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서 과학자의 위상은?

(평양시 대동강변의 미래 과학자 거리와 인근 주요 건물들. 출처)

지난 기사를 통하여 북한의 현재 과학 기술 수준에 대해서 대략적으로 알아 보았습니다. 논문 발표 개수로 볼 때 적어도 남한과는 현재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인 것은 거의 확실해 보이나, 추후 제대로 된 과학 투자와 교육이 이루어 진다면 크게 성공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갖추고 있다고 보입니다. 특히 다른 분야에 비해 물리학과 수학과 같은 기초 과학 분야에서 논문들이 나오고 있다는 것은 긍정적인 신호라 할 수 있겠습니다.

기사를 읽으신 몇몇 독자들께서는 “그래도 북한의 로켓 공학 (엄밀히 말하면 발사체 기술)은 세계 수준이 아니겠냐”라는 견해를 보이셨습니다만, 이 마저도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사실 로켓 공학(혹은 Rocket engineering 또는 science)은 최근 엘론 머스크의 Space X와 같이 발사체의 재활용과 같은 신기술을 제외하면 이미 1960-70년대 기술의 정점에 도달한 상태이며, 발사체의 연구는 현재 항공 우주 공학 (Aerospace engineering)의 한 부분으로 편입되어 있습니다. 발사체의 개발은 이번 북한의 경우처럼 ICBM의 개발로 바로 이어지기 때문에 개발상의 여러가지 국제적 규제가 많아 보유하고 있는 발사체의 종류만으로 그 나라의 기술력을 평가하기에는 무리가 따릅니다. 또한 우리 나라를 비롯하여 전세계 약 30여개 국가들이 궤도 위성을 쏘아 올릴 수 있는 발사체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북한이 이들 중 최고 수준이라고 말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북한에서 과학자들의 위상은 어떨까요? 과학자라는 직업은 의사나 변호사처럼 어떤 인증서나 자격증 같은 것이 있지는 않기 때문에 과학자라는 단어는 다소 추상적이고 이로 분류될 수 있는 사람의 범위는 꽤 넓습니다. 하지만 과학자의 정의를 “과학이나 기술 관련한 연구를 전업으로 삼아 이를 통해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들”로 한정할때, 우리 나라 과학자들이 겪고 있는 큰 어려움 중 하나는 재정적인 부분입니다. 북한의 과학자들도 마찬가지의 어려움이 있을까요?

 

숙청의 사각지대 – 북한 과학 기술계

북핵위기가 고조되고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의 김정은 국무 위원장을 리틀 로켓맨이라 부르며 서로 자기가 가진 핵미사일 발사 버튼의 크기가 더 크다고 싸우고 있던 2017년 12월, 뉴욕 타임즈는 북한 관련한 재미있는 한 기사를 냅니다. 2011년 북한의 권력을 잡은 김정은 국무 위원장이 권력 구조 강화와 재편을 위해 대대적인 숙청과 좌천을 진행하였는데 이 과정에서 군 장성이나 중앙 정부 요인들의 상당수가 (약 300명 이상이라는 보고도 있습니다.) 사라졌으나(?), 과학계 인사는 단 한 명도 이 대상에 속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북극성 2호 발사 참관 장면에서는 4명의 과학자가 김정은 옆에 앉아 담소를 나누머 “맞담배”를 피우는 모습까지 보도 되었습니다. 이 들은 미사일과 핵탄두 개발의 총괄 책임 과학자들로서 현재까지 김정은을 지근거리에서 보필하고 있는 인물들 입니다.

북한의 과학 관련 뉴스를 해외에 제공하는 NK Tech의 김현규씨에 따르면 김정은은 시행착오 (trial and error)가 연구 과정의 중요한 한 부분이라는 것을 잘 이해하고 있으며, 아버지 김정일이 국방위원장이 영화와 예술을 프로파간다의 일부로 사용한데 반해 김정은은 과학과 기술을 그러한 용도로 사용하고 있다고 분석합니다. 뉴욕타임즈는 이를 “과학 숭배 (Science worship)”라 표현하였습니다. 과학이 사회적으로 어느 정도의 위상을 갖고 있는 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평양의 알짜배기 땅을 과학자들을 위해

평양 시내 한복판의 평양역과 김책 공업 대학 인근에 “미래 과학자 거리”라 이름 붙인 6차선 도로가 2013년 건설되었습니다. 서울로 비유하자면 강변북로 잠실 대교 구간 즈음에 테헤란로 급의 새로운 길을 내고 이를 과학자길이라고 이름 붙인 것과 같습니다. 그리고 이 길을 따라서 대동강의 조망권이 확보되는 자리에 레지던스 은하 타워, 트윈 타워, 초록 타워등의 고층 아파트를 건설하고 과학자들이 이 안에 입주하도록 배려하였다고 합니다. 소위 말하는 “고위층”만 살 수 있다는 평양 시내, 그것도 평양역 인근 대동강변의 알짜배기 아파트들을 과학자들에게 제공한 것 입니다.

평양의 미래 과학자 거리와 그 주변 타워들 (사진 : Wikipedia 한국판)

지난 기사의 커버 사진으로 사용된 평양 과학 기술의 전당 또한 이 건물들과 멀지 않은 곳에 세웠습니다.

뿐만 아니라 뉴욕타임즈에 따르면 북한은 구 소련의 과학자들을 유치하기 위해 월 $10,000의 소득을 내건 적이 있습니다. 당시 북한의 일반 근로자의 한 달 급여는 $3 정도였으며 연금 수령액은 (북한에도 연금이 있었다!) 65 cent 정도였다고 하니 북한이 얼마나 과학자들의 유치에 얼마나 혈안이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실제로 1992년 10월에 모스크바 국제 공항에서 이 프로그램을 따라 북한으로 가려던 로켓 과학자 60여명이 불잡힌 적이 있다고 합니다. 북한에서 모든 국가 조직에 우선하는 군대 마저도 식량 부족으로 고생하고 있던 시절, 과학자들에게는 상대적으로 나은 식량이 제공되었으며, 과학자들은 인터넷도 제한 없이 사용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다소 기형적인 과학 육성 방식 – 하지만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

하지만, 불과 반세기 전만 하더라도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는 중앙 정부가 어떤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집중적으로 투자하면 발전이 다소 빠르게 이루어지던 적도 있었습니다. 북한은 아마도 이러한 1970년대 즈음의 국가 주도 과학 발전 모델에 추가적으로 북한의 체제 유지를 위해 필요하다고 판단했던 핵무기의 조기 완성을 위한 과감한 지원과 투자 정책을 유지한 것 같습니다. 북한이 발표한 과학 논문 중 물리학이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하는 것도 이와 무관하다고 할 수 없겠습니다.

하지만 현대 과학은 사실상 국가간의 자본 싸움의 성격이 강합니다. 쉽게 말해 국가가 돈이 없으면 과학의 발전이 이루어지기 어렵습니다. 북한의 이러한 과학 육성 정책은 다소 기형적인 형태라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민들로부터 과학자들이 국가의 미래를 짊어지고 있는 사람들이라고 인정 받고, 정부로부터의 아낌 없는 지원과 사회로부터의 격려을 받고 있는 듯한 모습은 우리로서는 부러운 것이 사실입니다. 서울 시내 한복판에 과학자의 이름을 따거나 과학 관련한 이름을 가진 거리가 하나라도 있던가요.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강남 금싸라기 땅에 지은 최신형 아파트의 분양권을 과학자들에게만 준다? 우리로서는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물론 그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대학교 안의 작은 연구실이라는 공간을 불하받아 스스로의 힘으로 어렵사리 따낸 연구비를 학교와 나눠 갖고, 남은 돈으로 연구해야 하는 “연구 자영업자”와 같은 구조의 국내 대학 체제, 그리고 연구자들이 연구비를 따지 못할까 노심초사하며 연구보다 더 많은 시간을 연구 외적인 일에 소요해야 하는 환경에서 어느 연구자가 정말 순수한 과학적 동기에 따른 연구를 하고 좋은 결실을 낼 수 있을까 싶습니다. 참고로 북한에서의 교수직은 정년직도 아닌 종신직이라고 합니다. (관련 인터뷰) 오늘도 정년 보장을 받기 위해 불철주야 맘고생하고 있을 여러 교수님들을 생각하면 북한의 사례는 정말 부럽습니다.

믿기 어렵지만 한때 우리 나라도 어린이들의 장래 희망 1순위가 과학자였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지금 과학계에 종사하시는 분들 중 많은 수는 아마도 이런 꿈을 가지고 계셨던 분일겁니다. 연예인이 장래 희망 1위인 지금의 현실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 입니다. 반면 일본은 올해 초 시행한 초등학생들의 장래 희망 조사에서는 학자가 1위를 차지했다고 합니다. 2016년 일본인의 노벨상 수상에 따른 일시적인 현상이라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만 그래도 이런 사회적 분위기는 매우 부러운 것이 사실입니다.

사실 북한의 사례에서 우리가 특별히 배울 만한 것은 없습니다. 앞서 말씀드린대로 정상적인 발전 체계를 갖춘 국가의 현대 과학 육성 정책과는 상당히 괴리되어 있고, 국가의 핵무장이라는 목적을 위해 과학을 이용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사회적 분위기이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모습은 지금 현재의 우리 모습을 다시 한번 돌아보게 만듭니다.

남한의 GDP는 북한의 48배입니다. GDP 대비 연구 개발비는 4.2%입니다. 북한이 국내에서 1년간 생산하는 재화 총량의 2배를 우리는 연구 개발에만 투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회에서 과학자들을 바라보는 시선도 이 GDP 격차만큼 우월한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과학자가 어린이의 장래희망 순위에 들어가지도 않는 나라에서 노벨상은 왜 아직도 못받느냐와 같은 말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연구 개발에 많은 금액이 투자되는 것도 중요하지만, 과학에 대한 사회적인 시선과 일반인의 과학적 호기심 고취, 그리고 더 많은 어린이들이 과학자로서의 꿈을 갖게 하는 데에도 많은 노력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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