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 이미지 : 동의 보감, 원본보기)
(편집자 주) tSL에서는 부산대학교 미생물학과의 이태호 명예 교수님을 모시고 식품의 오해와 진실 밝히기를 시작합니다. 이태호 교수님은 그동안 다양한 매체를 통해 식품에 대한 잘못된 상식과 비과학을 타파해 오는데 큰 노력을 기울여 오셨습니다. 앞으로 저희 tSL의 지면을 통해 이태호 교수님의 통찰력 있는 시선을 많은 독자분들과 나누고자 합니다. 어려운 시간 내 주신 이태호 교수님께 감사 드립니다. 그 첫번째 기사는 동의 보감에 대한 맹목적 신뢰에 울리는 경종 입니다.
동의보감의 유네스코 문화 유산 등재
건강식품은 대개 한약재를 재료로 사용한다. 한의서에 나오는 효능을 신비화하여 제조하는 게 보통이다. 소비자도 400여 년 아니 수 천 년 전의 미신 같은 사실을 믿고 의심 없이 받아들인다. 얼마 전 백수오사건이 그 대표적인 예다.
2015년 전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백수오 사건은 여기를 참고.
2009년 동의보감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됐다. 허준선생이 80여권의 중국과 우리나라의 의서들을 참고하고 민간요법과 구전으로 전해오던 비방, 자신의 경험 등을 살려 만든 400여 년 전 1610년에 완성한 귀중한 한의서다. 당연 중국 것을 편집, 도용했다는 비판도 있다.
동의보감의 등재를 알리는 유네스코 페이지
이런 문화유산 지정으로 한의학계는 마치 현대 과학이 동의보감의 치료 효과를 인정하기라도 한 것처럼 호들갑을 떠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실제 기록유산으로 지정된 이유는 치료효과의 우수성과 의학적 가치를 인정한 것이 아니라 400년 전 당시 동양의학의 독창성을 정리한 역사적, 문화적 가치, 보존상태의 우수성을 인정한 것으로다.
지정에 앞서 밥그릇 싸움으로 비치는 해프닝도 있었다. ‘세계가 한의학의 우수성을 인정한 것이다’라는 한의학계의 주장에 대해 대한의사협회가 딴지를 걸기도 했다.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방해하는 움직임을 보이면서 과거의 앙숙관계를 더 악화시키는 계기가 되기도 했었다. 그러나 이런 의사협회의 과민반응이 보기는 불편해도 나름의 논리는 있었다. 유네스코는 한의학의 의학적 가치를 판단하고 인정하는 그런 기구가 아니기 때문이다.
동의보감 처방의 비과학성
한의학의 비과학성에 대한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양의의 비판은 사생결단이다. 볼 성 사나운 밥그릇 싸움으로 비치긴 해도 과학적 일리는 있다. 진단 시약과 의료기기가 발달하여 환자의 구석구석을 다 들여다 볼 수 있는 작금에도 문진과, 혈색, 손목의 혈관을 짚어(진맥) 질병의 진단과 치료에 일관하는 의료행위가 전근대적이라는 논리에서다.
400여 년 전 과학, 의학기술이 유치했던 시절의 의서를 금과옥조로 생각하고 변화를 거부해온 한의들의 믿음에 분명 문제는 있다. 지금까지 이런 믿음이 한의학의 발전을 방해하고 일반으로부터 외면당하는 단초를 제공했다. 결국은 한의 태만이 한의학계의 불황을 스스로 자초한 셈이 됐다.
지금의 과학수준에서 볼 때 동의보감의 내용에 황당한 부분이 많긴 해도 당시의 상황으로서는 세계 최고수준의 의학서적 이었음은 분명하다. 문제는 그때의 믿음을 지금도 한의들은 굳게 신봉하고 일반 대중도 동의보감을 들먹이면 만사형통으로 통한다는 데 있다.
동의보감의 치료법이 지금의 과학수준에도 통용되는 것이 없진 않지만 상당 부분(대부분이라고 하고 싶다)은 유치하고 황당한 수준을 넘지 못한다. 대표적으로 황당무계한 처방 몇 가지를 열거해 보자.
아들과 딸을 가려서 낳는 법
비소 한 냥을 비단 주머니에 넣어 임신부의 왼쪽 허리에 두르게 하거나, 활줄 한 개를 비단 주머니에 넣어 임신부의 왼팔에 차고 있게 하거나, 수탉의 긴 꼬리 3개를 뽑아 임신부의 자리에 넣고 알려주지 않으면 아들을 낳는다.
음식을 먹지 않고도 사는 방법
입을 다물고 혀로 아래 위 이빨을 핥으면서 침을 모아 하루에 360번 삼키면 좋다. 이런 방법을 점차로 연습해 1000여 번을 삼키면 저절로 배가 고프지 않게 되는데 3~5일 동안은 좀 피곤하지만 그때가 지나면 점차 몸이 가벼워지고 든든해진다.
투명인간이 되는 법 (은형법 隱形法)
흰 개의 쓸개와 말린 등칡의 줄기, 계피의 노란 속 부분을 섞어 가루로 만든 뒤 꿀에 반죽해 알약으로 먹으면 몸이 다른 사람에게 보이지 않게 된다.
귀신을 보는 방법 (견귀방 見鬼方)
석창포, 귀구를 각각 같은 양으로 꿀에 반죽하고 달걀 노른자위 크기의 알약을 만들어 한 번에 1알씩 매일 아침 해를 향하고 먹어 100일이 지나면 귀신을 볼 수 있다.
부부간의 사랑을 회복하는 법(영부부상애令夫婦相愛), 질투를 막는 방법(거투방去妬方) 등 현대과학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처방법이 비일비재다. 극단적인 예이긴 해도 누가 보더라도(한의도) 시비의 여지가 없는 황당하고 근거 없는 주장들이다.
과학적 임상 시험을 면제 받는 한의학
과학과 의료기술은 나날이 발전해 일취월장하고 있다. 현재는 아무리 좋은 의학서적도 10년을 넘지 못하고 개정된다. 그렇게 과거도 아닌데 10년 전의 지식도 구닥다리가 되어 새로운 지식으로 대체된다. 그런데 동의보감만은 400년(몇 천 년 전의 것도 기재되어 있음) 전의 의학지식인데도 지금까지 유효하고 불변의 법칙으로 통한다. 마치 한의학은 서양의학과 달리 전혀 변화가 없어도 된다고 생각하고 변할 필요도 없다는 듯 보인다. 제약회사가 “동의보감 원방처방“이라고 밝히면 소비자도 안심하고 관계감독부처의 단속도 피해간다.
의약품 허가를 내줄 때는 효과를 입증할 수 있는 임상시험을 요구한다. 동물실험의 효능과 독성을 따지고 실제 인체에 적용하여 임상 3상까지를 거쳐야한다. 막대한 돈(수 조)과 시간(10여년)이 필요하다.
의약품 임상 시험 절차 (출처 – 영남대학교 병원 임상 시험 센터)
그런데 어떻게 된 일인지 한방약이나 기능성식품은 동의보감 등의 한의서에 그 재료가 기재되어 있기라도 하면 그 부작용이든 효과든 검증하지 않아도 그냥 통과된다. 약국에 똑같이 의약품 딱지를 달고 있는 약들 중에는 과학적 근거나 안전성과 유효성 검증 없이 무임승차한 약들이 수두룩하다. 한의학을 숭배하는 우리나라에서는 제약회사가 한의학 서적(10 여종)에 적혀있는 처방대로 제조하면 해당부처는 의약품으로 승인해 주기 때문이다. 이상하기 짝이 없다. 왜 그런지 모르지만 관계부처와 언론은 한의에 호의적인 것처럼 착각하게도 만든다.
한의학에서는 식품과 의약품에 구별이 없다. 같은 식품도 한의사가 처방하면 약품이 되고 식품업자가 제조하면 식품이 된다. 업자가 약효를 주장하면 불법이 되고 한의가 선전하면 합법이 된다. 같은 식품이 의약품이 되었다 식품이 되었다 하는 셈이다. 이런 비합리를 합리로 인정해 주는 기관이 식약처를 비롯한 보건당국이다.
식품과 의약품의 경계를 무너뜨린 주체는 한의뿐 아니다. 종편과 언론이, 무책임한 쇼닥터가, 어설픈 지식의 영양학자들이 식품과 의약품의 경계를 없애버렸다. 식약동원(食藥同源)이라는 천년도 더된 문구를 들먹이면서 그들의 무식함의 합리화에 소비자가 놀아나는 꼴이 됐다.
분명 한약재에도 다소(?) 치료효과가 있고 해당 질병에 약효를 나타내는 기능성화학물질이 있긴 하다. 있긴 해도 어떤 물질이 대상 질병에 효과를 나타내는지는 대부분 밝혀져 있지 않다. 식약처가 막대한 연구비를 투자하여 한약재의 지표물질을 검색하고 있으나 아직 몇 종을 제외하고는 정해져 있지 않다. 그것도 지표일 뿐 해당지병에 효능을 나타낸다는 임상실험이나 확실한 증거는 없다.
한약재의 유효성분은 대개 그 함량이 미량이다. 효과는 있어도 얼른 약효가 나타나지 않는다. 장기복용과 과잉투여를 요한다. (편집자 주 : 이런 면에서 볼때 한약재의 일부는 호메오파시 (homeopathy)와 유사한 성격을 가진다.) 유효성분의 과잉투여가 아니라 여타식물성분의 과잉투여가 수반된다. 이 성분들이 문제가 될 수도 있다. 독성이 있을 수도 있고 여타 물질(불순물 – 파이토케미칼)의 처리와 배설에 간의 지나친 부담도 문제가 된다.
현대 의약품은 최초 이런 한약재로부터 대부분 개발됐다. 재료로부터 유효성분만 분리하거나 농축하고 다른 성분을 배제한 것이 바로 의약품이다. 즉 다양한 생리활성 물질을 만들어내는 식물이 천연의약품의 중요한 재료가 된다. 이런 의약품의 구조를 밝히고 그 구조가 간단하면 한약재로 부터가 아니라 화학적으로 합성하여 사용한다. 가격이 싸지고 공급이 원활해 진다. 천연의 것과 똑같으니 천연이 아니라고 기피할 이유는 없다. 천연 의약품이 자연에서 생산되는 것이기 때문에 약효가 뛰어나고, 부작용이 적다는 일부의 주장은 별로 근거가 없다.
마치며
동의보감이 나오고 나서 지난 400년 동안 인체와 질병에 대한 의학수준이 엄청나게 발전했다. 항생제가 나온 것도, 전염병의 정체가 미생물이라고 밝혀진 것도 동의보감이 나온 훨씬 후의 일이다. 현대적 의료수준에서 보면 동의보감의 의학적 가치가 그렇게 높아 보이지만은 않는다. 동의보감이 잘못돼서가 아니라 400여 년 동안 질병에 대한 우리의 이해 수준이 엄청나게 발전해서이다. 그 당시의 훌륭한 치료방법이 지금도 유효할 수는 없다는 거다. 그래서 양의들은 400년 전의 의서를 아직까지도 믿고 있는 한의학이 과학이라 할 수 없다고 헐뜯는다.
실제 400년 동안 한의약의 발전은 별로 없었다. 심하게는 “약 첩이 달여주는 파우치로 바뀐 게 발전이라면 발전이다”라고 하는 비아냥도 있다. 동의보감의 전통을 살리지 못한 한의학계의 책임이 무겁다. 소중한 유산을 장삿속 광고의 소재로 사용하는 한의사들의 행태, 통렬한 반성이 필요하다.
작금에 와서 한의학의 발전은 도외시하고 양의의 흉내를 내는데 급급한 것도 비난의 대상이다. 불법으로 의료 기구를 설치해 놓고 환자들을 불러 모으는 것도 반칙이다. 의료기구의 사용을 법적으로 보장해 달라는 한의학계의 주장에 이판사판으로 막으려는 의사협회와의 밥그릇 싸움이 점입가경으로 치닫고 있다.
한의학과의 커리큘럼도 의과대학과 별반 차이가 없게 바뀌고 있다는 소문이다. 동의보감을 근거도 없이 신비화할 것이 아니라 현대의학을 접목하여 독자적으로 살아남을 길을 찾던지 아니면 의과대학과 통합하는 것이 현명하다. 수천 년 동안 전해왔다는 사실을 신비화 하는 것도 별 의미가 없다. 과학적으로 설명이 되지 않는 용어나 치료법으로는 똑똑해져 버린 21세기의 환자를 더 속일 수는 없다. 에볼라를, 메르스를 심지어 암을 한약으로 치료한다는 한의의 설명에 더 이상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그 동안도 한약의 치료 효율은 그렇게 높지 않았다. 급기야 현대의학의 그늘에서 살아남기 힘든 상황으로 몰리고 있다. 안타까운 일이다.
이 태호
Latest posts by 이 태호 (see all)
- 물 하루 8잔의 기적? 물은 목마를 때 마시는 것 - April 25, 2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