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 조류 독감 (AI)의 여파로 인한 계란 공급의 차질로 계란 값이 한판에 만원 수준까지 오른 적이 있습니다. 다행히 AI가 진정세를 찾아 감에 따라 계란 가격 또한 안정화 되었는데, 최근 유럽에서도 계란으로 인한 큰 문제가 발생하였습니다. 이번에는 AI가 원인이 아니라 살충제가 문제입니다. 네덜란드에서 시작된 이번 계란 대란은 현재 독일과 벨기에, 프랑스를 거쳐 스위스 및 전 서유럽 국가들로 확장 되고 있으며, 이미 수백만개 이상의 계란과 닭이 폐기 및 살처분 되었습니다.
이번에 문제가 된 살충제 성분은 피프로닐(Fipronil)인데, 이는 전세계적으로 널리 사용되는 살충제의 원료로서, 주로 바퀴벌레나 벼룩 등을 제거 하는데 효과적입니다. 국내의 많은 살충제들의 성분이기도 합니다.
Fipronil은 글루타치온 염소 (GluCl) 채널을 블록킹 함으로서 신경과 근육을 자극하는 방식으로 대상을 죽이는데, 이 글루타치온 염소 채널은 인간을 비롯한 포유류에는 없기 때문에 곤충에게만 선택적인 효과를 발휘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과량 섭취시에는 인간에게도 영향이 있기 때문에 유럽에서는 식품에는 사용이 금지 되어 있는 성분입니다. 양계장에서 벼룩과 같은 기생충을 박멸하기 위하여 사용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Fibronil의 구조 (credit : wikipedia)
계란에서 이 살충 성분이 최초로 발견된 네덜란드에서는 이미 180여개의 양계장이 문을 닫았으며, 이들 양계장으로부터 생산되어 전 유럽으로 유통된 수 많은 계란이 폐기 절차를 밟고 있습니다. 이 와중에 벨기에 보건 당국은 이미 6월에 네덜란드로부터 수입된 계란이 Fibronil에 오염되어 있었고 자국에서 생산된 계란들도 이에 오염이 되어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공식적으로 발표는 하지 않았다고 해 벨기에 국민들의 공분을 사고 있습니다. 독일 정부는 왜 주변국들에게 바로 알려주지 않았는지에 대한 공식 해명을 벨기에 정부에게 요구한 상태입니다.
다행인 것은 유럽에서는 모든 개별 계란에 고유 번호가 부여되어 폐기 대상이 되어야 할 계란들을 명확히 구분할 수 있다는 점 입니다. 영국 정부는 이번 사태가 공중 보건에 실질적으로 미칠 영향은 미미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습니다만, 계란을 둘러싼 유럽인들의 우려는 식지 않는 분위기 입니다.
우리가 매일 너무 쉽게 구하고 먹을 수 있는 식재료 또한 자연의 선물이라는 점을 인지하고, 자연을 거스르는 무리한 생산성 증대의 욕심은 결국 인간 스스로에게 독이 될 수 있다는 중요한 교훈을 얻을 수 있는 계기로 삼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아울러 우리 나라에서도 이와 관련한 검사가 진행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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