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탕이 암을 유발한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는데….

지난 주말 인터넷 뉴스들은 설탕이 암의 원인이라는 내용의 기사들로 뜨겁게 달아 올랐습니다.

 

 

연세대학교의 연구진이 설탕과 암의 상관 관계에 대해서 밝혀냈다는 논문을 언급하며 나온 기사 제목들 입니다. 건강의 주적으로 지목받고 있는 설탕, 그리고 사망 원인 1위를 달리고 있는 암 이라는 두가지 핵심적인 키워드는 사람들의 주목을 끌기에 충분한 주제입니다. 그런데 과연 논문 내용도 그럴까 원문을 찾아 보았습니다.

 

 

결론부터 이야기 하자면, 언론이 논문을 과대 해석하였습니다. 이 잘못된 해석이 언론의 창의성(?)에서 나온 것인지, 아니면 연구진이 언론에 공식적으로 제공한 자료에 있는 것인지, 혹은 연구자들이 소속된 기관에서 배포한 보도 자료로부터 나온 내용인지는 확인할 길이 없었습니다만, 기사들이 사용한 제목은 연구진이 밝혀 낸 팩트에서 너무 멀리 나간 내용입니다.

이 연구 내용을 대략적으로나마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키워드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O-GlcNac : 읽기 힘든 이름을 가진 이 물질(기사에서는 오글루넥이라고 읽음)의 원래 이름은 O-Linked β-N-acetylglucosamine 입니다. 흔히 건강 보조제로 많이 알려져 있는 글루코사민의 한 종류입니다. (물론, 그 글루코사민이 건강 보조 효과가 있는지는 이 글에서는 다루지 않겠습니다.) -OH가 있는 아미노산(Serine, Threonine)에 달라 붙을 수 있어서 O-라는 글자가 붙어 있습니다.

p53 (혹은 TP53) :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논문을 배출 시킨 유명한 단백질 입니다. 세포 내의 단백질로서, 정상 세포에서는 불활성된 상태로 존재하나, 세포의 DNA에 문제가 생기면 이를 수정하는 메카니즘을 발동시키거나 (DNA repair) 혹은 세포가 스스로 사멸(apotosis)하는 시그날을 주어서 암으로 발전해 나가는 것을 막아 주는 역할을 합니다. 암 발생의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단백질로 알려져 있습니다.

FOXO3 : p53이 사멸 (apotosis) 시그날을 만들어 내는데에 영향을 주는 단백질로 알려져 있습니다.

연구진은 FOXO3 단백질 상에 O-GlnNac가 붙을 수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7개의 후보 위치를 선정한 후, 실험을 통해 이들 중 한 자리 (284번째 위치한 Serine)에 O-GlnNac가 붙을 경우 FOXO3에 영향을 주는 것을 확인하였습니다. 그리고 이 위치에 O-GlnNac가 달라 붙은 FOXO3를 과발현 (overexpress)한 후 이것이 p53에 미치는 영향을 확인하여 발표한 것이 이 논문입니다. 이미 밝혀진 수백가지 이상의 암 발생 경로에 한가지 신빙성 있는 가설이 더 추가 된 것입니다. 글루코사민 계열의 한 당이 단백질에 달라 붙어서 세포를 암으로 발전시킬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실험적으로 보여 준 내용입니다.

과학적인 발견은 여기까지가 끝입니다.

(참고로 이렇게 RNA로부터 생성(translate)이 된 단백질에 당이 달라 붙는 과정을 post-translational modification이라고 하는데, 이는 생체 내에서 매우 흔하게 일어나는 반응이고 이를 통해 우리의 대사 작용이 조절을 받습니다. 이런 post-translational modification에 의한 단백질의 특성을 연구하는 학문이 proteomics인데, 이 논문의 저자인 연세대 생화학과 백융기 교수는 이 분야에서의 국내 선구자들 중 한 분 입니다.)

하지만 신문 기사들은 여기에서 한걸음 더 나아간 해석을 합니다.

1. 이번 연구 결과를 통해 O-GlnNac는 암을 유발하는 것이 알려졌다.

2. O-GlnNac는 당이다.

3. 설탕을 많이 먹으면 O-GlnNac가 많아질 것이다.

4. 따라서 설탕은 암을 유발한다.

 

한겨레 – “설탕에 빠진 당신 암에 걸릴 수 있다”

중앙일보 – “멀쩡하던 위·간 세포, 이 음식 만나면 암으로 변한다”

연합뉴스 – “단것 많이 먹으면 암 생길 수 있다” 연세대 연구진 규명

논문에서는 특정 당을 지칭하지 않았고 가장 단순한 형태의 당인 포도당 정도 논문 초반에 언급되었습니다. 그런데 기사 제목의 설탕 (sucrose)은 갑자기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요? 게다가 췌장암 세포를 대상으로 진행한 실험인데 멀쩡하던 간세포와 위세포가 암으로 변한다는 내용은 어디서 나온 걸까요? 우리 몸에서 포도당 소모가 가장 많은 기관은 뇌인데 뇌세포는 괜찮나요?

물론 O-GlnNac가 생체 내에서 포도당이나 과당을 재료로 합성이 되고 설탕은 포도당과 과당이 결합되어 있는 상태이며 암세포에서 포도당 대사가 더 높아지는 것은 사실입니다.  (hyperglycemia) 하지만 우리가 섭취하는 설탕(혹은 쌀도 마찬가지입니다.)이 모두 O-GlnNac가 되는 것도 아니고, 만들어진 O-GlnNac가 모두 FOXO3의 284번째 Serine에 가서 달라 붙는 것도 아니고, 달라 붙었다고 해도 이게 모두 p53을 방해하는 것도 아닙니다. 분자 수준에서 밝혀 낸 한가지 메카니즘이 실제 우리의 식생활과 질병에까지 연결이 되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들이 많습니다. 우리 몸은 실험 환경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복잡한 화학 반응들이 얽혀 있기 때문입니다.

진공속에서 깃털과 쇠구슬이 동시에 바닥에 떨어진다는 기본 원리를 발견했다고 해서 일상 생활에서도 깃털이 바닥에 빨리 떨어진다고 생각하면 안됩니다. 암의 발생 원인은 매우 다양하고 어느 한가지 이유로 특정하기는 어렵습니다. 이런 확대 해석 기사들로 인해 또 다시 포도당, 과당을 비롯한 모든 당들이 발암 물질의 반열에 올라갔습니다. 과학적 발견이 대중에게 전파되는 과정이 얼마나 왜곡되었는지를 다시 한번 보여주는 사례 입니다. 잘 쓰여진 훌륭한 논문 하나가 졸지에 설탕을 발암물질로 규정하는 자료로 둔갑하였습니다. 독자가 어느 정도의 과학 지식을 갖추고 신문 기사를 걸러서 읽어야 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당에 관한 오해와 자세한 내용은 아래 기사를 참고하시면 좋습니다.

포도당은 단순당이라 몸에 나쁜가? -포도당의 모든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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