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 과학은 돈이 되지 않는다.

[부제 : 돈이 되면 기초 과학이 아닐지도 모른다]

 

사람의 목숨도 돈으로 환산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대한민국에서 ‘돈이 되지않는’ 기초과학을 한다는 것은 무리일 것이다. 국민의 피땀으로 모은 세금을 돈도 안되는 기초과학에 쓰는 것은 바보짓일 수도 있다. 전쟁과 전염병 없이 의식주가 해결된다면, 별다른 기초과학 활동 없이도 네팔처럼 전국민이 행복해하는 나라가 될 수도 있다. 그러니 우리가 꼭 기초과학을 해야 하는 이유는 없다. 특히, 돈이 목적이라면 나는 기초과학 투자는 더더욱 잘못된 선택이라는데 찬성하는 바이다. 그렇다면 왜 선진국들은 기초과학에 지속적인 투자를 하는 것일까?

기초과학이 ‘기초’ 과학인 것은 돈이 되지 않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사실 돈이 되지 않기 때문에 정부가 세금을 써서 지원을 해야하는 것이 맞다. 돈이 된다면 기업들이 너도나도 투자를 할 것이기 때문에, 정부가 추가적인 보조를 하지 않아도 돈되는 응용연구는 진행된다. 즉, 기초과학은 원래 돈이 안되는 ‘경제적으로 봤을 때’ 쓸데없는 허무한 활동인 것이다. 모든 것을 돈으로만 환산하면 그렇다는 이야기다. 기초과학을 업으로 사는 나에 대해서 오해는 없길 바란다.

 

문제는 기초과학을 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연구자들을 키워내야 하는 부분에 있는 것 같다. 대한민국이 가지는 대학원제도 하에서는 여전히 젊은 인재들이 등록금 + 용돈 정도에 해당하는 금액으로 석사 2년 그리고 박사 5-8년동안 젊음을 갈아넣어야 한다. 혹자는 본인이 하는 공부에 충분한 도움을 주고 있다고 이야기 한다. 다른 한 편에서는 대학원생이 실질적인 노동인력으로 대학원이라는 회색지대에서 노동력을 착취당하고 있다고 말한다. 어느쪽 의견이 맞다고 이야기 하기는 어렵다. 다만, 우리는 이를 ‘돈’으로만 볼 수 있을까? ‘돈’이 되지 않는 활동이라면, 개인이 원해서 하는 공부라면, 정부나 사회는 별다른 지원을 할 필요는 없는 것일까? 이 부분까지 따라왔다면 앞으로 전개되는 이야기에 공감할 수 도 있을 것이다.

 

우리 사회에는 다양한 ‘돈 안되는’ 활동들이 있다. 대단한 실력이 있다면 ‘돈’도 벌 수는 있겠지만, 내가 오늘부터 건프라 마스터가 되겠다고 하면, 누가 나에게 돈을 주지는 않는다. 딸아이가 음악적 재능이 있어서 피아노를 한다고 하면, 처음에는 아빠인 나 이외에는 아무도 지원을 해주지 않을 것이다. 벨베데레 궁전에 걸린 멋진 작품을 그린 대가들 중에는 당대에 ‘돈’ 좀 만져본 화가들도 있지만, 평생 빌어먹고 산 화가도 있다고 한다. 마찬가지로 우리 자식들 중에 누군가가 과학에 재능을 보이면, 처음에는 부모가 지원을 한다. 사회와는 무관한 개인의 선택이고, 취미생활과 유사한 ‘덕질’일 뿐이다.

 

(편집자 주 : 그래도 이 정도 수준의 건프라면 내가 아니라도 누군가 돈을 주었으면 싶다. 그림 아니라 실물 사진. 건담 애니 도색 작품)

 

기초과학은 정말 ‘덕질’인 것 같다. 본인이 가지는 호기심을 따라 그냥 알고 싶어서 혹은 남보다 먼저 무언가를 발견하고 싶어서 한다. 최초로 에베레스트를 등반하는 느낌과 상대성이론을 알아내는 순간은 매우 비슷한 느낌일 것이다. 많은 기초과학자는 이러한 최초의 순간과 그를 향한 호기심을 자양분삼아 연구에 매진한다. 사회를 변화시키고, 미래를 만들어 내기 위해서 기초과학을 한다고 이야기 한다면, 그 고귀한 정신을 높이 사지만, 주변에 존재하는 하드코어 덕후 과학자 동료들은 속으로 웃고 있을 것이다 – ‘너 연구비가 너무 타고 싶구나 ㅋㅋㅋ’. 자 그럼 우리는 왜 ‘덕질’을 좋아할까?

아인슈타인과 에드문드 힐러리/텐징. 분야는 달랐지만 이들이 최고가 된 목적과 정상에서 느낀 희열은 비슷했을 것이다.

인간은 ‘돈’외에 다양한 가치를 추구한다. 개인적으로 내가 좋아하는 가치는 ‘아름다움’이다. 모두가 인정하는 거장의 음악과 그림은 문외한인 내가 듣고 보기에도 너무나 아름답다. 마찬가지로 ‘기초과학’은 인류에게 자연과 우주가 가지는 다양한 아름다운 면모를 우리에게 알려주었다. 인류가 가지는 지식의 저변을 넓히면서 오늘도 하나둘씩 보석과 같은 새로운 사실들을 알아가는 활동은 예술의 거장이 이루어가는 습작활동만큼 다양하고 아름다운 지식들을 우리에게 가져다 준다. 즉, 기초과학은 ‘돈’을 위해서 하는 것이라기 보다는 ‘멋’을 위해서 한다고 생각하면 더 좋겠다. 선진국들이 더 나은 기초과학력을 과시하면서 재는 이유는 결국 ‘멋’이 있기 때문이라고 본다. 그들이 생각하는 ‘국격’은 그러한 ‘멋’에서 나오는 것 같다. 나는 이것이 선진국들이 기초과학후속세대를 지속적으로 키워내고 경쟁시키는 이유라고 생각한다. 어쩌면 유소년 축구단이 왜 필요하고, 왜 사회는 이를 지원할 필요가 있는 지와도 잘 연결된다고 느낀다. 사실 그깟 공차기가 ‘돈’이 되는 것은 멋진 ‘골’과 승리의 ‘기쁨’에서 만끽하는 아름다움과 멋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즉, 인간이 하는 다양한 덕질은 ‘돈’이 되지 않더라도 차체적으로 가지는 숭고한 ‘가치’가 있고, 국가와 사회는 그러한 덕질을 잘하는 수재들을 키워내는데 관심을 가진다는 사실이다.

 

한국에는 기초과학 ‘덕질’을 하는 많은 과학자들이 있다. 연구소에는 행정원도 부족하고, 코어피실리티도 없고, 인건비도 적게 주지만, 연구만큼은 수준급으로 해내는 과학계의 ‘김연아’들이 있다. 이들은 워낙 수재들이어서 환경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 마치, 전용링크도 없이, 정상급 코치도 없이, 최고수준 안무가도 없이 엄마가 따라다니면서 발굴해낸 피겨스케이트 여제 ‘김연아’처럼 말이다. 김연아 선수는 우리에게 큰 자랑스러움을 선사해주었다. 수천억을 투자한 일본 피겨계의 여성선수들을 김연아는 보란듯이 이겨보였다. 그녀에게 별다른 지원이 없을 때, 캐나다, 미국, 러시아 같은 나라에서 러브콜이 있지는 않았을까? 없었을 수도 있다. 다행히 김연아 선수는 한국인으로 남아주었고, 그녀는 우리에게 피겨스케이팅이 가지는 인류최고의 아름다움을 우리에게 각인시켜주었다. 너무나 기쁜 일이지만, 제대로된 인프라도 구축해주지 못한 우리에게 그럴 자격이 있는 지는 별개의 문제이다.

(출처)

다시 기초과학계의 ‘김연아’들을 생각해보자. 한국에서는 최고대학 최고엘리트도 고달픈 대학원 생활을 한다. 나만해도 항상 돈이 궁했다. 결혼대상자에서도 기피대상이다. 친척들 사이에서는 건프라 만드는 백수와 동급(?!) 취급을 받을 수도 있다. 개인적인 사정만이 아니다. 실험실에는 행정원이 부족하고, 학과사물실 정규직 관리자들은 굼뜨다. 하고싶은 고급실험은 많은데, 연구비도 부족하고, 장비도 없다. 장비가 있다하더라도 장비를 잘 다루는 기사가 없다. 기사가 있어도 고장이 나면 엔지니어가 없다. 졸업과 논문 발표는 오직 학생 몫이고, 밭에 뿌려진 외로운 묘목처럼 잡초들 사이에서 반드시 살아남아야 한다. 잡초와 장애물을 제거해주고, 가지고 있는 역량을 최대한 발휘하도록 도와주는 지원을 우리는 받지 못한다 – 받기는 하는데, 사실 내가 있는 유럽과 비교하면 많이 부끄럽다.

 

어떤 기초과학자 ‘김연아’는 유럽이나 미국에서 엘리트로 대접받기도 한다. 한국의 기초과학력도 높아져서 많은 인재들이 미국/유럽으로 진출하고 있다. 그들이 보여주는 과학의 ‘멋’에 맞추어 ‘몸값’이 정해지고, ‘대우’가 달라진다. 내가 결론적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주어진 인재를 놓지지 말자. 그들이 ‘덕질’에만 관심이 있더라도 ‘국격’을 높여줄 ‘영웅’일 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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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련한 줄기 세포 과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