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과학계, K-Pop에서 배워 보자

커버이미지 : JYP 소속 가수들 (source)
비엔나 IMBA에서 연구하고 계시는 구본경 박사님이 기고문을 보내오셨습니다. 한국 과학계의 벤치마킹 대상으로 K-pop을 삼아보자는 재미있는 의견입니다. 과연 K-pop의 어느 부분이 본받을만 한지 살펴보겠습니다. 많은 분들의 다양한 의견 환영합니다.

박진영에게서 한국 과학이 나아갈 방향을 본다고 이야기 하면 어불성설이라고 하는 분이 계실 듯 하다. 호불호가 갈릴 수 있는 사람이라 아예 알고 싶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이 글을 작성하는 이유는 분명 배울 점이 있기 때문이다.

가수에서 프로듀서로, 프로듀서에서 사업가로 성장해온 45세가 이야기하는 비전은, 작은 그룹이 성장한 후에 어떠한 과정을 거쳐야 효율성과 파급력을 극대화 할 수 있는 지를 잘 보여준다.

그가 이야기 한 4가지 주제는

1. 회사안에 회사
2. 현지화를 통한 국제화
3. JYP 뮤직펙토리
4. 행복에서 나오는 창의력

이다.

오늘은 이들 각각의 주제를 유럽에서 직접 경험한 정상급 연구소들과 비교해보도록 하겠다. 우선 JYP의 짧은 강연을 들어보라. 영어도 수준급이다.

1. 회사안의 회사

회사가 커지면서 회사를 총 4개의 독립된 회사로 나누었다고 한다. 1개의 회사가 커져서 2개의 회사를 병렬로 구축하고, 2개가 다시 커지면 나누어서 4개를 병렬로 구축하는 방식일 것이다. 작은 그룹의 효율성을 유지하면서 몸집을 키우는 좋은 방법일 것이다. 마찬가지로 전통있는 유럽연구소들의 성장도 비슷하게 이루어 졌다.

예를 들면 한 저명한 교수가 5-60대에 이르러 실험실의 몸집이 커지면, 그 실험실에서 함께 일하던 젊은 과학자를 독립시키면서 살림을 쪼개어 나눠 주는 식이다. 보통 큰 실험실은 구성원이 20-30명이 넘어간다. 만약에 40명이 되게되면, 리더급 교수는 다시 25명으로 몸집을 줄이면서 나머지 15명을 5명씩 3명의 젊은 그룹리더에게 맡기는 식이다. 이들 3명 중에 한 명은 언젠가 리더급 교수 수준 혹은 그 이상으로 성장할 수 있다. 혼자서 3-40명을 독식하는 것은 효율도 떨어질 뿐만 아니라 앞으로 성장해 나와야 하는 젊은 교수들에게도 큰 방해물이 된다.

네덜란드 Hubrecht 연구소의 연구 리더들. 자신의 이름을 딴 연구실에서 끊임없이 연구와 후진 양성을 병행하며 독자적인 연구 능력이 되는 신진 연구자들은 이 그룹에서의 경험을 토대로 또 다른 독립적인 새로운 연구 그룹을 만들수 있는 능력을 확보하게 된다.

대학이나 연구재단이 실험실 규모를 정해둘 필요도 있다. 정리하자면, 연구소의 큰 이름 하에 많은 실험실들이 모여있는 구조는 유럽 연구소의 특징이다. 20-40여개의 크고 작은 실험실들이 병렬식으로 나뉘어져 있으며, 각각의 실험실은 그룹리더들에 의해서 이끌어 진다. 그룹리더들의 직급에 상관없이 이들은 연구소 내에서 동일한 권리를 가지며, 각자 고유의 영역에서 원하는 연구에 매진한다. 한국의 IBS단이나 출연연구소에서 보이는 상하관계는 직급에 따른 연봉에서는 보여지지만, 실제 연구활동에서는 보이지 않는 특징도 가지고 있다. 독립된 실험실들이 병렬로 연결된집합체가 이들 유럽 연구소의 본 모습이다.

 

2. 현지화를 통한 국제화

JYP는 외국인 멤버를 K-POP그룹에 영입을 하면서 국제화를 시도했고, 현재는 일본에는 일본인으로 결성된 그룹을, 중국에는 중국인으로 결성된 그룹을 데뷔시킨다고 한다. 2달동안 중국 전역을 다니면서 오디션을 하고, 재능있는 중국 인재들을 뽑아왔다고 한다. 이름은 K-POP이지만 한국이라는 국경안에 자신들을 가두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한 것이다.

유럽 연구소들은 아직 미국만큼 국제화에 성공하지는 않았다. 영국이나 독일의 국제화에 대해 이야기하면 우리가 어느정도 밀리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할 수 있어서, 오스트리아의 예를 들어볼까 한다. 오스트리아의 IMBA연구소를 보면 이들이 국제화에 얼마만큼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지 잘 보여 준다.

비엔나 IMBA 연구소 로비의 모습

IMBA연구소가 그룹리더를 뽑는 유일한 기준은 Excellence in Science이다. 해마다 전세계에 공고를 내고, 가장 우수한 평가를 받은 후보에게 거부하기 어려운 지원 제공을 약속한다. 2016년에는 페루와 한국 출신의 과학자를 뽑았으며, 2017에는 중국, 페루, 인도 출신의 과학자를 뽑았다. 필자의 기억으로는 오스트리아 출신이 최종 후보에 아예 없었던 것 같다. 오스트리아는 독일어를 쓰는 나라이기 때문에 영어로만 생활을 이어가기에는 다소 불편할 수도 있지만, 연구소에서는 철저하게 모든 업무를 영어로만 진행을 한다. JYP도 회사내 가수들에게 외국어 1개를 유창하게 할 수 있도록 어렸을 때부터 외국어 교육을 한다고 이야기 한다. 국제화 시대에도 한국인 인재만을 찾고, 한국어만을 계속 사용하면서 시대를 앞서가는 우수한 연구를 하겠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 아닐까?

 

3. JYP 뮤직 팩토리

JYP가 신축사옥을 만들면서 트레이닝 공간, 녹음 공간, 믹싱 공간을 매우 확장한 사실을 강조한다. 이를 통해서 각 그룹이 필요에 따라 사옥 내에 마련된 공간에서 창작활동을 할 수 있게 했다. 프로듀싱 룸의 경우 여러명의 프로듀서가 모두 같은 층에서 활동하게 함으로서 이들 사이의 교류와 협업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도록 유도했다고 한다.

한국 과학계의 고질적인 문제점 중 하나가 코어퍼실리티 (Core facility)의 부재이다. 새로운 유전자를 발굴하여 생쥐 제작을 하려고 해도 이를 해결할 수 있는 공간이 국내 유명대학교에도 제대로 갖추어져 있지 않다 – 중국 회사에 맡겨서 해결하는 경우가 많다고 들었다. NGS 분석을 하고자 하면, 국내회사에 외주를 주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조직학 분석, 재조합 단백질 생산, 항체 제작 등등 의뢰를 하고 싶은 것은 많지만, 대부분 외주로 하거나 아예 포기한다. 첨단현미경이나 유세포분석기들은 많은 경우 한국 대학에도 들어와 있지만, 제대로된 오퍼레이터가 없어서 학생들이 알음알음 꾸역꾸역 연구를 이어 나가고 있다. 심지어 외국에 나온 한국출신 박사후연구원들은 누군가에게 실험 의뢰를 해서 데이타를 만들어 낸다는 부분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오히려 자기 손 외에는 믿지 못하는 거부감도 보이곤 한다. 아직 혼자 모든 것을 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인식마져 부재한 것인가? 10여개의 실험실과 10여개의 코어퍼실리티가 창출해 낼 수 있는 효율성은 10 x 10정도가 아닐까? JYP가 회사를 팀과 퍼실리티를 나누고 이들의 계속 곱해가며 생산성을 늘리고자 했다는 점에서 그가 여느 과학자들보다 똑똑하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할 듯 하다.

https://www.vbcf.ac.at/home/

Core Facilities

https://www.hubrecht.eu/facilities/

 

4. 행복에서 우러나는 창의력

JYP가 이 부분을 강조하는 것을 보면서 참 기뻤다. 창의적인 생각을 끌어내기 위해서는 노력을 해야하지만, 여유가 없는 마음에서는 창의력을 발휘하기가 어렵다. 유럽과학자들이 열심히 연구에 매진하다가 여유로움이 사그라진다 싶으면 잠시 쉬는 모습을 꽤 자주 보았다. 그 중에 가장 인상적이었던 친구는 사이언스지에 제출한 논문 리비전 중에 1달 휴가를 가던 네덜란드 박사과정생이었다. 그는 지금 유트레흐트 의과대학에서 이미 부교수로 승진이 되어 필자보다 5살 젊은 나이에 필자보다 더빨리 승진된 케이스다.

다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예가 있지만, 휴식과 여유는 창의력을 발휘하기 위한 핵심이다. 네덜란드에서 가장 많이 들었던 질문이 ‘왜 그런 실험/연구를 하냐?’는 것이다. 남들이 감동할만한 수준의 연구주제나 실험을 찾기 위해서는, 함부로 시간과 돈을 쓰지 말고, 앉아서 쉬면서 새로운 생각과 비전을 마련하라고 한다. 보고서에 넣을 결과만 급하게 맞추어 내는 가짜 사이언스 코스프레를 그만두고, 진짜 과학을 하기 위해서 앉아서 생각하고 좋은 아이디어가 나올 때 까지 기다리라는 것이다. 반면, 내가 있었던 연구실은 월척스런 아이디어가 나오면 세상 그 누구보다도 빠르게 덤볐다.

우리가 JYP처럼 대학원생을 키워보는 것은 어떨까? 결국 K-POP도 과학도 최전선에 있는 사람들이 이끌어 간다. 세상 어디에 내어놔도 이름 석자만으로 전세계 과학자들이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한국과학자를 길러낼 수 있으려면 JYP 스타일이 맞을 것 같다. 전국-전세계를 돌면서 과학에 재능이 있는 젊은이를 찾아 내고, 이들에게 적절한 대우, 코어퍼실리티를 갖춘 멋진 연구환경, 즐거운 식사와 여유를 즐길 수 있는 업무환경을 제공해보자. 동시에 이들에게 끝없는 창의력과 승부욕을 요구해보자. 어느 노학자가 교수들에게 소리높여 외쳐대던 강연이 생각난다 – 너희가 유명해지려면 네 제자가 먼저 유명해져야 한다. 그들에게 기회를 줘라. 그것이 너희가 성공할 가능성을 가장 높이는 방법이다.

내 눈에는 JYP의 성공이 그 노학자의 성공 비전과 궤를 같이 하는 것으로 보인다.

K-POP, K-Science 모두 화이팅!

 

덧붙이는 말


끝으로 과학계와 K-POP을 비교한 또 다른 글을 소개한다. 메드사이언티스트의 ‘아이돌 연습생과 과학자 연습생’이다. 
https://ppss.kr/archives/170098 

‘K-POP에서 배워보자’는 아이돌을 키워내는 시스템에 초점을 맞추었고, 메드사이언티스트님의 글은 아이돌 시스템에서 도태되어 가는 많은 젊은이들에 초점을 맞추어 과학계와 비교하였다. 대학원생을 마구 찍어내는 현재의 한국 현실이 늘어만 가는 아이돌 연습생의 현실과 많이 겹쳐보인다. 합리적으로 엘리트를 양성하면서, 동시에 이탈자들을 잘 활용하는 최적의 시스템을 우리가 고안해 내길 바란다. 이런 의미에서 최근 -IST 학교에대해 우선적으로 발표한 '대학 연구인력의 권익강화 및 연구여건 개선방안'은 매우 환영할만하다. 
https://news.v.daum.net/v/20180726152114399

한국 대학원의 선진화가 계속 이어지길 바란다. 더불어 행복하게 과학을 즐길 수 있는 한국 사회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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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cience Life의 편집장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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