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면에만 전류가 흐른다?! 위상부도체

커버 이미지 : the journal Nature from July 20, 2017에서 발췌. Illustration by JVG

 

전류가 흐르는 물질은 늘 과학자들의 관심 대상이었습니다. 전기가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이 세상에서 보다 효율적이고 더 많은 에너지를 생산하는 물질을 찾는 것은 소재 관련 모든 연구의 궁극적인 목표입니다. 자연계에 흔히 존재하는 철, 구리와 같은 도체에서 물질 자체가 스위치 역할을 하는 반도체까지 우리는 전자의 운동을 제어할 수 있게 되었고 많은 것에 변화를 가져다 주었습니다.

이제는 자연계에 존재하는 물질 뿐만 아니라 어떻게든 합성해서라도 지금까지 사용해왔던 물질보다 훨씬 더 효율적인 전자 수송 매커니즘을 찾아내고 있습니다. 일정 온도 이하에서 저항이 0이 되는 초전도체나 높은 전기전도도와 열전도율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그래핀이 바로 그 예가 되겠군요. 특히나 그래핀은 제작 방법도 간단 (흑연에 스카치 테이프를 뗐다 붙였다 하면 얻어집니다.)하고 매우 단단한 물질이기 때문에 2000년대 재료 분야를 휩쓸었던 물질입니다. 현재도 연구가 매우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어 그래핀 자체의 연구 뿐만 아니라 그 활용에 대한 연구도 상당한 진전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림 1. 그래핀 모형. 탄소가 육각형 격자로 배열된 구조를 띠고 있다.
By AlexanderAlUS – Own work, CC BY-SA 3.0

2010년대에 이르러 새로운 물질군이 주목받고 있습니다. 내부(벌크 bulk)는 부도체이지만 표면(엣지 edge)에서는 전류가 흐르는 특이한 성질을 갖고 있는 물질, ‘위상부도체 (Topological insulator)’입니다.

이 물질의 시작은 그래핀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찰스 케인(C. L. Kane)과 유진 멜레(E. J. Mele)는 시간 반전 대칭성이 유지되는 계에서 홀 효과와 양자 홀 효과의 관계와 마찬가지로 스핀 홀 효과와 대응되는 양자화된 스핀 홀 효과를 만족시키는 물질계를 고안하게 됩니다. 이 때 생각한 모델이 그래핀 격자에 스핀-궤도 상호작용(Spin-orbit interaction)의 효과를 고려한 모델로서 처음으로 양자 스핀 홀 효과를 이론적으로 예견하게 됩니다.

이 물질계는 독특하게도 내부는 부도체이지만 표면은 금속상태를 나타낸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이 특이한 물질은 많은 연구자들의 주목을 받게 되었습니다.

내부는 부도체이지만 표면은 금속 상태인 물질이라니, 쉽사리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정확히 어떤 현상이 이 물질에 일어나는 걸까요.

  1. 사실 표면이 금속 상태이기 때문에 전체적으로는 이 표면에 기인한 전도성을 갖고 있습니다.
  2. 표면에서는 어떤 외부 요인을 받지 않는 평형상태에서도 항상 전자가 움직이고 있습니다.
  3. 표면 상태를 흐르는 전자는 불순물이 있어도 산란되지 않아 높은 수송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4. 전기장을 가하게 되면 그 전기장에 수직인 방향으로 스핀류(spin current)가 흐릅니다. (양자 스핀 홀 효과 Quantum spin Hall effect)

그림 2. (a)홀 효과 (b)양자 홀 효과 (c)비정상 홀 효과 (d)양자 비정상 홀 효과 (e)스핀 홀 효과 (f)양자 스핀 홀 효과의 비교. (b), (d), (f)의 경우 내부는 부도체임에 유의할 것. (즉 경계에만 전자가 움직임)
(From Anomalous Hall Effect to the Quantum Anomalous Hall Effect – Scientific Figure on ResearchGate. Available from source [accessed 13 Jul, 2018])

 

그림 3. 위상부도체의 밴드 구조. 초록색 선은 표면 상태로 전류가 흐른다는 것을 알 수 있다.(By A13ean – Own work, CC BY-SA 3.0)

 

그렇다면 왜 위상부도체라는 이름이 붙게 되었을까요. 표면에서 흐르는 전자는 업스핀(up spin ↑)과 다운스핀(down spin ↓)이 서로 반대 방향으로 운동하고 있는 나선 표면 상태(helical edge state)를 띠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전자의 스핀이라는 것은 앞서 언급한 스핀-궤도 상호작용에 의해 그 정보를 쉽게 잃어버리는 탓에 물질군을 정의하는 좋은 물리량은 아닙니다. 따라서 보통의 부도체와 이 새로운 부도체를 구분하기 위한 불변량을 찾게 되는데 이 불변량이 위상수학에서 그 유래가 왔기 때문에 (topological invariant) ‘위상부도체’라는 이름을 갖게 된 것입니다.

이제 이 불변량으로 위상부도체와 보통의 부도체를 구분해 보겠습니다. 보통의 부도체인 공기를 n=0, 어떤 위상부도체를 n=1이라고 하면 이 둘은 같은 부도체이지만 위상 불변량은 다릅니다. 이 두 부도체가 서로 접할 때 그 경계(표면)가 다리 역할을 하게 되는데 이 다리가 전류가 흐르는 현상으로 나타나게 된 것입니다.

앞서 이 현상이 ‘이론적으로’ 발견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이론적으로 재미있는 물질이라고 해도 실험으로 증명되지 않으면 단순한 말장난에 불과하지요. C. L. Kane과 E. J. Mele가 주창한 스핀-궤도 상호작용이 존재하는 그래핀 구조는 사실 실험으로 구현되기 어려웠습니다. 그래핀을 구성하는 탄소가 워낙 가벼워 스핀-궤도 상호작용을 무시할 수 있을 정도로 그 크기가 매우 작았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B. A. Bernevig, T. L. Hughes, S. C. Zhang이 CdTe/HgTe/CdTe 양자우물구조에서 양자 스핀 홀 효과가 발생할 수 있다고 예견, 실제로 실험적으로 증명되면서 위상부도체는 실제로 존재하는 물질임이 밝혀졌습니다.

위상부도체는 앞으로의 소재 분야에 있어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으로 많은 기대를 받고 있습니다. 전극, 소자, 그리고 양자컴퓨터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통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물론 태동한 지 아직 얼마 되지 않은 물질군으로서 얼마만큼의 위상부도체 물질이 있는지 파악이 아직은 잘 되어 있지 않고, 전도 특성과 같은 여러 성질을 실험적으로 밝히는 것이 생각보다 많이 더딘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참으로 매력적인 성질을 가진 물질군이라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며, 앞으로의 발전이 더욱더 기대되는 물질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읽으면 도움되는 것들

한정훈, “위상 절연체 : 요약과 전망”, 물리학과 첨단기술, 2011
M. Z. Hasan and C. L. Kane, “Colloquium: Topological insulators”, Reviews of Modern Physics, vol. 82, no. 4, pp. 3045-3067,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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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훈

일본에서 응집물질물리학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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