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만든 바나나라는데….

2월 26일자 한계레 미래 & 과학에는 다음과 같은 기사가 실렸습니다.

원본 링크

내용을 요약하자면 일본의 한 아마추어 과학자가 바나나의 씨앗을 급속냉동한 뒤 서서히 상온으로 끌어 올리는 방법을 통해 더운 지방에서만 재배가 가능한 바나나를 일본에서 재배가 가능하도록 만들었다는 내용입니다. 현존하는 모든 식물이 빙하기를 견뎌 냈다는 사실에 착안해, 바나나 안에 숨어 있는 추위에 강한 유전자를 냉동과 해동 과정을 통해 끄집어 냈다고 합니다.

정확히 어떤 유전적인 원리에 의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사실이라면 매우 놀라운 일입니다. 네이처 급의 논문에 발표되고도 남을 일이고, 기존 식물학자들도 놀랄만한 일입니다.

세상의 모든 과학 원리를 우리가 다 알 수는 없겠지만, 이 정도로 놀라운 내용은 한번 쯤 그 근거를 살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세상은 넓고 과학자들은 많으며 우리는 상상도 못할 별 시시콜콜한 주제들에 달려들고 있는 연구자들이 많습니다. 이런 실험 안 해본 과학자 없을 겁니다. 그래서 의심하기 좋아하는 편집장이 또 이 기사에 달려들었습니다.

위 기사의 바나나는 일본의 D&T Farm이라는 회사에서 만들고 있었습니다. 일본 오카야마에 위치한 회사인데, 오카야마는 일본 열도에서 태평양을 바라보고 있는 남쪽 연안, 오사카에서 서쪽으로 약 200km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습니다.

오카야마는 위도상으로는 부산보다 살짝 남쪽입니다만, 동해를 타고 몰려오는 한류를 접하지 않다 보니 연 평균 기온은 약 16도 정도이고 여름에는 30도 정도, 겨울에는 7도 정도 되는 지역인 것 같습니다. 날씨만 놓고 보면 제주도와 비슷해 보입니다.

아래, 위키피디아에서 가져 온 전세계 바나나 생산 지역 지도에 따르면 바나나는 확실히 열대 지방에서 많이 자랍니다. 오카야마는 확실히 바나나가 대량 생산되는 지역은 아닙니다.

 

하지만 대량생산이 불가능하다고 해서 바나나가 자랄 수 없는 것은 아닙니다. 이미 1980년대에 제주도에서 바나나는 재배가 되고 있었고, 지금까지도 키우시는 분이 계십니다. 상업적으로 수익이 날 만큼 생산하기는 어려울지 몰라도 오카야마 정도의 위치라면 적어도 재배는 가능할겁니다.

 

다시 저 회사 이야기로 돌아가서, 이 회사에서 내세우는 바나나의 특징은 다음과 같습니다.

– 껍질째 먹는다. 그래서 영양분이 많다. (트립토판이 많다느니 세로토닌이 있다느니 등등은 그냥 마케팅용 문구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 일본에서 자체 생산한다. 凍結解凍覚醒法 (동결해동각성법)으로 추운데서도 자라서 가능하다.

– 당도의 증거인 갈색 점이 박혀 있다.

– 바나나의 병충해는 열대지방에만 있기 때문에 오카야마에서 키울 때에는 농약이 필요 없다. 그래서 무농약 무공해 유기농이다. 게다가 GMO가 아니다!

 

회사 홈페이지에서 발췌

이 정도 입니다. 얼렸다 녹였다 하는 기술은 간단하게 언급 되어 있지만 그보다도 더 중요하게 이 회사 바나나의 특징으로 내세우고 있는 것은 껍질째 먹는 바나나라는 것 입니다. 우리가 가장 관심을 가지고 있는 기술인 동결해동각성법(?)에 관한 내용은 별로 없습니다.

여러가지 자료를 조사하던 중, 한겨레의 기사가 아마도 참고했을것으로 추정되는 기사를 하나 발견했습니다. CNN의 경제와 투자 관련한 계열사인 CNN Money입니다.

 

사진을 누르시면 원 기사로 연결됩니다.

2월 2일에 발표된 이 기사에서도 얼렸다 녹였다 하는 기술에 대한 언급은 살짝 있기는 합니다. 하지만, 기사 제목 (Would you eat a banana and its peel?)에서 보실 수 있듯이 껍질째 먹는 바나나라는 점에 초점을 맞추어 기사가 쓰여져 있습니다. 그 외 일본인들의 독특한 과일에 대한 신기한 집착 (예를 들면 네모난 수박이라던가)의 연속선상에서 껍질째 먹는 바나나를 다루고 있지, 이 바나나의 재배 기술에 중점을 두지는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이 바나나의 육종의 과정에서 씨앗을 얼렸다가 다시 녹이는 방법도 사용했겠습니다만, 그것이 이 바나나가 그 지역에서 자랄 수 있도록 내냉성을 지니게 한 직접적인 원인이라고 설명하기에는 다소 부족해 보입니다. 위 CNN money의 기사에 따르면 이 바나나의 생산량은 주변 백화점에 일주일에 약 13kg (30 pound) 정도 공급할 수 있는 양이라고 합니다. 이 정도의 생산량은 사실 온도와 일조량 조절이 되는 온실 몇개 갖추고 있는 정도면 일본 아니라 어디에서건 무리 없이 생산할 수 있는 양입니다. 내냉성이 특별히 없는 바나나라도 키우는데 큰 문제 없어 보입니다.

이렇게 키움으로서 생산비 단가가 높겠지만, 그것은 이 바나나가 껍질째 먹을 수 있다는 점 + 일본에서 재배된다는 일종의 신토불이 정신(?) + 그리고 뭔가 신비해 보이는 과학이 접목되어서, 독특하고 신기한 물건에 대해 높은 가치를 부여하는 일본 시장 특유의 성격과 맞물려 고가의 과일로 소량 유통되는 일부 예외적인 상품으로 보는게 맞지 않을까 싶습니다. 신기한 식물학의 발견이라기 보다는 성공한 마케팅의 한 예로 보는게 나을것 같습니다. 이 CNN 기사가 참고했다는 또 다른 글은 좀 더 노골적으로 블로그마케팅스러워 보입니다.

soranews24라는 일본 사이트를 참고로 저 CNN Money의 기사가 작성되었다고 합니다. 필진들이 이렇게 직접 먹어보고 있습니다. 껍질이 맛있는건 아닌데 못먹을 정도는 아니라고 합니다.

저 기술이 회사의 극비 사항이라서 공개를 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 편집장인 저의 추측임을 전제로, 아마도 저 회사에서는 여러가지 다양한 육종 방법을 통해 우연찮게 오카야마에서도 잘 자랄만한 바나나 종을 확보할 수 있었고, 마침 그 바나나의 껍질이 연하고 얇은데다 떫은 맛이 없어서 껍질째로 먹을만도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마케팅 포인트로 삼아서 지역 특산품으로 판매하는것 같습니다. 실제로 이 바나나를 먹어보았다는 위 기사에 따르면 바나나라기보다는 파인애플 맛이 났다고 합니다.

혹시나 싶어서 씨앗을 냉장 혹은 냉동 보관 함으로서 식물이 cold-adaptive하게 변화하는지를 확인한 논문이 있나 검색해 보았습니다만, 아쉽게도 없었습니다. 저 회사에서 특별한 과학적 근거를 제시하지 않는 한, 의심 많은 편집장이 보기에는 수정란을 냉동보관한 후 나중에 착상 시켰더니 추위에 강한 아이가 태어났다는 것 만큼이나 근거가 박약해 보이는 것이 사실입니다.

너무나도 신기하고 상식을 깨는 듯 해 보이는 과학적 발견은 한번쯤 그 근거를 찾아 본 후에 믿는 습관을 가지는 것이 좋습니다. 과학을 이용한 사기꾼은 이런 부분을 집중 공략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제가 틀렸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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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cience Life의 편집장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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