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학 첨가물이 들어간 면발?

작년 말 TV 조선의 CSI 소비자 탐사대라는 프로그램에서는 면발 요리에 들어가는 화학첨가물 관련한 방송을 하였습니다. 면발의 쫄깃함을 위해 “화학첨가물”을 사용한다는 지적입니다.

전체 프로그램 중 핵심 부분만 편집하여 유튜브에 게시한 위의 동영상은 총 세가지 장면으로 나누어 집니다.

– 소위 “화학 첨가물이 들어간 반죽”과 “자연 숙성 반죽”이라고 이름 붙인 (이 작명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두 개의 밀가루 반죽으로 각각 면발을 뽑아 보는 장면

– 만들어진 면발의 색깔과 물에 불어나는 정도를 육안으로 관찰하는 장면

– 출연자들이 직접 각각의 면발로 만든 자장면을 먹어보면서 맛과 물성을 차이점을 느껴보는 장면

 

첫번째 실험인 “자연 수타면” 반죽과 “화학 첨가제가 들어간 수타면” 반죽을 놓고 면발을 뽑는 실험에서는, 전자에 비해 후자가 훨씬 더 면발이 쉽게 뽑아지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 실험에서 보여주는 “화학 첨가제”라 이름 붙은 이 물질은 마치 요리사가 자신의 실력이나 경험이 전혀 필요 없이 무언가를 매우 쉽게 생산하게 해 주는 “반칙의 도구”와 같은 모습으로 그려집니다.

두번째 실험에서는 이 물질이 들어간 면발의 색이 더욱 노랗고 물에도 잘 불지 않는 것을 강조하고, 자연 수타면의 면발은 좀 더 하얗고 물에 쉽게 불어난다는 점을 설명하며, “화학 첨가제”가 들어간 면은 배달에 좀 더 적합한, 즉, 장사를 하기 더 좋은 면발이라는 뉘앙스를 전달합니다.

직접 먹어보고 평가를 하는 마지막 장면에서는 화학 첨가제가 들어간 면발을 “밀가루 비린내”가 난다라던지 “면발과 양념이 따로 논다” 하는 식의 부정적인 방식으로 표현하는 반면, “자연 수타면”에는 “식감이 부드럽다”와 같은 긍정적인 방식으로 표현을 합니다.

저희가 지적하고자 하는 것은 “화학 첨가제”라는 단어를 놓고 진행되는 내용의 전개 방식입니다. 위 방송은 이미 “화학 첨가제 = 식당이 영업을 하기 위해 사용하는 물질 = 쓰면 안되는 나쁜 물질”이라는 등식을 미리 세워 두고 접근합니다.

이 무섭고도 나쁜 화학 첨가물의 이름은 “탄산 나트륨” 이라고 제작진은 자막으로 설명합니다. 하지만 이 무서운 이름을 가진 화학 첨가물이 가정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베이킹 소다라고 불리우는 물질이며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식품에 널리 쓰여 온 물질이라는 설명은 하지 않습니다. LD50 기준으로 볼때 오히려 소금(염화 나트륨)탄산 나트륨보다 약 1.5배 가량 더 위험한 물질입니다. 즉, 탄산 나트륨은 LD50 값만으로 놓고 보았을때 인체에 소금보다 더 안전한 물질입니다. 프로그램 제작자들은 이런 조사를 해 보고 저런 방송을 만들었을까요?

면발의 쫄깃함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들은 너무나도 많고, 그 화학적 메카니즘을 기사 하나로 모두 설명 드리기에는 부족하겠습니다만, 면발 혹은 반죽의 탄력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물질은 곡물에 섞여 있는 글루텐입니다. 글루텐은 글리아닌과 글루테닌이라는 두 가지 단백질이 혼합되어 있는 물질을 말하는데, 탄산 나트륨이나 염화 나트륨과 같은 염(salt)들은 글루텐 분자들이 좀 더 강하게 응집하도록 만들어 더 높은 탄력을 부여합니다.

탄산 나트륨은 면발이나 반죽의 점성을 조절하는데 매우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물질입니다. 그리고 탄산 나트륨이 아닌 인산 나트륨, 혹은 염화 나트륨, 즉, 소금을 넣어도 비슷한 효과가 납니다. (일본의 사누끼 우동이 탄력을 내는 방식입니다.) 다만, 소금은 맛에 큰 영향을 미치고, 발효가 필요한 반죽의 경우 효모의 성장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탄력 (혹은) 점성 조절만을 위해서는 잘 사용되지 않습니다.

이러한 성질을 가장 잘 활용하는 것은 바로 일본의 전통 라면입니다. 일본 라면 면발의 탄력을 위해서 알칼리성의 베이킹 소다는 필수적이기 때문에 서양에서는 일본 라면 면발을 가리켜 알칼리면 (akaline noodle)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심지어 일본의 한 블로거가 일반 스파게티 면을 삶을때 탄산 나트륨을 넣어 주고 이것으로 라면을 끓이는 포스팅도 있습니다.

한 recipe 사이트에서 언급한 일본 라면의 비밀 – 알칼리염 (alkaline salts)

 

결국 이 프로그램은 “화학 첨가물”이라는 이름하에 엄연히 식품 첨가물로 사용되어도 되는 물질에 대한 필요 이상의 공포와 혐오를 유발하고, 정상적으로 식품을 만들어 파는 선량한 식품업계 종사자들에 대한 불필요한 오해를 불러 일으키는 방향으로 시청자들을 끌어 가고 있습니다. 자연계에 존재하는 수 많은 물질들을 독에서 약으로 줄세운 후, 이 중 천연물에서 추출한 것은 약으로, 인공적으로 합성한 것은 독으로 분류하여 인간의 기준에서 각각의 가치를 매기는 오류를 범하고 있습니다. 천연은 몸에 좋고 화학은 몸에 좋지 않다라는 단순한 이분법적인 사고의 단면입니다.

이러한 사고가 좀 더 극단적으로 나가면, 특정 생물의 특정 부위를 먹음으로서 스태미너가 좋아지거나 관절염이 낫는다는 야만적이고 주술적인 섭식 행위의 배경이 됩니다. 현대 과학이 가야 할 길이 아직 멀기는 하지만 인류가 지금까지 이룩해 놓은 과학만으로도 이 정도의 원시성을 벗어나기에는 충분합니다.

식품 의약품 안전청에서는 2018년 1월 1일을 기해 기존 생산 방법에 따라 분류하였던 식품 첨가물들을 그 용도에 따라 분류하는 것으로 변경하였습니다. 기존의 천연물에서 합성했는가 (천연 첨가물) 아니면 화학적으로 합성하였는가 (화학적 합성품)로 나누는 이분법적 체계에서 좀 더 세분화 하여 보존료, 산화방지제, 산도 보존제 등과 같은 용도 중심의 좀 더 다양하고 정확한 분류 체계로 변경되었습니다. 이는 국제 식품 기구인 CODEX의 기준과 유럽, 미국, 호주, 캐나다와 같은 국제 식품 선진국의 기준에 따르기 위한 조치로서 국제 기준에 부합할 뿐만 아니라, 특정 식품 첨가물에 대한 비과학적 맹신이나 불신을 없애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 됩니다.

 

 

The following two tabs change content below.
the Science Life의 편집장 입니다.

Latest posts by Editor (see al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