니를 해결하기 위해서만은 아니고 군대에서 느꼈던 동지애를 느끼기 위함이라며 이렇게 말한다 “현재의 한국에는 정의도 공평함도 없습니다. 아무도 남들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지 않습니다. 이 나라는 국가로서의 기능을 멈추었습니다.”

(번역 : tSL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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