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입가경으로 치닫는 인보사 사태

(코오롱생명과학이 1999년 출원한 특허에 제출한 토끼 관절의 연골이 재생된 사진)

지난 글에서 필자는 인보사 사태의 원인이 아마도 초기 샘플 라벨링의 실수일 것 같다고 이야기 한 바 있다. 결국은 들통이 날 실수를 일부러 할 정도로 회사가 1) 멍청하거나 2) 사악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전제였다.

그런데 오늘 한겨레에서 나온 기사를 보니 내 생각이 짧았던것 같다. 아니 너무 나이브 했던것 같다. 애초부터 형질전환 연골 세포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제기되었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약이 아닌 것을 약으로 둔갑시켜 팔았을 가능성이 제기된 것이다. 식약처는 이의 사실 여부 확인을 검찰에 요청하였다고 한다. 무언가가 원래부터 존재하지 않았다는 의혹. 약 10년 전의 어떤 사건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원천기술이 있네 없네, 줄기세포가 있네 없네로 시끄러웠던 그 사건. 다만 이번에는 그때 만큼 맹목적 신도들이 많은 것 같지는 않다. 사회가 느끼는 충격의 양은 훨씬 적은 것 같아서 다소 걱정이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라는 히브리서 11장의 구절 앞에 “누군가에게는” 이라는 말만 붙이면 마치 2000년 후 대한민국의 상황을 묘사했던게 아닌가 싶다. 아직 끝나지 않은 그 사건.

 

사실 필자의 예전 추측, 즉 단순 샘플 라벨링 실수는 코오롱생명과학으로서는 현재 상황에서 나올 수 있는 최상의 시나리오다. 이것은 실제로 식약처의 고위 관계자 또한 확인해 준 표현이다. 코오롱은 끊임없이 세포의 명찰이 바뀐 사건이라고 주장해 오고 있었다.

후생 신문 4월 3일자 보도

최상이라니 뭔가 좋은것 같지만 정확히는 최악만을 간신히 모면한 시나리오라고 이야기 하는 편이 맞겠다. 그런데 이 시나리오마저도 틀렸을 가능성이 제기 되는 것이다.

한겨레 보도에 따르면 식약처의 관계자는 “성장촉진물질 유전자를 연골세포에 넣기 위해선 유전자를 운반해주는 바이러스가 필요하고, 이러한 바이러스를 만드는 데 gp2-293 세포를 활용한다. 이 과정에서 gp2-293 세포가 섞여 들어가 형질전환 연골세포를 만들지 못했을 가능성도 있긴 하다. 그러나 2000년대 초반 연구노트가 제대로 작성되지 않았고, 형질전환 연골세포를 어떻게 만드는지 등 자료도 보관돼 있지 않아 정확한 사실관계 파악이 어렵다” 라고 이야기 했다고 한다.

실험의 생명인 연구 노트가 제대로 작성 되지 않았다고 한다. 핵심 연구 주제의 자료가 보관되어 있지 않단다. 기가 차서 말이 다 안나온다. 실험의 생명은 기록이다. 모든 데이타는 일목요연하게 정리가 되어 기록이 되어 있어야 하며 논문을 발표하던지 특허를 걸던지 이 연구 노트가 가장 중요한 증거물이 되는데, 연구 노트가 제대로 작성이 되어 있지 않단다. 이게 말이 되는 소리인지 모르겠다.

컴퓨터 하나 없던 시절에도 이렇게 젤 사진 오려서 붙여 가며 작성하는게 실험 노트다. 90년대에는 저 사진 마저도 한장당 몇천원씩 하는 폴라로이드 필름으로 찍었다.  모든 결과 발표의 원천 기록이자 결과에 태클 거는 사람들에게 당당하게 제시할 물증들의 집합체이다. 그런데 이게 제대로 기록되어 있지 않았단다. 시가총액 조 단위의 회사 연구소에서 말이다. 믿기 어려운 사실이다.

시가총액 1조원대를 넘나들던 상장 기업에서 연구노트가 작성이 되어 있지 않아 현재 확인이 불가능하다고 한다. 이 쯤 되면 인보사 사태는 발암 가능성이 농후한 무허가 주사제의 대량 판매를 벗어나 미필적 고의, 혹은 고의적인 기업의 도덕성의 문제로까지 확장된다. 필자가 이야기 했던 샘플 라벨링 실수에서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우려가 든다. 물론 판단은 검찰이 할 것이다. 진짜 기록이 없는 것인지, 있는 기록이 불리한 내용인 것인지는 검찰의 판단을 기다려 봐야 할 듯 하다. 또 다시 떠 오르는 그 때의 기억.

매우 많이 늦었지만, 식약처에서는 올 9월부터 허가 신청 대상의 모든 세포 치료제는 STR 자료 제출을 의무화 하기로 하고 7일 입법 예고를 하였다.

식약처 보도자료

인보사 사태의 영향이라고 누가 보아도 알 수 있는 조치이다. STR(short tandem repeat) 분석은 세포의 지문을 찍어 보는 것과 비슷한 작업이라고 보면 된다. 비용이나 시간도 거의 들지 않는다. 이런 간단한 작업 하나 없이 여태까지 세포 치료제들의 심사를 진행해 왔다는 것이 참 놀랍다.

무엇을 상상하건 그 이상이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최근 보도에 따르면 코오롱 생명과학은 미국에서의 임상 3상 시험을 계속 진행하겠다고 선언했다고 한다.

 

고개가 갸우뚱해지다 못해 뒤로 넘어갈만한 뉴스이다. 위기의 순간에 용기를 발휘하는 것이 탁월한 경영적 판단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이해하기 힘든 조치이지만 결과가 사뭇 궁금해진다. 미국 FDA의 반응이… 다른 사람들은 결과를 다들 예상 가능한 듯 한데, 숲 안에 있는 사람만 모르고 있는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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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KD

나는 누구고 여긴 어딘데 나는 왜 유전자에 관한 글을 쓰고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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