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인슈타인이 타계한지 60년도 넘었습니다만 과학계는 아직도 시대를 뛰어 넘는 그의 선견지명으로 놀라고 있습니다. 중력파의 존재를 그가 처음으로 제안한 것은 1916년에 발표한 일반 상대성 이론 논문에서였는데 그로부터 무려 100여년이 지난 2017년 중력파가 실제로 검출되어 세계를 놀라게 하고 있습니다. 인류 역사에 천재가 단 한명만 있었다면 그 한명은 아인슈타인이 될 가능성이 가장 높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가 예언한 것이 중력파만은 아닌 것 같아보입니다. 마치 오늘날의 SNS상의 악플에 대응하는 방법 처럼 보이는 편지가 있습니다. 1911년 프라하에서 아인슈타인이 마리 퀴리에게 보낸 편지 입니다. 작년 프린스턴 대학이 제작한 아인슈타인의 편지 모음집을 통해 공개된 내용인데, 편지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퀴리 여사에게,
시덥잖은 일로 편지를 쓴다고 당신은 비웃을지 모르겠지만, 나는 사람들이 당신을 대하는 매너를 보고 너무 화가 나서 이 감정을 배출하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나는 이 시정잡배들이 오버스럽게 아첨을 하거나 선정적인 기사를 쏟아 내거나 상관 없이 당신이 이들을 철저히 잘 무시하고 있는것 같아서 마음이 놓입니다. 당신이 얼마나 지적이고 강단 있으며 정직한지를 보고 나는 당신을 존경하게 되었으며, 우리가 브루셀에서 만난 이후로 내가 당신의 지인이 된 것을 큰 행운으로 생각합니다.
당신이나 Langevin 그리고 나와 같은 사람들은 이 뱀같은 부류의 인간들에 속하지 않아서 행복하고 또 우리가 이렇게 서로 연락을 주고 받을 수 있는 것을 나는 큰 특권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인간들이 계속 이런식으로 나온다면, 간단히 무시하세요. 그런 쓰레기 같은 말은 무시하고 그냥 자기네끼리 알아서 놀게 내버려 두세요.
큰 사랑을 담아서 당신과 Langevin, 그리고 Perrin에게,
아인슈타인
독어 원문 및 영어 번역
Hoch geehrte Frau Curie!
Lachen Sie nicht über mich, wenn ich Ihnen schreibe, ohne Ihnen etwas Verständiges zu sagen zu haben. Aber ich bin so wütend über die niederträchtige Art, in der sich der Pöbel gegenwärtig mit Ihnen zu befassen wagt, dass ich diesem Gefühl unbedingt Ausdruck geben muss. Aber ich bin überzeugt, dass Sie diesen Pö- bel stets gleich verachten, ob er Ehrfurcht heuchelt oder seine Sensationslust durch Sie zu stillen sucht! Es drängt mich, Ihnen zu sagen, wie ich Ihren Geist, Ihre Thatkraft und Ihre Ehrlichkeit bewundern gelernt habe, und dass ich mich glücklich schätze, Ihre persönliche Bekanntschaft in Brüssel gemacht zu haben.
Wer nicht zu den Reptilien zählt, wird sich nach wie vor freuen, das wir solche Persönlichkeiten wie Sie und auch Langevin unter uns haben, wirkliche Menschen, im Verkehr mit denen man sich glücklich fühlt. Wenn sich der Pöbel noch weiter mit Ihnen befasst, so lesen Sie einfach das Gewäsch nicht, sondern überlassen Sie das dem Reptil, für das es fabriziert ist.
Es grüsst Sie, Langevin und Perrin, freunschaftlichst Ihr ganz ergebener
A. Einstein
Dear highly esteemed Mrs. Curie,
Do not laugh at me for writing you without having anything sensible to say. But I am so enraged by the base manner in which the public is presently daring to concern itself with you that I absolutely must give vent to this feeling. However, I am convinced that you consistently despise this rabble, whether it obsequiously lavishes respect on you or whether it attempts to satiate its lust for sensationalism! I am impelled to tell you how much I have come to admire your intellect, your drive, and your honesty, and that I consider myself lucky to have made your personal acquaintance in Brussels.
Anyone who does not number among these reptiles is certainly happy, now as before, that we have such personages among us as you, and Langevin too, real people with whom one feels privileged to be in contact.
If the rabble continues to occupy itself with you, then simply don’t read that hogwash, but rather leave it to the reptile for whom it has been fabricated.
With most amicable regards to you, Langevin, and Perrin, yours very truly,
A. Einstein
배경 설명
최초의 여성 노벨상 수상자이자 파리 대학의 최초 여성 교수이며 노벨상을 2회 수상하는 등등 수 많은 세계 최초 최고 최대 타이틀로도 설명이 부족한 마리 퀴리는, 남편인 피에르 퀴리가 1906년 비극적인 교통사고로 사망한지 5년이 지난 1911년 여름, 사별한 남편의 제자이자 저명한 물리학자인 랑게빈 (Langevin)과 사랑에 빠지게 됩니다. 문제는 랑게빈이 이미 결혼한 상태였다는 점입니다.
마리 퀴리와 랑게빈 (출처)
그 해 11월, 노벨 위원회에서는 마리 퀴리를 수상자로 지명합니다. 그녀로서는 두번째 수상입니다. 그런데 수상자 지명 사흘 전, 랑게빈의 부인은 마리 퀴리와 자신의 남편 사이의 불륜을 공식적으로 언론에 발표하고 랑게빈을 고발하여 아이의 양육권과 재산 분할을 놓고 재판 날짜를 잡습니다.
당시 이 소식을 들은 스웨덴의 저명한 생화학자 올로프 하마스텐 (Olof Hammarsten, 우유가 응고되어 치즈가 되는 원리를 밝힘)은 다음과 같이 이야기 합니다.
“이런 스캔들이 퍼지지 않도록 모든 조치를 취해야 하며, 나의 생각으로는 퀴리가 스톡홀름에 오지 않는 것이 좋을것 같다. 만약 그녀가 온다면 이러한 이슈들이 수면 위로 떠오를 것이고 이는 수상식, 특히 저녁 만찬 (스웨덴 국왕 및 왕가와 함께 식사하는 자리이기 때문에)에 문제를 일으킬 것이다.”
“We must do everything that we can to avoid a scandal and try, in my opinion, to prevent Madame Curie from coming. If she comes and this matter surfaces, that would create difficulties at the ceremony, in particular at the banquet.” (출처)
또 다른 노벨상 수상자인 아레니우스 (Svante Arrhenius. 반응 속도 상수를 계산할 수 있는 수식인 아레니우스 식으로 유명)는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퀴리에게 편지를 보냅니다.
“제발 부탁인데 프랑스에 있어 주세요. 여기 오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릅니다. 랑게빈 재판에서 당신의 무죄가 밝혀질때까지는 수상하지 않겠다고 노벨 위원회에 전보를 보내세요.”
“I beg you to stay in France; no one can calculate what might happen here…I hope therefore that you will telegraph…that you do not wish to accept the prize before the Langevin trial shows the accusations about you are absolutely without foundation.” (출처)
아레니우스 (출처)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퀴리와 막역한 사이(사실은 띠동갑 누나)였던 알버트 아인슈타인은 저 위에 소개한 편지를 퀴리에게 보낸 것입니다.
출처 : Einstein papers, Princeton Univ.
심리적으로 무척 위축 되어 있던 마리 퀴리였지만, 결국 그녀는 이런 아인슈타인의 격려에 힘입어, “상은 사생활에 주는 것이 아닌 업적에 주는 것”이라고 이야기하며 당당하게 스톡홀름으로 향합니다. 물론 수상식과 저녁 만찬 모두 아무 일 없이 진행됩니다.
지금의 프랑스는 공인의 사생활이 공적인 업무 수행 평가에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는 매우 리버럴한 국가로 알려져 있습니다만 1900년대 초만 하더라도 이 둘의 구분이 이루어지지 않았던 사회인 것으로 보입니다. 두번째 노벨상을 수상한 뒤 마리 퀴리는 우울증과 신장 질환으로 고통을 겪습니다. 그리고 오랜 기간 동안의 방사능 노출이 원인인 것으로 추정 되는 빈혈증으로 1934년 사망합니다.
아인슈타인이 퀴리를 처음 만난 해는 정확히 알려지지는 않고 있습니다만, 저 위 편지에서 브루셀을 언급한 것은 아마도 1911년 제 1회 솔베이 컨퍼런스를 지칭한 것으로 보입니다. 아인슈타인은 1934년 그녀가 사망할때까지 막역한 동료이자 친구 관계를 유지하며 같이 가족 단위로 알프스를 놀러가기도 하고 파리의 퀴리 집에서 머물기도 하였습니다. 1950년대의 한 인터뷰에서 아인슈타인은 가장 존경하는 학자로 로렌츠와 퀴리를 꼽을 정도로 아인슈타인은 퀴리의 지지자였습니다.
인류의 역사를 바꾼 정모라 일컬어 지는 1927년 제 5회 솔베이 컨퍼런스.. 교과서에서 보던 이름들이 저 안에 모두 있습니다.
“폴란드 태생의 유태인 여성이 방사능을 연구하여 노벨상을 두번 받았다”라는 간단한 한 문장으로 정리 되는 위인전식의 서술 방식 뒤에는 이렇게 수 많은 사람들의 우여곡절, 애환, 사랑, 노력, 그리고 고통이 숨어 있습니다. 역사에 가정은 없습니다만, 아인슈타인의 격려 편지가 없었다면 우리는 한 과학자의 업적이 그의 사생활 때문에 폄하되는 것을 목격했을지 모르겠습니다.
참고문헌
https://en.wikipedia.org/wiki/Marie_Curie
http://www.npr.org/sections/krulwich/2010/12/14/132031977/don-t-come-to-stockholm-madame-curie-s-nobel-scandal
https://www.mariecurie.org.uk/who/our-history/marie-curie-the-scientist#bvcW06feQRZ1cj0Z.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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