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도심의 과학기술전당 전경)
불과 1년 전만 하더라도 전쟁이 날 듯한 위기감이 고조되었던 한반도였습니다만, 지난 4월 27일의 남북 정상회담을 계기로 분단 이래 가장 따뜻한 분위기가 만들어진 요즈음입니다. 각 산업계에서는 이미 평화 협정 체결 이후 북한과의 교류 가능성에 대한 여러가지 전망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과학계는 어떨까요? 과학은 다른 분야와는 달리 협력하고자 하는 두 주체의 수준이 어느 정도 비슷해야 협업을 했을때의 시너지를 기대할 수 있습니다. 한쪽이 자원을, 다른 한쪽이 기술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협력 관계가 성사될 수 있는 분야가 아닙니다. 그렇다면 북한의 과학 수준은 어느 정도일까요?
2017년도 한림대 간호학과의 두 연구자도 비슷한 궁금증을 가졌던것 같습니다. 한 국가의 과학 수준을 단순하게 정량화해서 이야기 하기는 쉽지 않습니다만 매년 전세계에 발표되는 논문들을 조사함으로서 대략적인 그림은 그려볼 수 있습니다. 이들은 Web of Science Core Collection을 대상으로 1988년부터 2016년까지 북한에서 출판한 논문들을 조사하였습니다. “Bibliometric analysis of publications from North Korea indexed in the Web of Science Core Collection from 1988 to 2016” 라는 제목으로 발표된 이 논문을 통해 대략적으로 북한의 과학 수준을 엿볼 수 있습니다.
아래 나오는 모든 데이타와 이미지들은 해당 논문에서 발췌한 것 입니다.
연간 최대 55건의 논문 발표
2015년 한 해 동안 북한에서 발표한 논문은 총 55건입니다. 이는 같은 기간 남한이 Pubmed에만 무려 34,000여개의 논문이 발표된 것에 비하면 비교할 수 없으리만큼 적은 숫자 입니다. 물론 GDP 대비 연구 개발비용이 세계 최상위권인 남한과의 직접적인 비교는 어렵습니다.
다만 이 조사를 진행한 한림대의 연구자들은 조사 대상이 Web of Science Core Collection 데이타베이스만을 대상으로 했기 때문에 모든 논문을 커버하지는 못할 것이라는 점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또한 북한 내부적으로 발행되는 논문들이 있을텐데 그것들은 포함되지 않았다는 한계점도 있습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불과 55개의 논문만이 해당 DB에 존재한다는 것은 매우 적은 숫자임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한가지 주목할 것은 논문의 개수가 매년 증가한다는 사실 입니다. 북한의 “고난의 행군”이라고 알려진 1995-1998의 기간 동안은 사실상 전무하다시피 했던 논문의 개수가 2000년 이후 조금씩 늘어나기 시작하여 2014년 이후에는 부쩍 늘어난 수준을 보이고 있습니다. 과학 기술에 대한 투자의 중요성을 조금이나마 깨닫기 시작한 것인지, 과학에 투자할만한 여력이 생긴 것인지, 혹은 그 둘 다 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주요 공동 연구 파트너는 중국
현대의 과학은 이미 매우 고도화 되어 있어서 천재적인 능력을 가진 특정 개인의 능력만으로는 의미있는 과학적 발견흘 하기 어렵습니다. 따라서 국경을 넘나드는 공동 연구는 거의 필수적이라고 할 수 있는데, 폐쇄적인 환경의 북한은 역시나 중국과 가장 많은 공동 연구를 진행한 것으로 보입니다. 전체의 과반수가 중국과의 공동 연구를 통해서 발표된 논문이었으며 독일과 호주가 그 뒤를 이었습니다. 남한과 공동 연구를 진행한 논문은 3건이 있었다고 합니다. 중국이 가장 많은 것은 북한이 중국과 지리적으로 가깝다는 이유도 있겠습니다만, 그보다는 서방세계와 단절된 북한 과학계에서 그나마 세계 수준의 과학을 접할 수 있는 유일한 창구가 중국이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가장 많은 논문을 낸 대학은 김일성 종합 대학
북한의 대학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름은 “김일성 종합 대학”이 가장 많은 논문을 냈습니다. 전체의 절반 정도에 해당하는 161건이 김일성 종합대학에서 나왔습니다. 그 뒤를 김책 공업 대학과 국가과학원이 따르고 있습니다. 이 세 개 기관을 합칠 경우 전체의 3/4 정도를 차지하는 심각한 기관 편향을 보이고 있습니다.
공동 연구 없이 북한 단독만으로 진행된 논문의 개수에서 김일성 종합 대학은 더욱 독보적인 위치를 유지하는데, 전체의 약 70%에 해당하는 논문이 이 대학에서 나온 것으로 집계 되었습니다.
가장 많은 연구 분야는 물리학
다양한 연구 분야가 고르게 논문을 낸 것으로 보입니다. 가장 많은 논문을 낸 분야는 물리학이고 그 뒤를 수학이 따르고 있습니다. 물리학과 수학이라는 순수과학을 대표하는 두개의 분야가 가장 많은 논문을 낸 것은 의외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반면 남한에서 인기분야인 생명과학이나 생물학 관련한 논문이 매우 드문 것이 인상적입니다. 생화학과 식물학이 이름을 올렸는데 그리 많은 수를 차지하지는 않습니다.
조사를 진행한 연구자들은 임송진이라는 한 북한의 물리학자를 주목하였는데, 그는 국제 공동 연구 없이 북한의 과학자만으로 구성된 논문 46개 중 총 6개를 발표하였습니다. 그는 김일성 종합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수 2008년에서 2010년까지 독일로 옮겨 연구 활동을 했다고 합니다. 그와 개인적인 친분이 있는 것으로 보이는 아주대학교 물리학과 김기홍 교수에 따르면 임송진 박사는 “매우 뛰어난 물리학자였으며 남한의 최고 수준의 물리학자와 비교할만 하다”라고 평가하였다고 합니다.
대등한 수준의 과학 협업은 어려운 것이 현실
이 논문의 조사 내용만으로 보자면 북한의 과학 기술 수준은 남한과는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인 것으로 보입니다. 위에서도 말씀드렸지만 현대의 과학은 천재 한 명의 능력만으로는 위대한 발견을 하기 어려울 정도로 고도화 된 것이 사실이고, 그 뒤에는 막강한 자본력과 정보력, 그리고 국제 교류가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남북 교류가 당장 실현이 된다 하더라도 바로 과학적인 협력을 기대하기는 어렵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하지만 북한이 어느 정도 개방이 되고 체계적인 과학 교육이 현재의 학생들에게 제공된다면 머지 않은 미래에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북한 과학자들을 볼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실제로 북한 과학자들의 개인 능력은 뒤떨어지지 않을 가능성을 보여주는 사례가 2016년에 있었는데, 세계 대학생 프로그래밍 대회(ACM International Collegiate Programming competition)에서 북한의 그룹이 28위를 차지했다고 합니다. 이는 스탠포드 대학팀보다도 높은 성적이었다고 하네요.
국가가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어야 과학에 대한 투자도 가능합니다. 국가 단위에서 볼 때 개천에서 용 나는 시절은 이미 지난 지 오래입니다. 그런 면에서 볼 때 과학은 한 국가가 즐길 수 있는 가장 비싼 취미인 것 같습니다.
이 기사에서는 논문의 일부분만 발췌하였습니다만 원문을 살펴보시면 조금 더 재미있는 내용들이 많이 있습니다. 관심 있으신 분들은 한번 링크로 들어가셔서 원문을 보시기를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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