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SA의 쌍동이 실험건이 진정세로 접어드는 국면이다. 전세계적인 한바탕 소동 덕분에 사람들은 이제 “유전자의 변화”와 “유전자 발현의 변화”가 뭔지를 알게 되었다. 또, 이 덕분에 유전자에 대해서 이야기를 시작하겠다고 야심차게 선언했던 필자가 얼떨결에 불려나와 계획에 없던 주제로 두번째 글을 쓰게 되었다. 이미 tSL 편집장도 페이스북에서 몇 번 떠들었고, 또 여러 매체에서 뒤늦게나마 여러번 다루었으니 이 글에서 그 배경을 깊이 있게 다루고 싶지는 않다. 다만 누가 잘못했나를 한번 따져 보고 싶다. 그리고 이런 헛발질이 나올 수 밖에 없던 배경에 대해서 한번 생각해 보고자 한다.
우선 이 사태를 “키운 것”은 누가 뭐래도 팔할이 언론이다. 유전자가 7%나 바뀌었다는데 단 한번의 물음표 없이 그대로 받아 쓰다니….. AI가 제거할 직업의 데쓰노트 중 기자가 상단에 위치해 있다는 것이 다시 한번 증명되었다.
인공지능의 데쓰 노트. 위에서 두번째. Typist, keyboard worker 라고 쓰고 언론인이라고 읽는다.
하지만 근본적인 원인 제공은 NASA라고 본다. 꽤 긴 NASA의 언론 배포 자료 중 가장 핵심이 되는 부분들은 다음과 같다.
“Scott’s telomeres (endcaps of chromosomes that shorten as one ages) actually became significantly longer in space. While this finding was presented in 2017, the team verified this unexpected change with multiple assays and genomics testing. Additionally, a new finding is that the majority of those telomeres shortened within two days of Scott’s return to Earth.”
몇몇 키워드를 풀자면,
텔로미어 (Telomere)는 염색체의 끝을 차지하고 있는 의미 없어 보이는 시퀀스가 반복되는 구간인데, 세포 분열할때마다 소위 말하는 “end-problem”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조금씩 짧아진다. 이게 계속 짧아지다가 의미가 있는 부분까지 짧아지게 되면 각종 유전질환이 발병하면서 노화로 인한 사망에 이른다라는 실험 결과들이 꽤 있다. 다시 말하자면 텔로미어가 길어진다는 것은 노화로 인해 사망하지 않을 가능성, 즉 수명이 길어질지도 모른다는 것을 암시하게 해 준다. (덕분에 수 많은 유사 과학 영양제들이 텔로미어를 언급하며 약 파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영양분만 공급되면 죽지 않는 유명한 세포가 있다. 바로 암세포. 그래서 암세포에서는 이 텔로미어를 길게 늘려주는 텔로머라아제(telomerase)의 활성이 매우 높다. 분열할때마다 짧아지는 것을 틀에서 붕어빵 찍어내듯이 다시 만들어 붙여서 길게 만들어 주는 효소이다.
Telomerase의 활성이 높다고 좋은거 아니다. 세포별로 telomerase의 활성을 측정한 위 그래프 한번 보자. 왼쪽은 암세포들, 오른쪽은 정상 세포들…. 원본
NASA가 발견한 것은 어떤 알 수 없는 작용에 의해서 우주에 있는 동안 Scott의 텔로미어가 길어졌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발견은 이미 2017년도에 발표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대부분의 텔로미어가 지구로 귀환한지 이틀만에 다시 원상 복구 되었다고 한다. Scott이 영원한 삶을 살 일은 없어보인다.
“Another interesting finding concerned what some call the “space gene”, which was alluded to in 2017. Researchers now know that 93% of Scott’s genes returned to normal after landing. However, the remaining 7% point to possible longer term changes in genes related to his immune system, DNA repair, bone formation networks, hypoxia, and hypercapnia.”
여기가 오해의 불씨였는데, 발표 내용을 그대로 해석하자면 이 “우주 유전자” (작명 센스 하고는.. 2017년에 이미 발표했다고 하는데, 이는 아래 단락에서 다룬다.) 의 93%는 지구 귀환과 동시에 원상 복귀 되었지만, 7%는 바뀌지 않은 채로 그대로 남아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 유전자들은 면역이나 DNA 손상 복구 등등등에 영향을 미치는 녀석들이라고 한다.
일단, 백번 양보해서 바뀐 것이 유전자 발현이 아니라 유전자라고 하더라도, 93%가 원래대로 돌아갔다고 이야기 하면 상식적으로 “바뀐 유전자들 중 93%”라고 이해를 해야 하는게 맞다. 우주에 다녀왔다고 유전자 전부가 바뀔리는 없지 않겠는가. 이 대목에서 기자들은 NASA에 질문했어야 한다. 바뀐 유전자가 전체 유전자의 몇 %이냐고…..
그런데 2017년도에 살짝 발표했다는 space gene 기사를 찾아 보니 여기에서는 transcriptome (transcript + chromosome의 합성어. 세포 내에서 발현되는 모든 단백질 각각의 양을 그 중간 물질인 RNA의 생성 양을 통해 간접적으로 확인하는 학문), expression (발현) 과 같은 단어를 분명히 사용했다. 이 space gene들이 무엇인지 이름은 정확히 밝히지 않았지만, 어쨌건 2017년도에 발표한 내용은 유전자의 “발현”에 변화가 생긴다는 내용이었다. 문제는 올해 발표에서는 이 expression이라는 것을 쏙 빼 놓고서 언론 보도 배포를 했다는거다.
필자의 사견임을 전제로, 저 글을 쓴 담당자들은 아마도 생물학에 대한 배경 지식이 없는 사람들인것 같다. 하다 못해 자기가 작년에 배포한 자료만 다시 한번 읽어 보고 썼어도 이런 중요한 차이점을 놓칠 리는 없었을 것이고 이런 애매하고 불확실한 글이 언론 배포 자료라는 이름을 달고 전세계에 배포되지는 못했을거다. 그나마도 새로운 내용은 없고 모두 작년에 발표했던 내용의 재탕이다. 상세한 논문은 연말에 나온다고 바람만 잡고 있으며 정작 이번 발표에서 새로이 추가 된 내용이라고는 논란의 중심이 된 “7%” 소식 밖에는 없었다. 왜 발표를 한건지, 아니, 왜 지금 시점에 발표가 필요했던 것인지 솔직히 잘 이해가 안간다.
영화 마션 (Martian)에서 이런 언론 보도 자료 배포의 총괄 책임을 (아마도) 담당하셨던 분과 그 분이 하신 대사. (실제 인물 아님!)
사실 쌍둥이 우주비행사 덕분에 더 유명해지기는 했지만, 이 실험을 하는데 굳이 쌍둥이라는 조건이 필요하지는 않다. 어차피 일란성 쌍둥이라 하더라도 평생동안 매일 똑같은 끼니를 동일한 시간에 먹고 정확히 같은 공기를 호흡하며 심리적으로도 동일한 스트레스를 받는 등 완벽하게 고립된 공간에서 동일한 상태로 살지 않는 한 이 둘은 다른 개체로 자라난다. (심지어 그렇게 살아도 다를것 같다는게 필자의 견해. 동일하게 키운 쥐 두마리도 실험해보면 다르다.)
무중력과 저산소 공간에서의 인체 변화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그냥 우주 비행사 한 명을 대상으로 우주에 나가기 전, 나갔을 때, 그리고 돌아왔을 때 각각의 타임 포인트에 충분한 양의 샘플링을 해 놓고서 비교하면 된다. 그 사이 비행사의 연령이 변화하지 않겠냐.. 라고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지구에 남겨진 쌍둥이와의 차이보다는 작을거다. 굳이 대조군으로 지구에 살고 있는 유전적으로 동일한 사람을 볼 필요가 없다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똑같이 생긴 두 우주 비행사를 놓고 실험을 하는 이유는 아마도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상상 실험인 아인슈타인의 “쌍둥이의 패러독스”를 떠올려서 이 NASA의 실험에 더 많은 관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함이라고 밖에 안보인다. 일단 실험 구성 자체가 독특해서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기 좋을 뿐만 아니라, 쌍라이트형제 같은 두 우주인을 동시에 카메라 프레임 안에 세우는 것 자체가 비주얼로 보나 기사거리로 보나 스포트라이트를 많이 받을 수 있는 세팅이다.
오래 전 큰 웃음을 주셨던 분들. 두 분 모두 건강하게 오래 사시면 좋겠다.
사람이 타고 난 유전자에 따라서 인생이 결정될 것인가, 아니면 살면서 끊임없이 새로운 변화에 따라 다른 인생을 살 것인가는 이미 과학적으로 결론이 난 문제이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실험을 하는 이유는 전적으로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위함이다. 심지어 NASA는 이 프로젝트에 Nature vs nurture라는 이름까지 붙였다.
이런 면에서 볼때 이 쌍둥이 실험은 NASA의 “마케팅 프로젝트”로 보는 것이 더 정확하지 않을까 싶다. 어떤 생물학적인 대단한 발견이 있었다면 연말까지 뜸들이고 바람 잡으면서 논문 발표하겠다고 선언할 리가 없다. (논문은 시간 싸움이다. 그리고 예고 없이 뻥 터뜨려야 더 대박난다.) 유전자들의 이름도 매우 촌스럽게도 “우주 유전자 (space genes)”이라고 이름 붙인걸 보면 필자의 이런 생각은 더욱 굳어진다. “전세계의 어린이들아, 여기 좀 봐줘…” 라는 다소 안쓰러운 의도가 보이는 듯 하다. 그만큼 미국에서도 과학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멀어져 가고 있는 현실을 보여주는 것 같아 안타깝다. (남 걱정할 때가 아니긴 하지만..)
영화 마션의 NASA 국장과 그가 실제로 한 극 중 대사.
결국 이 사건은 쌍둥이 실험의 흥행을 위해 열일하던 NASA의 직원들이 실수로 불분명하고도 애매한 내용을 배포한 것이 씨앗이 되고, 이를 아무 생각 없이 그대로 복붙하여 전달하는 기자(라 쓰고 typist라고 읽는)들이 키운 사태라고 볼 수 있겠다.
NASA라는 조직에 대해 그리 큰 관심도 없었고 그저 천조국의 든든한 지원을 받으며 원 없이 돈 써가며 하고 싶은 연구 하는 조직이라는 막연한 생각만 가지고 있었는데, 이번 사태를 살펴보며 드는 생각은 NASA도 결국은 배고픈 조직이구나 라는 생각이다. 지구 온난화가 과학자들의 사기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정부의 수장으로 앉아서 돈 줄을 쥐고 있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상황이기도 하다. 아니나 다를까 지난 달 미 정부는 NASA 예산 상당부분의 삭감을 예고한 바 있다.
어찌되었건 결과적으로는 이 쌍둥이 실험을 모르는 사람은 이제 없게 되었고, 대중의 관심이 크게 늘었으니, NASA는 좀 더 안정적인 자금 지원줄을 확보할 발판을 마련할 수 있었다면, 너무 새옹지마스러운 결론일까?
PK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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