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 네덜란드, 캠브리지, 그리고 비엔나

tSL은 최근 IMBA (Institute of Molecular Biotechnology of Austria)의 그룹 리더 (PI, Principle Investigator)로 자리를 잡은 구본경 박사를 만났습니다. 구 박사는 포항공대에서 학부와 석박사 과정을 마친 후 네덜란드의 휴브렉트 연구소 (Hubrecht Institute)로 자리를 옮겨 줄기세포 연구의 세계적 대가, 한스 클레버스 (Hans Clevers)의 랩에서 박사후 과정 (이하 "포닥")을 마쳤습니다. 이후 영국 캠브리지에서 그룹 리더 생활을 시작한 뒤 약 3년이 지난 올해 말, 오스트리아 비엔나의 IMBA에 그룹 리더로 새로이 자리를 잡았습니다. 유능한 연구자이자 우리 나라의 과학 정책에 대한 쓴소리를 아끼지 않는 조언자로서 그의 최근의 이직과 유럽에서의 연구 환경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즐거운 시간을 가졌습니다. 

두시간 여 동안 진행된 대화 내용을 인터뷰로 요약하여 독자 여러분과 나누고자 합니다. 자신만의 연구를 할 수 있는 그룹 리더를 꿈꾸고 있는 많은 과학도들에게 도움이 되면 좋겠습니다.

이 인터뷰는 구본경 박사의 랩이 있는 오스트리아 비엔나 IMBA에서 진행되었습니다.

 

“만약 신이 틀렸다면” 이라는 다소 도발적인 문구가 크게 쓰여 있는 IMBA 로비 (사진 : 구본경)

이렇게 시간 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무래도 가장 많은 분들이 궁금해 하시는 질문부터 시작해야 겠습니다. 캠브리지하면 최고의 석학과 연구환경으로 유명합니다. 그런데 생명공학의 (다소) 변방이라고 할 수 있는 비엔나로 옮기신 이유는 무엇인가요?

매우 많이 받는 질문인데, (웃음) 가장 현실적인 선택을 한겁니다. 캠브리지는 전통적으로 보면 훌륭한 학교이자 연구소이지만 , 그 안에서도 연구소간의 실력의 격차가 있습니다. 개별적으로 유명한 연구실들은 캠브리지에 더 많을지 모르겠지만, 연구실들의 전체를 평균 낸다면 이곳 비엔나의 IMBA가 객관적인 지표면에 있어서 더 뛰어납니다.

IMBA가 소속된 Vienna Biocenter (VBC)의 각종 연구 업적 관련 수치들

저는 종종 과학을 축구 리그와 비교 합니다. 전체적인 구성원의 실력을 따지면 영국의 프리미어리그가 가장 튼튼하고 팀간의 경쟁도 가장 치열한 반면, 스페인의 프리메라 리가는 팀간의 실력 격차가 심해서 얼핏 보기에는 두 구단을 빼면 아무 의미가 없는것 같아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맨체스터와 바르셀로나가 붙으면 어디가 이길지는 알 수 없습니다. 과학도 이와 유사합니다.

또한 선수의 입장에서는 리그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는 팀이 더 중요할겁니다. 과학자도 마찬가지여서, 자신의 적성에 맞고 더 좋은 곳으로 선택하게 됩니다. 그런 맥락에서 저희 분야에 계신 분들이 저의 선택을 보실 때는 매우 합리적인 선택이라고들 이야기하십니다. 하지만 저희 분야 밖에 계신 분들의 시선에서는 그렇지 않아 보일 수도 있겠죠.

사진 : TSL

 

브렉시트(Brexit)도 영국을 떠나기로 하신 결심에 영향이 있었나요?

네. 매우 큰 영향이 있었습니다. 영국에서 연구 생활을 하면서  제가 좀 힘들다고 생각했던 것은 영국 연구소들의 재정 구조 입니다. 대부분의 연구소가  정부에서 출연한 연구소가 아니라 대학에서 출연한 연구소이다 보니 대학의 지원은  주로 건물 부지등의 부동산 관련한 것으로 한정 되어 있고 (물론 이것만 해도 엄청납니다) 이것을 운영하기 위한 그랜트는 주로 웰컴 트러스트(Wellcome Trust)에서 나옵니다.

Wellcome Trust. 1936년 설립되어 영국의 수 많은 연구를 지원하고 있다. 국가 단위의 연구 지원금을 제외하고 세계에서 두번째로 큰 연구 펀드 규모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이 연구비의 연속성을 위해서는 연구소 전체가 5년에 한번씩 평가를 받습니다. 문제는 이 평가가 워낙 엄격하다보니  5년 후에 이 연구소가 존속할지 아닐지도 모르는 불확실성이 항상 존재합니다. 마음만 먹으면 연구자들이 헤쳐 모이는 것도 가능할 수준이죠. 그에 맞춰서 연구 책임자들도 재평가 받는 것인데,  만약 연구소 평가에서 동료들이 잘못해서 나까지도 한꺼번에 처분을 받으면 아주 골치 아픈 상황이 발생하지요. 반대로 연구소는 잘 했지만 내가 못해서 연구소에 안좋은 영향을 미칠 수도 있고. 이 두가지가 어쩌다 보니 톱니바퀴처럼 맞물려서 저는 한해는 제 자신을 걱정해야 하고, 그 다음 해는 연구소를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 지속적으로 발생했습니다. 이게 할 만은 한데 쉽지는 않구나 라고 느끼던 찰나, 브렉시트가 터졌어요.

브렉시트의 의미는 제가 가지고있는 EU 펀딩 중 하나인 ERC (European Research Council) 펀드의 미래가 불투명해진다는 뜻이지요. 현재 제가 가지고 있는 펀드는 2020년에 끝나거든요. 그런데 브렉시트 협상이 끝나는 해도 마침 2020년이예요. 즉 2020년에 영국에서 자리 잡고 연구하는 과학자들이 ERC  펀딩을 탈 수 있는지를 모르는 상태인거예요.  이건 단순히 저 자신 뿐만 아니라 제 실험실 식구들의 급여를 계속 줄 수 있느냐의  문제로도 연결이 됩니다.

반면 비엔나의 IMBA는 EU안에 속해 있기 때문에 이런 걱정이 전혀 없습니다.  연구소의 존속 여부는  말할 필요도 없고 ERC 그랜트도 지속적으로 지원이 가능합니다. 저만  5년에 한번씩 평가 받는 것으로 연속성 있는 연구가 가능합니다. 또 ERC 외에도 오스트리아에서 자체적으로 주는 연구비도 잘 정비되어 있고요.

 

그렇다면 브렉시트는 캠브리지에 있는 다른 연구자들에게도 마찬가지의 문제를 야기하겠습니다. 영국 출신 PI들은 이에 대해서 어떻게 느끼나요?

영국 PI들은 영국을 무척 사랑합니다. (웃음) 그래서 영국에 아마 대다수가 남을것 같고요. 그런데 캠브리지에서 영국인 PI는 절반이 채 안되는것 같습니다. 가장 많은 수가 독일에서 온 PI들인데, 이들은 거의 대부분 독일로 돌아가고 싶어 하지요. 마침 독일에서는 이벤트성 공고가 나왔는데, 독일에서 대략 1000여명에 가까운 교수를 고용하겠다는 겁니다. 또 독일이 고급 기술 이민을 늘리겠다고 선언했는데, 이게 바로 브렉시트 터진 다음 날 일이예요. 주변국들은 브렉시트를 하나의 기회로 보는것 같습니다.

 

국내에서 석박사를 다 마치시고 포닥으로 해외를 처음 나오셨습니다. 지금 박사님과 마찬가지로 국내에서 공부하고 있는 박사 과정생들이 많은데, 국내에서 교육 받으시고 해외에서 연구자로서의 이상적인 이력을 밟아 나가고 계신 입장에서 국내 박사의 수준을 해외와 비교했을때 어느 정도로 평가하시나요?

저는 국내 박사 수준이 아주 훌륭하다고 보고요, 제가 유럽에서 포닥들의 수준으로 판단해 보면 교육 수준이 높은 나라들(예를 들면 독일, 네덜란드, 영국)이 있고 그렇지 않은 나라들도 있는데 (이태리, 스페인), 교육적인 측면에서만 놓고 본다면 한국은 이 둘의 중간 정도 인것 같아요. 다만 한국인 포닥이 가지고 있는 장점은 다른 나라 포닥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의 매우 강한 의지입니다. 다만 현재 박사 과정중에 계신 분들은 아마도 저와 나이 차이가 좀 있을것 같아서 요즘 분들도 이런 마인드를 가지고 있는지는 모르겠어요. 그리고 논문의 수준이나 다룰 수 있는 기술 수준은 아주 훌륭합니다. 이런 면에서 경쟁력이 충분히 있다고 봅니다. 이것은 이미 많이 증명이 되었다고 보고요, 제 동기나 선후배들이 외국에서 성공적으로 자리를 많이 잡았어요. 국내의 교육 수준이 낮았으면 이런게 불가능 했겠죠.

한국에서 나오신 분들이 반드시 해결해야 할 문제는 언어입니다. 영어를 잘 구사할 수 있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한국에서 배운 교육과 세계 수준의 연구소에서 만든 연구 업적에 영어만 잘 받쳐 주면 어디에서든지 성공할 수 있다고 봅니다. 과학 하시는 분들은 워낙 공부가 바쁘다 보니 영어를 소홀히 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러면 안됩니다.

대한민국은 우리가 사랑하는 고향이고 잘 되기 원하는 나라지만 지구 전체적으로 봤을때는 정말 작은 나라거든요. 그런 작은 나라들이 취하는 전략의 대표적인 예를 네덜란드나 오스트리아에서 찾을 수 있는데요, 이 나라들은 최대한 국제화를 하려고 하고 외국인을 유치하려고 합니다. 특히 과학쪽에서는 이게 더욱 두드러집니다. 반면 여태까지 한국의 모습은 주로 한국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우리끼리만 노력해 오는 모습인데, 이것은 어느 수준 이상까지 가는데에 한계가 있습니다.  더 높은 창의력을 위해서는 외국과 교류를 안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기 위해선 지금 공부를 하시는 분들이 영어를 잘 하시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결국, 국내에서 학위 하는 것은 좋지만, 영어는 절대 소홀히 하면 안된다 라는게 제 생각입니다.

 

네덜란드에 처음 포닥으로 나가셨을때 국내에서만 교육을 받으셨다는 이유로 어떤 불이익을 받아 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불이익이라고 이야기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비슷한 일이 하나 있습니다. 네덜란드에 처음 왔을때 월급 명세서를 받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휴브렉트 연구소는 우리 나라 호봉제와 유사한 시스템을 유지하는데요, 제가 국내에서 2-3년간의 포닥 과정을 인정하지 않고 가장 낮은 호봉에 저를 편입한 거예요. 처음에는 몰랐다가 한 반년 정도 지나서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게 왜 이렇게 된 것이냐고 지도 교수에게 따지니, 한국의 박사 과정이 네덜란드의  박사과정과 동등한 수준의 교육 여건인지를 확인할 수가 없어서 일단 낮게 잡았으며, 그것을 인사과에서 그대로 받아들인 거라고 합니다.

그래서 직접적으로 지도 교수에게 물어보았습니다. 내 능력이나 퍼포먼스가 다른 연구원들보다 부족한 것 같냐고. 그랬더니 결국 올려주기는 했는데 그동안의 기간을 소급해서 적용해 주지는 않더군요. (웃음)

유럽은 사실 능력으로 돌아가는 사회이기 때문에 능력만 증명 되면 나중에라도 수정을 합니다. 운이 없다면 처음에 약간의 불이익이  생길 수도 있겠지만 결국은 실력으로 증명하면 제대로 된 대우를 받을 수 있는거죠. 이것이 받아 본 불이익이라면 불이익이라고 이야기 할 수 있겠네요.

 

현재 미국에서 포닥하고 계시는 분들의 숫자만 몇 만명은 된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리고 여러 학문들 중 생물학은 박사 인력의 공급이 수요를 매우 초과하는 대표적인 학문이라고 합니다. 이런 갭을 극복하려면 어떤 국가 단위의 조치가 필요할거라고 보십니까?

제가 얼마전에  페이스북에서 보기에는 미국이 연간 7만명의 박사가 배출이 된다고 합니다. 게다가 미국은 박사과정의 인건비가 쌉니다. 그러다보니 저렴한 노동력때문에 이들이 과잉생산이 되고 이에 대한 규제가 없는 상태입니다.  우리 나라도 미국과 유사합니다. 그나마 미국은 인구가  2.5억이지만 한국은 그의 20% 정도 되는 인구에서 매년 거의 2만명 정도를 생산한다고 합니다. 미국보다 훨씬 더 심각한 상태죠.

 

미국에서 매년 배출하는 분야별 학사, 석사, 박사학위 취득자의 숫자와 해당 분야의 일자리 수

 

반면, 박사 과정을 채용하는 입장에서 볼때 유럽은 박사과정이 그리 싸지 않습니다. 학비와 급여 포함해서 포닥의 70% 정도 주는데요, 등록금까지 생각하면 박사과정이 더 비싸요. 그래서 박사과정은 오히려 그런 사람들을 뽑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여러가지 fellowship이나 studentship을 주고, 교수의 입장에서는 싸니까 쓸 수 있고 또 사람들에게는 공부의 기회를 제공하는 방식으로 돌아가거든요.

한국도 학생 한명 한명에게 fellowship을 주는 방식으로 바꾸면 어떨까 싶습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생산되는 박사들의 숫자도 조절할 수 있고요. 하지만 이 부분은 실험실마다 상황이 다 다르기 때문에 갑자기 시행하기는 쉽지 않을 겁니다. 다만, 좀 더 긴 시간을 보면서 국가 단위의 조치를 준비해 나갈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한국과 유럽의 연구 환경을 비교해 보신다면 각각 어떤 장단점이 있을까요?

유럽에서 연구할때 가장 걱정스러운 부분은 규제입니다. 필요한 규제들이기는 한데 이게 워낙 많다 보니 여기에 소비되는 시간이 적지 않습니다. 예를 들면 캠브리지에서 누군가가 beta-mercaptoethanol을 잠시 후드 밖에서 열었습니다. (편집자 주: Cysteine의 disulfide bond를 끊는데 사용하는 물질로서 그 특유의 고약한 냄새로 악명이 높음.) 그랬더니 건물에 소개령이 떨어졌어요. 또 한번은 누가 PFA (Paraformaldehyde)를 실험실에 엎었습니다. 그랬더니 이번에는 소개령이 떨어지는 것도 모자라서 누군가가 완전 무장을 하고 제염을 하러 들어왔습니다. 우리 기준으로 보면 조금 호들갑이라고 할까(웃음) 싶은 것들이기는 한데, 그런게 유럽에서는 매우 엄격합니다.

사실 빨리 발전해야 한다는 속도 측면에서 개발도상국의 어쩔수 없는 비애 같기도 한데, 결국은 이게 나중에 제대로 할때 천문학적인 돈이 들어가는 문제를 야기할 수 있거든요. 이해는 할 수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금 답답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을것 같고요,

한국에 있을때 답답했던 것은 코어 퍼실리티(core facility)들입니다. 유럽에는 실험을 도와주는 전문가들이 훌륭한 기기들을 가지고 항상 대기하고 있죠. 거기에 샘플만 맡기면 모든게 신경 쓸 필요 없이 처리가 됩니다. 우리 나라는 이런 것이 조금 부족한듯 싶습니다. 제가 박사과정 시절에는 그런게 전혀 없어서 랩 안의 학생들이 돌아가면서 공동기기실의 기계 관리를 분담하고, 동네 아주머니들을 뽑아서 쉬운 일들을 시키고 그런 식이었죠. 하지만 유럽의 연구소들은 어디에다 내 놔도 부럽지 않은 시설을 두고서 마치 공유경제처럼 잘 나누어 씁니다. 외국과 경쟁해서 이기려면 이런 시설은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제가 겪어 본 캠브리지, Hubrecht, IMBA 모두 비슷한 수준으로 잘 구성되어 있습니다. 전에 몇 분과 이야기 해 보니까 한국에서는 연구소의 이런 요구 사항을 민간 회사들이 채워 주는것 같더라구요. 그래서 뭔가 동일한 방식은 아니지만 비슷한 니드를 다른 방법으로 해결이 되고 있는것 같기는 합니다.

여기서 이렇게 편하게 지내다가 혹시나 한국에 돌아가면 정말 아무것도 못하겠구나라는 걱정이 듭니다. (웃음)

 

네덜란드에 계실때 지도 교수였던 Hans Clevers는 세계적인 대가입니다. 그 분을 보면서 이 사람의 어떤 특성이 그를 대가로 만들었다고 느끼셨나요?

Hans Clevers. 세계적인 줄기세포 석학이자 네덜란드 왕립 과학원 (KNAW)의 원장. Wnt signaling cascade의 핵심 물질인 TCF를 발견. 현 네덜란드의 과학계를 대표하는 인물로 손꼽히고 있음.

일단 대가들은 보통 똑똑합니다. 천재라고 해도 될 정도인데요, Hans Clevers가 좀 더 놀라운 부분은, 이 사람이 자기 아래 사람의 열정을 당근과 채찍으로 끌어낼 줄 아는 사람이예요.

가장 놀라웠던 부분은 포닥을 뽑으면 일단 굶긴다는 점 입니다. 일을 바로 안줘요. 최대한 일을 굶겨요. 주변에서는 누구는 네이처 리비전 들어가고 누구는 데이타 쏟아지고 하는 것을 랩미팅에서 계속 보게 합니다. 속이 타는거죠. 랩미팅에서 발표하는 기회는 두달에 한번씩 돌아오는데, 그걸 두 달 세 달 네 달 보는 동안 내 것은 없는거죠. 사람이 그런 상황에 닥치면 자기가 배운 내용을 토대로 열심히 생각을 해서 뭔가 재미있는 이야기거리를 스스로 만들게 됩니다. 어렵사리 준비한 자료를 가지고 교수님을 자발적으로 먼저 찾아 가게 됩니다.

그런데 이 분이 그런 아이디어의 거절을 아주 잘 합니다. 거절의 근거는 보통 너무 설명이 잘 되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라는겁니다. 그런 아이디어로 논문을 쓰면 놀랍지 않고 재미가 없다는 거예요. 그럼 좋은 논문이 안되는거죠. 본인이 보기에 터무니 없어 보이는 수준의 이야기를 오히려 긍정적으로 평가합니다. 이 분의 의도는 이거예요 – 저널의 종류에 상관 없이 들어가는 시간과 노력은 어차피 비슷비슷하니 급한 마음에 빨리 뭔가를 만들어 내서 적당한 수준에 나가는것은 지양하고 최대한 모험적인 실험을 하라는 겁니다. 보통 위험 요소가 큰 프로젝트는 피하잖아요. 하지만 Hans Clevers는 그런것을 해야 성공한다고 이야기 하는거예요.

(편집장) 아니, 한스의 입장에서는 다양한 포닥을 이용한 일종의 연구 포트폴리오를 구성해 놓고 있으니 포닥은 한 두명이 망해도 자기는 안망하니, 이런 모험을 포닥들에게 너무 쉽게 권하는거 아닌가요? 포닥은 그 프로젝트 하나에 자신의 미래가 달려 있는데.. (웃음)

 

사진 : TSL

저도 그런 생각을 했는데요, (웃음) 지나고 나서 보니 어쨌던 그런게 그가 남다른 부분이 아닌가 싶어요. 많이 굶으면 이거는 정말 말도 안돼 보여도 하게 됩니다. Hans가 종종 하는 이야기는, 만약 되면 어떻게 할래.. 입니다. 그리고 복권 당첨될 확률 보다는 훨씬 높다는거죠. 그런데 복권은 매주 사잖아요. (웃음)

 

캠브리지로 옮기신 이후에는 직접적인 가르침을 받는 사람이 없으신 상태입니다. 새로운 배움의 기회는 어떻게 제공 받으시나요?

캠브리지는 그 안에 있는 모임들이 아주 좋았어요. 워낙 대가들이 있고, 이 대가들은 이미 네임드이기 때문에 자기들이 욕심을 차릴 필요가 없어요. 그래서 자기의 창의성이라던가 자기의 뛰어남을 남들과 많이 공유를 하죠. 이미 다 잘됐으니 더 욕심 안부리는거죠. 뭐 소일 거리 하고 있다가 혹시라도 스톡홀름에서 불러 주면 좋겠다 정도의 생각을 하시는 분들?

그런 분들이 저보고 같이 이야기 하자 해서 이야기 하다 보면 그 분야의 대가가 제 옆에 친구처럼 계시는거죠. 그리고 그 모임 안에 이미 암묵적인 선발 과정이 있어요. 토론에 참여하는 연구자들의 퀄리티가 기본적으로 보장이 되는거죠. 그러다보니 유명한 저널의 편집장들도 거기 와서 가끔 귀를 기울이거든요.  그 안의 그룹 리더들과 이야기 하면서 들어본 좋은 내용은 미리 점지를 해 놓는 거죠. 다른 저널에 빼앗기지 않도록..

한국도 그룹 리더들의 숫자는 많은데 지금보다 더 잘 하려면 한국에서도 열린 토론이 매우 필요하다고 봅니다. “지금 하시는 프로젝트는 대변혁이 필요할것 같습니다”와 같은 직접적인 이야기를 서로 할 수 있어야 하다는거죠. 저는 이런 “직설”이 훨씬 더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 원동력이라고 봅니다. 그리고 그게 유럽의 과학자들이 경쟁력을 가지고 있는 이유이고요.

비엔나의 경우는 그룹 리더들끼리 정기적으로 모여서 같이 점심 먹는게 있어요. 그런데 그냥 밥을 먹는게 아니라 chalk talk(칠판에 직접 적어가며 하는 발표)를 하는겁니다. 한 명은 펜 들고 화이트 보드에 자기가 하는 연구를 열심히 설명하는 동안 다른 리더들은 편안하게 샌드위치 같은걸 먹으며 구경하는 겁니다. “요새 이런게 있는데..” 라고 설명하면서 어떤 기술을 쓰고 싶고 어떤 논문을 봤는데 잘 모른다고 이야기 하면 약간 시니어급의 그룹 리더가 “어, 그건 어디에서 누가 하는데 가서 한번 알아보면 어떨가?” 라는 식의 조언을 해 주죠. 그게 아주 큰 도움이 됩니다.

이걸 파워포인트가 아닌 chalk talk로 하는 이유는 파워포인트로 보여주면 보는 사람도 상상력이 줄어들게 되고 경직된 사고를 하기 때문에 무의식적으로 그 내용을 받아들이는 방식으로 가지 비판하게 되지 않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발표를 하는 사람 입장에서도 잘 준비 된 파워포인트 보다는 직접 손으로 그림을 그리면서 발표하다 보면 허점이 많이 들어날 수 있기 때문에 적나라하게 모든게 다 드러나지만 그런 분위기 속에서 좀 더 직설적이고 자유로운 토론이 가능합니다.

 

아주 옛날 이야기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대학 진학 시 생물학을 전공으로 선택하셨습니다. 그 선택에 대해서는 후회 없으신가요? 과학이라는 분야가 되게 넓은데 왜 하필 생물학을 고르셨나요?

매우 만족하고 있습니다. 적성의 문제죠. 이미 고등학교때 제가 수학을 풀기는 하지만 아주 잘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요, 그러면서 물리가 떨어져 나갔습니다. (웃음) 화학을 생각해보니 잘 하기는 했는데 화학 약품 냄새가 싫었어요. 그래서 이것을 하고 싶지는 않다라고 생각했고, (또 웃음) 작은 동물들을 관찰하는 것을 좋아했어요. 아, 나는 이런 재미를 계속 추구하면 좋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죠.

생물학이 다른 학문에 비해 가지고 있는 독특한 매력은 아직도 많은 면에 있어서 원시적인 부분이 있어서 많은 부분 직관에 의존해야 한다는 점 입니다. 어떤 경우 약간은 예술가처럼 엉뚱한 생각을 해야 하는 학문이죠. 저는 그런 쪽으로 적성이 맞았던것 같아요. 후회 없는 선택입니다.

 

마지막 이 질문으로 마무리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자신이 원하는 연구를 마음껏 할 수 있는 그룹 리더, 혹은 PI는 많은 연구자들의 꿈입니다. 그리고 그런 그룹 리더를 꿈꾸는 젊은 과학도들이 많습니다. 그 사람들에게 해 주고 싶은 조언이 있으신가요?

사실 PI가 되려면 기본적인 패키지를 만들어야 하잖아요. 논문, 자신만의 테크닉 등등.. 저도 몰랐는데 완벽한 실험가, 즉 실험을 잘 하고 논문도 잘 내는 사람이 또 완벽한 그룹 리더가 되는건 아니거든요. 그룹 리더는 매니저입니다. 매니저가 되면 자기가 실험을 더 잘 할 수 있어도 자기보다 실험을 못하는 사람을 써서 실험을 해야 하거든요. 축구 비유를 다시 들자면 메시가 축구를 제일 잘 하지만 그가 축구 감독을 해서 맨유의 퍼거슨보다 더 뛰어나기는 어렵지 않겠습니까. 물론 과학계가 축구계와는 조금 다르겠지만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과학도 사람이 하는 일인지라, 사람 관리 능력이 아주 중요한 것 같습니다.

좋은 공동 연구를 하기 위해서도 동료 리더들에게 제가 좋은 사람으로 비춰져야 합니다. 좋은 학생을 끌어 모으기 위해서도 마찬가지고요. 그런데 과학자들 중에 필요하지 않을 때에도 크리티칼 한 사람들이 있어요. 이런 사람들은 그룹 리더로 살아가기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원만한 대인 관계를 유지하는 법, 그리고 상대방의 심리 파악까지 해서 그 사람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는 이해심, 사려깊은, 공감 능력 이런 과학 외적인 것들이 매우 아주 중요한것 같습니다.

저는 이런 것을 실험실에서 연구하는 동안에는 전혀 배우지 못했어요. 처음 해외에 나와서는 언어적 장벽 앞의 답답함, 그리고 다른 PI를 만나서 이야기를 하고 할때의 그 낯섬, 이런게 많이 힘들었습니다. 연구 계획서는 머릿속의 아이디어를 풀어내면 되지만, 이후의 면접이라던가, 이런 것들은 따로 배워 본 적이 없는 것들이라서 스스로 터득하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과학도 결국은 사람과 사람이 얽혀서 하는 것이기 때문에 대인 관계가 중요합니다. 예전 같으면 독수공방해서 혼자 대단한 성과를 만들어 낼 수도 있었겠지만, 지금은 과학적 발견도 매우 복잡한 배경 속에서 나오기 때문에 혼자서 무언가를 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요즘 논문 중에는 리뷰 논문이 아닌 이상 한 두명의 저자로 완성되는 논문이 거의 없습니다. 혼자서는 아무리 해도  성공하기 어려운 시절이 왔다는 거죠. 결국 원만한 대인 관계를 항상 유지하는 것이 아주 중요할것 같습니다.

 

더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많았으나 시간 관계상 이 정도로 인터뷰는 마무리 하였습니다. 구본경 박사는 최근 팟캐스트 "오마매의 바이오톡"에도 출연하여 다양한 화제로 재미있는 인터뷰를 한 바 있습니다. 더 궁금하신 분들은 위 링크를 클릭하셔서 들어 보시는 것도 추천 드립니다.

시간 내 주신 구본경 박사님께 다시 한번 감사의 말씀을 드리며 하시는 연구 모두 좋은 결과 얻으시기를 기원하겠습니다. 혹시나 구본경 박사님께 문의하고 싶은 내용이 있으신 분들은 이 기사 아래에 리플로 남겨 주시면 구박사님께 전달하도록 하겠습니다.

The following two tabs change content below.
the Science Life의 편집장 입니다.

Latest posts by Editor (see al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