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에 걸리지 않는 동물 – 벌거숭이 두더지 쥐

(Cover image credit : UIC photo)

미국 국립 암센터 (National Cancer Institute)의 2016년 자료에 따르면 미국에서만 일년에 약 170만명이 암으로 진단을 받으며, 60여만명이 암으로 사망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우리 나라 또한 2015년 사망 원인 통계 자료에 따르면 암으로 인한 사망이 전체 사망자 중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암은 사실상 누구나 걸릴 수 있고, 걸릴 경우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 질병인 만큼, 인간이 가진 수 많은 질환들 중 가장 많이 연구되어 오고 있는 질병입니다. 암은 일반적으로 특정 환경이나 생활 습관, 바이러스 그리고 유전적인 원인등에 의해서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왔지만, 최근 연구 결과에 따르면 암의 발생은 무작위적인 확률에 따라 발생하는 DNA상의 돌연변이에 의한 것이라고도 합니다. 아직 연구의 여지가 더 남아 있기는 합니다만 무작위적인 돌연변이에 의한 암의 발생은 사실상 그 누구도 암의 공포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다는 점을 시사합니다.

그러나 모든 생명체가 암에 걸리는 것은 아닙니다. 효모나 플라나리아 같은 미생물이나 원시적인 생물이 아닌 척추 동물이자 포유류에도 암에 걸리지 않는 동물이 있습니다. 바로 벌거숭이 두더지 쥐입니다.

우리 나라에 서식하는 생물은 아니다 보니 영어 이름인 Naked mole rat을 그대로 번역하여 벌거숭이 두더지 쥐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이하 두더지 쥐) 소말리아와 이디오피아 일대의 분지에 사는 이 쥐는 땅속에 긴 굴을 파고 살며 수 십여마리가 군집 생활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털이 없는 맨 살로 된 피부를 가지고 있고 땅 속에서만 사는 관계로 눈은 상당히 작고 거의 퇴화되었으며 땅속에서 굴을 파고 식물의 뿌리를 갉아 먹으며 살아가다보니 매우 큰 이빨을 가지고 있어서 얼핏 보기에는 다소 혐오스러운 외형을 가지고 있으나 사람에게 그리 공격적이지 않은 동물입니다.

현재까지 알려진 바에 따르면 야생에서 서식하는 두더지 쥐는 암에 걸리지 않습니다. 어떤 생명체가 암에 걸리는 원인은 워낙 다양하기 때문에 두더지 쥐가 암에 걸리지 않는 이유 또한 여러가지 가설에 의해 설명되고 있습니다만 정확히 어떤 메카니즘에 의하여 암에 걸리지 않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다만 야생에서 서식하고 있지 않고 동물원에서 사육되는 두더지 쥐는 흔하지는 않지만 암에도 걸린다는 사실이 최근 보고 되었습니다.

이로 보아 이들은 유전적으로 암을 억제하기 위한 장치를 갖추고 있는것 외에도 이들이 살고 있는 환경으로부터 도움을 받는 것으로 추측되고 있습니다. 암에 걸리지 않는다는 사실 외에도 이 두더지 쥐는 다른 포유류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는 매우 독특한 특성들이 있는데, 다음과 같습니다.

 

– 통증을 느끼지 않는다.

현재까지 실험된 바에 따르면 두더지 쥐는 적어도 피부에서는 통증을 느끼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바늘로 찌르거나 베는 등의 통증 외에도 고추의 매운 성분인 캅사이신이나 강산성 물질에도 통증을 느끼지 않는다고 합니다. 두더지 쥐의 피부 세포를 분석한 결과 통증 전달에 필수적인 펩타이드인 substance P가 존재하지 않는 것을 확인하였습니다.

통증은 생존에 불리한 것을 피할 수 있도록 고안된 장치이다보니 생존에 필수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더지 쥐가 피부 통증을 느끼지 않도록 진화한 원인에 대해서는 아직도 연구 중입니다.

Photo Credit: Thomas Park, PhD University of Illinois at Chicago

 

– 장수한다.

비슷한 몸 크기의 설치류인 쥐 (rat)는 약 3년 정도의 수명을 가지고 있는데 반해, 두더지 쥐는 약 30여년 이상을 사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는 모든 설치류 동물들 중 가장 긴 수명입니다. 거의 대부분의 설치류들이 1년 내외의 수명을 가지고 있고, 두더지 쥐를 제외하고 가장 긴 수명을 가진 알프스 마못이나 호저 등이 불과 10-12년 정도를 사는 것에 비하면 상상할 수 없이 긴 수명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두더지 쥐는 노화를 연구하는 연구자들에게도 큰 관심의 대상입니다. 다만, 암에 걸리지 않기 때문에 수명이 긴 것인지, 긴 수명을 가지게 하는 요소들이 암에 걸리지도 않도록 하는 것인지도 아직까지는 불분명합니다.

 

– 산소가 희박한 환경에서도 살 수 있다.

땅 속에 굴을 파고 사는 동물인 만큼 희박한 산소의 환경에 노출되는 일이 많은 것은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지만, 두더지 쥐는 일반적인 상상을 초월합니다. 일반적인 대기에 약 23.5%의 산소가 존재하고 있고 인간은 산소 농도가 15%정도까지만 떨어져도 바로 산소 부족 증상이 나타나고 10% 이하에서는 사망할 수 있습니다만, 두더지 쥐는 5%의 산소 환경에서도 5시간 이상을 버틸 수 있고, 산소가 전혀 없는 환경에서도 18분 이상을 버틸 수 있습니다.

생명체가 산소를 필요로 하는 이유는 우리 몸의 에너지원인 ATP를 생성하기 위함인데, 이 ATP는 포도당이 산소를 필요로 하는 glycolysis 과정을 거치면서 생성됩니다. 우리가 호흡을 오래 참을 수 없는 근본적인 이유는 우리 몸의 ATP 비축량이 불과 1-2분 정도밖에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호흡을 길게 참을 수 있는 고래와 같은 동물들은 근육에 마이오신 (myosin)을 대량으로 보유하고 여기에 산소를 비축함으로서 이 긴 시간을 버티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 연구 결과에 따르면 두더지 쥐는 이 glycolysis 과정이 아닌 fructose(과당)를 lactate(젖산)로 근육에서 전환함으로서 ATP를 생성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사람을 비롯한 다른 동물들에서도 이와 유사한 대사 능력이 있습니다만, 젖산의 생성으로 인한 근육의 pH 변화로 인해 이에 전적으로 의존해서 살아갈 수는 없습니다. 급격한 운동 뒤에 근육통이 오는 것이 이 젖산 대사의 결과입니다. 하지만 두더지 쥐는 산소 고갈시 이 대사 과정을 통해서 생명을 이어 나가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로 인해서 발생하는 acidosis(근육의 pH가 낮아서 생명을 위협할 수도 있는 상황, 근육통)을 어떤식으로 극복하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 변온 동물이다.

두더지 쥐는 포유류들 중 유일하게 변온 동물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이는 척추 동물들 중에서는 파충류나 양서류 등에서만 발견되는 특성으로 스스로 체온을 유지할 능력이 없음을 이야기 합니다.

정온 동물과 변온 동물의 환경에 따른 체온 변화 (http://fig.cox.miami.edu/~cmallery/150/physiol/physiology.htm)

아프리카 분지의 땅 속에서 동굴을 파고 사는 동물인 만큼 외부 환경에 따른 체온 변화가 크지 않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됩니다만, 비슷한 환경에서 사는 두더지와 같은 동물들은 모두 정온 동물이라는 점을 볼때, 이들만 변온 동물인 이유도 아직 불분명합니다.

하지만 일반적인 정온 동물들이 자신이 섭취하는 열량의 상당 부분을 체온 유지에 써야 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는 생존에 많은 에너지를 사용하지 않아도 되는 장점을 가져다 주기도 합니다. 특히 DNA 손상과 그로 인한 암 발생의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는 산소 래디칼의 생성을 현저하게 줄여줄 수 있다는 장점도 있습니다.

 

– 개미나 벌과 같은 군집 생활을 한다.

벌거숭이 쥐는 대략 70여마리가 군집 생활을 하는데, 비슷하게 군집 생활을 하는 미어캣과 같은 포유류와는 현저하게 다른 방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개미나 벌 등의 곤충과 더 유사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단 한마리의 여왕 쥐와 1-3마리 정도의 수컷 쥐가 오로지 자손을 생산하는 일에만 종사하며, 다른 쥐들은 모두 일꾼 쥐의 역할을 합니다. 덩치가 큰 쥐들은 주로 외부의 침입자로부터 무리를 지키는 역할을 하고, 작은 쥐들은 굴을 파거나 먹이를 찾아오거나 새끼 쥐를 양육하는 일을 담당합니다. 여왕쥐가 사라질 경우, 일꾼 쥐 암컷 중 한마리가 자연스럽게 여왕쥐가 되어 자손의 생산을 시작하게 됩니다. 모든 암컷 쥐들은 여왕쥐가 되기 전까지는 난소가 발육을 멈추어 사실상 자손을 생산하는 것이 불가능한 상태로 있다가 여왕쥐의 역할을 맡는 순간부터 난소 발육을 시작합니다. 포유류 중 이러한 생식 기능의 분업 체계를 이루고 있는 동물은 두더지 쥐가 유일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image credit : Logan Parson (http://www.parsonsillustration.com/)

그 외에 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두더지 쥐는 단백질을 생성하는 과정 (translation)에 관여하는 28s 리보솜 RNA (28s ribosomal RNA)에 다른 포유류에는 없는 특별한 구조가 있어서 RNA에서 단백질이 생성되는 과정의 정확도가 훨씬 더 높으며 DNA 손상을 복구하는 유전자가 다른 종들에 비하여 매우 활성화 되어 있다고 합니다.

통증도 느끼지 않고 수명도 길고 암도 없고 산소가 희박해도 살 수 있으니 이쯤 되면 거의 불사신이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겠습니다만, 이들 생존의 최대의 적은 바로 뱀이라고 합니다. 주로 땅굴을 파고 남은 모래를 굴 밖으로 내보내다가 잡아 먹히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다행스럽게도 동부 아프리카에 널리 서식하고 있어서 멸종 위기종으로 분류되지는 않았습니다.

벌거숭이 두더지 쥐는 포유류에 속하면서도 곤충과도 같은 군집 생활을 하고, 파충류와 같은 변온 동물이며, 통증을 느끼지 못하고, 산소가 부족해도 살아갈 수 있으며, 암에 걸리지 않는 매우 독특한 동물입니다. 두더지 쥐가 인류의 암을 정복을 앞당겨 줄 수 있는 핵심적인 정보를 제공해 줄 날이 올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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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cience Life의 편집장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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