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과학연구원 – 모래성인가 미래의 근간인가

포항공대에 위치한 기초과학연구원 (이하 IBS) 면역미생물공생연구단이 단장 부재의 문제로 고심(?) 끝에 문을 닫기로 했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더불어 행정적으로 IBS 소유인 장비와 시설들을 모두 철거하기로 결정했다는 소식입니다. 이 소식은 또한 그동안 계속 이슈가 되었던 IBS 연구단의 정체성을 확인시켜주는 핵심적인 사건입니다.

IBS 연구단 프로그램은 시작부터 말이 많았습니다. 단장 개인 연구비로는 세상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수준으로 지원금이 많다는 사실과 기초연구비의 대부분을 IBS가 독식한다는 우려 때문이었습니다. 반면 IBS는 해당 프로그램이 독일 막스 플랑크 연구소 (MPI)를 참고해서 만들었으며, IBS 연구단은 절대로 개인 그랜트가 아니라 MPI처럼 연구소에 가까운 구조이며, IBS 연구단을 기반으로 해당분야에서 전세계를 선도하는 연구 그룹을 만드는 것이 IBS의 목표라고 했습니다. IBS 홈페이지의 ‘비전과 목표’를 살펴보면, “IBS는 우수한 과학자들이 한 곳에 모여 집단을 이루어 장기간 연구를 수행할 수 있도록 운영”, “연구단은 첫 설립 후 5년, 이후 3년마다 평가를 받을 뿐 연구기간에 대한 제한이 없음”이라고 설명합니다.

 

하지만, 오늘 올라온 동아사이언스 기사에 따르면 대부분의 과학자들이 우려했던 ‘IBS 연구단 = 덩치만 큰 개인연구비’라는 등식이 사실이 아닐까 합니다. 뿐만 아니라, 우수한 과학자들이 모여 장기간 제한없이 연구를 수행하는 이상적인 Playground 개념은 오직 단장 개인의 생사와 거취에 달려 있다는 사실도 확인되었습니다.

즉, IBS가 지금까지 이야기한 모든 장미빛 미래관의 근간이 각 단장 개인에게 달려있다는 겁니다. 약 50여개의 연구단을 설립해서 한국기초과학의 근본적인 체력을 키우고, 미래를 선도하겠다는 계획은 각 연구단의 모든 연구자가 최선을 다해도, 단장 개인이 이직을 하거나, 죽음으로 인해 모래성처럼 무너질 수 밖에 없는 부실한 구조라는 것이 확인되었습니다.

IBS는 말합니다.

  • IBS는 기초과학연구로 미래를 밝히고자 합니다.
  • IBS는 기초과학의 길잡이가 되고자 합니다.
  • IBS는 함께 가고자 합니다.
  • IBS는 쉬지 않고 나아갈 것입니다.

하지만, 현재와 같다면 IBS는

  • 기초과학연구의 미래가 항상 불확실하다는 것을 계속 증명할 것이며,
  • 길잡이 보다는 단장 개인의 부재 때마다 젊은 과학자들을 버릴 것이며,
  • 돌아가신 단장을 대신해서 모두가 함께 가고자 할 때마다 한 번 더 울릴 것이며,
  • 쉬지 않고 나아가기보다는 단장 개인의 운명에 따라 모래성처럼 무너지기만 할 것입니다.

IBS를 위한 제안을 하고 싶습니다. 좋은 예를 말씀 드리겠습니다.

마침 제가 있는 유럽의 연구소도 소장이 최근에 사임을 하는 사태가 벌어졌습니다. 15년을 이끌어온 연구소를 떠나 캐나다로 이직을 한다고 합니다. 오스트리아 정부는 15년간 초대 연구소장으로 이름 없던 연구소를 세계적인 수준으로 도약시킨 점을 기려 사임을 한 예전 소장에게 최고수준의 상을 수여하였습니다. 이어서, 연구소가 속한 과학아카데미는 해당 연구소를 이끌어 줄 새 소장을 찾을 때까지 기존의 부소장을 소장대행으로 결정했고, 새 소장을 선임하는 것은 연구소의 책임이 아니라 자신들이 직접 책임을 지고 찾을 것이라고 합니다. 더불어 연구소장과 함께 연구를 해온 10명의 그룹리더와 연구소 내의 모든 행정직원, 연구원은 본인들이 가지고 있는 고용계약대로 이전과 다름없이 지속적으로 연구에 매진해 줄 것을 요청받았습니다. 연구소는 소장만이 공석일 뿐, 오늘도 공고히 이 나라의 생물학 기초연구기관으로서 역할을 다하고 있습니다.

더 나은 곳을 향해 떠나는 연구 소장에게 오스트리아 정부에서 훈장을 수여해 줌
떠나는 소장의 뒤를 이어 부소장 체제로 전환한다는 내용의 홈페이지의 안내문

제가 네덜란드, 영국, 오스트리아의 3개 연구소를 다니는 동안에 매 번 소장이 바뀌거나 사임을 하는 상황이 발생했었습니다. 한 기관의 수장이 사임을 하거나 부고가 발생하는 상황은 항상 어려운 상황입니다. 하지만, 어떤 연구기관에서도 단장 혹은 소장 개인의 거취나 운명에 따라 연구단/연구소의 운명과 피고용인 모두의 인생이 한 방에 모래성처럼 무너지는 경우는 보지 못했습니다. 단순히 행정적인 절차에 따라 연구단을 폐쇄해야 했고, 행정적인 절차에 따라 연구단을 해체해야 하며, 행정적인 절차에 따라 연구단이 보유한 모든 기기와 시설을 차압해야한다면, 그 “행정적인 절차”를 고안한 고귀한 분은 누구인지, 왜 우리는 “행정적인 절차”에 따라 국제적으로 바보가 되어야 하는지 궁금합니다.

이 글을 쓴 저뿐만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 할 것이며, IBS – 기초과학연구원에 대한 여론은 곧 발화점을 넘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IBS – 기초과학연구원은 21세기 대한민국이 시도하는 가장 강력한 기초과학혁명이며, 모든 젊은 과학도에게 이상적인 연구공간을 창출하는 기관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행정적인 절차”만큼 중요한 행정력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가까운 시일에 IBS로 부터 납득이 가능한, 기대가 되는 좋은 소식을 듣고 싶습니다. 멀리서 아직도 희망을 버리지 않은 젊은 과학자가 간절한 마음으로 글을 남깁니다.

이 글에 공감하시는 많은 분들이 계속해서 기고를 해주시길 소망합니다.

그렇게 한국의 기초과학을 지켜가길 소망합니다.

이미 여러분들이 글을 올려주시고 있습니다.

https://www.facebook.com/madscietistwordpress/posts/1151748164972600

https://www.facebook.com/shbyun77/posts/1993983150692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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