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유화 너~!

<confocal 현미경으로 촬영한 fibroblast>

도입

집을 짓는다고 가정해보자. 어떤 재료들이 필요할까? 벽을 세우려면 시멘트, 자갈, 모래, 이런 것들이 필요할 것이며 집안을 꾸미는 방식에 따라 나무도 필요하고 각 방의 필요에 따라서는 유리가 필요할 것이고 또 각종 전기 배선들도 필요할 것이다.

우리 몸도 비슷하다. 각 장기들이 담당한 기능에 맞춰 그 기능을 수행하기 위해 전문화된 세포들이 필요하다. 운동을 위해서는 수축과 이완을 담당하는 근육세포들이 필요하고, 사물을 보기 위해서는 빛을 받아들이는 시신경 세포, 생식을 위해서는 생식세포, 모든 조직을 관장하기 위한 신경세포까지. 이렇게 전문화된 세포들뿐만 아니라, 각 세포들을 연결해주고 지지하고 필요시 다른 다양한 역할을 수행하는 세포가 있다. 바로 섬유아세포(fibroblast)가 그 주인공이다.

<필자가 키우고 있는 섬유아세포>

 

섬유화

오랜시간동안 섬유아세포는 조직이 손상되었을 때 손상된 곳을 메꾸는 역할을 하는 단순한 세포로 여겨졌다. 세부 기전으로는 내/외부적인 충격에 의한 손상은 각종 염증 유발 물질을 방출하게 되고, 이에 의해 다양한 염증 반응들이 만들어지고, 직 간접적인 영향으로 주변에 있던 섬유아세포가 증식 및 활성화되어 자기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한다. 바로 섬유조직을 만드는 것이다. 누구나 다 알고 있는 것으로 피부에 상처가 났을 때 회복되면서 흉터가 생기는 것이 바로 이 현상이다.

<이미지: https://en.wikipedia.org/wiki/Scar>

섬유아세포에 의해 섬유조직이 만들어지는 일련의 과정은 섬유화(fibrosis)라고 한다. 조금 전에 언급했던 것처럼 내/외부적인 손상에 의해 섬유화가 유도되는데 이러한 과정은 조직의 회복과정에서 필수적으로 생길 수 밖에 없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섬유화는 고유 장기의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게 만드는 영향이 있다. 원래의 전문화된 세포가 아닌 섬유아세포가 그 자리를 대체하기에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다. 따라서 조직의 섬유화는 적절하게 제어되어야 원래 기능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다. 물에 빠진 사람 구해줬더니 보따리 내 놓으라는 형국이지만, 어쩌겠는가.. 조직의 섬유화가 부정적인 측면이 분명히 있는데 말이다.

바로 얼마전 굉장히 신선한 방식으로 이런 섬유화를 제거한 연구 결과가 발표되었다. 바로 세포 면역을 담당하는 T cell을 특수하게 훈련시켜서 전문화된 세포로 만들어서(CAR T cell)섬유화를 표적 삼아 공격하도록 만들었다. 신병훈련소를 수료한 얼치기 이등병을 특등 저격수로 만들어 내는 셈이다. 원래 CAR T cell은 암세포를 표적으로 하는 세포 치료법으로 미국 FDA의 승인을 얻었다. University of Pennsylvania, Perelman school of Medicine의 Jonathan Epstein 교수와 Haig Aghajanian 박사는 이 CAR T cell을 활용하여 섬유화를 제거하는 새로운 치료법으로 생각하였다.

<필자가 3초 Tom Cruise라고 우겨보는 Jonathan Epstein 교수, 위. 지금은 뽀글이 머리에 좀 더 삭은 Haig Aghajanian 박사, 아래. 한글은 읽을 줄 모르니 괜찮음ㅋ>

 

이 연구팀은 약물을 활용(대사성 심장섬유화)하거나 급성심근경색(직접적인 허혈성심근괴사 후 섬유화)을 유발하거나 혹은 압력과부하(비허혈성 심장섬유화)를 유발하여 심장에 섬유화를 유도하였으며, CAR T cell을 이용하여 심장에 발생한 심장섬유화를 효과적으로 제거하였으며 궁극적으로 심장 기능을 개선시켰다. 단순한 연구 접근법이면서 굉장히 직관적인 결과들을 도출해 냈다.

https://www.nature.com/articles/s41586-019-1546-z

<핵심 결과. CAR T cell에 의해 섬유화(fibrosis) 정도가 감소된 것을 볼 수 있다>

심장만 섬유화가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위에서 잠깐 언급했던 것처럼 다양한 원인에 의해 조직손상이 생기고 염증반응이 유발되면 필수 불가결하게 섬유화가 발생한다. 일시적인 조직 손상에 의해 생긴 섬유화라면 조직의 고유 기능을 수행하는데 그렇게 큰 장애를 초래하지는 않지만, 만성적인 조직 손상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유전병 혹은 바이러스 감염 등에 의해 만성적인 조직손상과 염증이 발생하는 다양한 상황에는 나이를 먹을수록 그 만큼의 섬유화가 진행되어 결국 장기를 잃게 되고 결과적으로 환자의 생명까지 잃게 만든다.

대표적으로 특발성폐섬유증, 석면폐섬유증, 다낭성신장증후군, 간경화를 꼽을 수 있으며 피부질환으로 확대한다면 간단하게 켈로이드, 천포창(pemphigus) 등등 무수히 많은 질환이 있다. 공통점이라면 모두 다 진행성이면서 동시에 난치병이라는 특징도 있다.

<보기에 따라 혐오감을 일으킬 수 있어서 관련 그림은 생략한다>

 

맺음말

섬유화 그 자체가 갖는 긍정적인 효과도 분명히 있다. 섬유화는 조직간의 결합력을 단단하게 하며, 특히 심장에서는 심방과 심실이 전기적으로 분리되어 부정맥이 발생하지 않도록 절연효과를 만들어 준다. 또, 심방과 심실 그리고 대혈관의 순서로 혈액이 흐르고 반대방향으로 역류하지 않도록 하는 판막들이 존재하는데 모두 다 섬유화 조직으로 이루어져있다. 동맥혈관의 신축성 역시 섬유화 조직들이 담당하고 있다.

<이미지: https://www.heartfoundation.org.nz/your-heart/heart-conditions/heart-valve-disease>

<이미지: https://en.wikipedia.org/wiki/Artery>

섬유화 질환들까지 CAR T cell의 적응증을 확장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정상적인 조직에 손상을 주지 않음을 확실하게 확인해야 할 것이다. 그렇지만 CAR T cell을 활용한 접근법은 부작용이 적으며 매우 효과적이어서 환자들에게 희망을 주는 결과임에는 분명하다.

향후, 환자에게 더욱 희망을 주는 연구 결과가 나올 수 있길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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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nuendo

질병의 후성 생물학적 연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 Through the sorrow all through our splendor. Don't take offence at my "Innuen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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