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아주 재미 있는 기사를 발견하였습니다.
물 + 이산화탄소 + 미생물로 식량 생산의 길 열려
제목만 보고서는 매우 빠른 속도로 증식하는 새로운 혐기성 박테리아가 발견된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내용을 읽어보니 조금 다른 내용이었습니다.
(제목에서는 언급되지 않았지만,) 기사 내용의 핵심은 어떤 미생물에게 전기를 공급하면 이 미생물이 이산화탄소로부터 탄소를 수집한 후 최종적으로 단백질을 생산하였다는 기사였습니다. 사실일 경우 상당히 재미 있는 발명입니다. 기사는 전세계적 식량 위기 상황을 환기시키며 이 발명이 세계 기아 문제의 해결책이 될 수 있다는 암시를 줍니다.
유엔 식량농업기구(UNFD)는 전세계 인구 가운데 8억명, 즉 9명 중 1명꼴로 만성 영양 결핍 상태에 있는 것으로 추정한다. 코넬대 연구에 따르면 미국 축산업에 쓰이는 곡물만으로도 매년 8억명 이상의 사람들에게 식량을 공급할 수 있다고 한다. 축산은 미국에서 가장 큰 수자원 소비부문이기도 하다.
기체로 존재하는 무기물인 탄소를 생명체의 뼈대를 이루는 탄소 중합체로 바꾸어 주는 과정을 탄소 고정 (Carbon Fixation) 이라고 합니다. 지구상에서 발생하는 탄소 고정 작업은 대부분 식물 (혹은 해양 생물)의 광합성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이렇게 식물에 의하여 유기물화 된 탄소는 식물 자체의 뼈대를 이룰 뿐만 아니라 각종 영양소를 저장하는 물질로 사용되며, 이를 1차 소비자인 초식 동물들이 섭취하고, 이어서 상위 포식자가 초식 동물을 잡아 먹는 과정을 통하여 생태계의 싸이클이 구성됩니다. 즉, 탄소 고정은 지구상에 생명체가 존재할 수 있게 만든 매우 중요한 요소들 중 하나 입니다.
연구진은 물과 이산화탄소, 그리고 미생물을 작은 생물반응기에 넣고 혼합했다. 이 미생물은 수소를 에너지원으로 하는 수소 산화 박테리아다. 그런 다음 전기 분해로 물을 수소와 산소로 분리해주면, 반응기 안에서 여러가지 화학반응이 일어나면서 단세포 단백질을 비롯한 영양물질들이 생성된다. 여기에 저온살균, 건조 과정을 거치고 나면 기본 식품에 적합한 영양성분을 갖춘 소량의 고체 물질(분말)이 만들어진다. 연구진은 이 방법을 이용하면 사람 식량 뿐 아니라 동물 사료로 이용할 수 있는 단백질 생산도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밝혔다.
위 부분을 읽고 나니 어떤 원리인지 대충 감이 옵니다. 일반적으로 자연계에서 발생하는 대부분의 탄소 고정은 식물의 광합성에 의해 발생하지만, 일부 박테리아들에 의해서 일어나기도 합니다. 수소 산화 박테리아 (Hydrogen oxidizing bacteria)로 분류되는 미생물들로서, 이들은 주로 산소에 의한 에너지 획득이 어려운 환경, 예를 들면 옐로우스톤의 온천과 같은 환경에서 발견이 되고, 좀 더 유명한 박테리아로는 강산성의 환경인 인간의 위에서 위암을 일으키는 것으로 널리 알려진 헬리코박터 파이롤리 (H. pyroli) 등이 이런 부류의 미생물에 속합니다.
수소 산화 박테리아는 자연계에서 흔히 발견되는 박테리아는 아닙니다만 그래도 나름 오랜 기간에 걸쳐 많이 연구가 된 미생물이며 이들의 탄소 고정 효율에 대해서도 많은 연구가 이미 진행 되어 있습니다.
이 기사의 핀란드 연구진의 아이디어는, 이 수소 산화 박테리아가 서식할 수 있는 발효조를 만들고, 여기에 전기를 공급함으로서 발효조 내의 물을 전기 분해 하여 수소와 산소로 분리해 주면, 이렇게 생성된 수소가 박테리아의 에너지원으로 쓰일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상한 점이 있습니다. 기사에서는 이 과정을 통해 단백질이 생성이 되었다고 하는데, 이산화탄소를 고정하는 것만으로는 단백질에 필수적인 질소를 획득할 수 없기 때문에 단백질의 생성이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식물이 생존하는데 비료가 필요한 이유 입니다.) 기사 내용에 따르면 건조 중량의 무려 50%가 단백질이라고 했는데, 이 설명만으로는 단백질이 어떻게 생성되었는지, 질소는 어디에서 획득하였는지, 또 일부 아미노산에 들어있는 황과 같은 물질은 어디에서 얻었는지가 불분명합니다.
하지만 위의 모식도를 보니 어느 정도 이해가 갑니다. 이산화 탄소와 함께 영양성분 (Nutrients)가 같이 제공이 되는 것입니다. 즉, 물 속에 부유하고 있는 수소 산화 박테리아에게 일단 영양분을 공급해 주고, 이 물에 전기를 제공하여 수소와 산소로 분리시켜 수소를 제공함과 동시에, 외부로부터 이산화탄소를 공급하면, 이 박테리아가 탄소 고정을 진행하면서 제공된 영양분으로부터 단백질을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어찌 보면 기발한 아이디어인 것 같기도 한데, 또 다른 관점에서 보면 의아한 점들이 많습니다. 박테리아에게 제공된 영양분이 그 형태만을 바꾸어 단백질로 재조합이 되는 것은 결국 무기물에서 유기물을 만들어 냈다기 보다는 유기물 분자가 그 형태를 바꾸는 것에 불과합니다.
또 그 과정에서 전기도 제공을 해야 하는 것이 그리 효율성에도 의문이 듭니다. 물을 전기 분해 하는것 자체가 효율이 상당히 낮은 작업이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굳이 수소 산화 박테리아에게 전기 분해한 수소까지 공급해 줘 가면서까지 이렇게 할 필요가 있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전기 공급이 필요 없는 일반적인 효모를 발효 시켜도 이 정도는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또한 전기는 물을 수소와 산소로 분해하고, 박테리아는 수소와 산소를 다시 물로 전환하는 순환이 발생하는 것인데, 조금 과장해서 이야기 하자면 영구 기관 같은 느낌도 듭니다.
뭔가 과학 전문 기사로 쓰기에는 부족한 느낌이 들어서 그 소스를 찾아 보았습니다. 위 기사에서 참고한 자료는 Futurism이라고 불리우는 사이트에서 보도한 다음 기사입니다.
A Team of Scientists Just Made Food From Electricity — and it Could be the Solution to World Hunger 과학자들이 전기로부터 식량을 만들어내다. - 식량 문제의 해결책이 될 수 있다.
Futurism.com은 그 이름에서 어느 정도 알 수 있듯이 인간의 미래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 여겨지는 과학 기술 관련 기사들을 뉴스나 인포그래픽의 형태로 배포하는 한 미국의 사이트 입니다.
기사 작성자인 Tom Ward는 디지탈 미디어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한 작가인 것으로 보입니다. 그의 LinkedIn의 개인 이력에 따르면 전문적인 과학 교육을 받은 것으로 보이지는 않습니다. 물론 제도권의 전문적인 과학 교육을 받은 사람만이 제대로 된 과학 기사를 쓸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의 관심사가 주로 디지탈 미디어 미케팅인 것으로 볼 때 그가 이런 기사를 작성한 것은 조금 의아합니다. 조금 더 조사해 보니 이 기사는 연구자들이 소속된 대학인 LUT에서 발표한 다음의 언론 배포 자료를 그가 참고하여 작성하고 Futurism에 기고한 것으로 보입니다.
Protein produced from electricity to alleviate world hunger
전기로부터 생성된 단백질이 세계 기아를 극복할 수 있다
최초 언론 배포 자료를 보니, 어떤 과학적 연구 성과의 보고 자료라기 보다는 가능성 정도를 염두에 둔 내용 입니다. 전체 자료를 통하여 연구진이 무언가에 성공했다는 내용은 글의 맨 처음 한 문장 뿐이고 그나마도 매우 추상적입니다.
A batch of single-cell protein has been produced by using electricity and carbon dioxide in a joint study by the Lappeenranta University of Technology (LUT) and VTT Technical Research Centre of Finland. 핀란드의 LUT와 VTT의 공동 연구에서 전기와 이산화탄소를 통해 single-cell protein (먹을 수 있는 형태의 단백질로 구성된 단일 세포 생명체)가 생산되었다.
배포 자료의 나머지 내용은 모두 연구자들의 추측이나 가정에 의거한 내용들 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자료는 이 기술이 식물보다 10여배 이상 효율이 높다던지 (tenfold energy efficiency), 전체 생산량의 50%가 단백질이었다느니 (50 per cent protein)와 같은 눈길을 끌만한 소제목을 사용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연구자들의 전화번호와 이메일을 포함한 연락처가 명시되어 있습니다.
주로 이러한 내용은 개념 증명 (proof of concept) 정도 단계에서 대중의 관심, 혹은 투자의 유치를 위하여 배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물론 이 보도 자료가 반드시 이러한 목적을 지니고 있었는지는 모릅니다.) 일반적으로 새로운 기술의 테스트까지는 다음 다섯가지 단계를 거칩니다.
디자인 - 개념 증명 (proof of concept) - 프로토타입 (prototype) - 파일럿 (pilot) - 테스트
따라서 개념 증명 단계에서는 그 연구 결과에 대해 실제보다 다소 부풀려지거나 상당히 먼 미래의 일을 가까이 다가온 것 처럼 이야기 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학술적인 가치가 있는 연구 결과라면 주로 논문의 형태로 작성되어 비슷한 분야의 다른 연구자들의 엄격한 리뷰 (peer-review)를 거쳐 발표됩니다.
결론적으로 이야기 하자면, 이 기사의 내용은 어떤 구체적인 결과가 나왔다기 보다는, 이러한 것도 가능하다 정도를 이야기 하고픈 연구자들의 입장을 그들이 소속된 기관의 이름으로 발표한 자료이며, 기사에서 언급하는 것과 같이 세계 기아를 해결할만한 신기술로 주목하기에는 조금 이르다고 보는 편이 맞을것 같습니다.
개념 증명 단계의 연구 내용이 전세계 기아를 해결할 구세주로 떠오르게 된 데에는 다음의 네가지 단계가 필요했습니다.
1단계 : 연구자가 개념 증명 단계의 작은 실험 성공을 보고
재정 지원을 한 기관에 성과 보고의 용도일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2단계 : 연구자가 소속된 기관에서 이 내용에 살을 추가하여 보도 자료 배포
관심 또는 투자 유치를 목적으로 할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3단계 : 이 자료를 해외의 인터넷 언론사가 기사화 하여 배포
이 단계에서 단순 보도 자료는 공신력을 지닌 팩트로 전환됩니다.
4단계 : 이 기사를 국내의 주류 언론사가 받아서 국내의 공식 기사로 배포
이 네가지 단계를 거치면서 우리는 조금만 더 노력하면 전기를 통해서 식량 생산이 가능한 수준에 이른 것으로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게다가 1, 2, 3단계까지는 뉴스의 방점이 “전기”를 이용한 식량 생산에 찍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4단계에 와서는 제목에서 “전기”는 사라지고 “식량”만 남는 핵심 키워드의 변화도 겪었습니다.
어떤 과학적 성과를 검증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특히나 전문적인 과학 지식이 없는 일반인들은 어떤 기사가 어느 정도의 현실성이 있는지, 혹은 어느 정도의 거짓이 들어 있을지를 구분해 내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하지만 과학 기사는 그 한계점과 나아갈 방향을 명확히 하지 않으면, 마치 장미빛 미래가 코 앞에 와 있는 것과 같은 오해를 불러 일으킬 수 있습니다. 과학이 가져다 줄 미래를 떠올리고 상상해 보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지만, 그 결과에 대해 예단하거나 지나친 기대를 거는 것은 금물입니다. 우리는 이미 수년 전에 비싼 비용을 치르면서 이러한 경험을 한 적이 있습니다.
따라서 과학 기사는 다른 기사들에 비하여 좀 더 많은 검증과 전문가들의 견해를 곁들여서 작성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과학 교육의 목표는 전국민의 과학자화까지는 아니더라도 어떠한 것이 잘못되거나 과장된 과학 정보인지를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수준까지를 목표로 이루어 져야 한다고 봅니다.
the Science Life는 이러한 잘못되거나 과장된 과학 정보를 바로 잡는데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객관성이나 사실 여부가 궁금하신 기사가 있으시면 제보해 주십시오. 관련 분야의 전문가와 과학자의 견해를 토대로 팩트를 체크해 드리겠습니다. editor@thesciencelif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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