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브러햄 플렉스너, 의학을 표준화하다

미드 “The Knick”의 한 장면 (출처 imdb)

에이브러햄 플렉스너, 의학을 표준화하다

혁신이라는 말이 언젠가부터 일상에 녹아든 것 같습니다. 특히 정보기술 관련해선 혁신이라는 단어를 빼놓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 같아요. 정보기술이 혁신을 가져온다고 하지만, 혁신을 통해 기술 발전을 따라가야 한다는 말도 합니다. 비슷한 말로 개혁이 있지요. 예컨대, 2019년 경제단체장의 신년사를 보면 규제 개혁과 혁신을 강조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1]

각각 “묵은 관습이나 방법을 완전히 바꿈”과 “제도나 기구를 새롭게 뜯어고침”을 의미하는 단어인 혁신과 개혁은 변화의 진도나 방법, 정도에서 차이가 있다고 합니다. 개혁이 합법적인 경로를 통해 점진적으로 고치는 것을 의미한다면, 혁신은 혁명적인 방법을 통해 근본적으로 한꺼번에 확 바꾸는 것을 의미한다고 하네요.[2] 개혁은 주로 정치, 경제, 정부, 언론과 같은 단어와, 혁신은 주로 도시, 기술, 경영, 기업, 기관과 같은 단어와 많이 사용되고 있다는 점을 연결 지어 보면 개혁과 혁신을 구분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림. 2000년부터 2013년까지 동아일보, 조선일보, 중앙일보, 한겨레신문의 모든 기사에 등장한 어휘를 분석한 물결21에서 ‘개혁’과 ‘혁신’이라는 단어가 출현한 빈도를 살펴보았다. 위 자료는 언론 기사만 분석 대상으로 삼았다는 한계가 있지만, 추이를 살피는 데에는 유용하다. 개혁이 혁신보다 사용 빈도는 훨씬 높지만 2005년 이후로 그 차이가 점차 줄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출처: 물결21 코퍼스

서두부터 혁신과 개혁을 살핀 것은 이 두 단어가 적용되는 영역 중 한 분야를 생각해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바로 의학 교육입니다. 교육학이야 익숙하시겠지만, 의학 교육이라는 분야가 있다는 것은 생소할 것 같습니다. 교육학 앞에 굳이 의학을 붙여 구분하는 이유는, 졸업생의  진로가 다양하게 나뉘는 여타 전공과 달리 의학 계열 전공을 졸업한 학생은 전문직 사회로 바로 편입되는 특수성 때문입니다.

전문직에는 여러 특성이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사회와 맺고 있는 관계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전문 지식을 생산하고 활용할 권리를 부여받은 전문가에게 사회는 의무 또한 부여합니다. 의무 중에는 직종 내부를 관리할 책임도 포함됩니다. 전문 지식을 갖고 있는 전문직을 외부에서는 판단하기 어렵기 때문에, 과거 전문직이 분화되어 나오던 시점에 사회는 전문 직종에 자율 규제를 요구했습니다. 물론 사회가 바뀌고 점차 많은 정보가 공개되는 상황에서 이 모형이 여전히 유효한가에 대해 많은 고민이 필요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전문직은 여전히 자신을 규제할 책무를 요청받고 있으며 규제를 위해 활용되는 가장 대표적인 틀은 교육입니다.

이런 배경에서 출현한 의학 교육은 의학 계열 전공자를 길러내는 교과 과정을 개선하는 데 주력했습니다. 이런 움직임은 예전부터 있었고 외국의 경우에는 꽤 오랜 전통이 있습니다. 국내 또한 서구에서 의학이 전파되는 과정, 그리고 한의학이 일제강점기에 받은 철저한 억압을 지나 다시 제도로 편입되는 과정에서 의학을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는 중요한 화두였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학문 분야로 정립된 것은 1990년대 후반이었고, 이때 ‘의학 교육 개혁’이라는 표어가 대두했습니다. 예컨대 의학전문대학원 제도를 제시한 것은 1996년 2월  ‘대통령자문 교육개혁위원회’였고, 1998년 생긴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의학교육실은 교수들에게 ‘개혁안’을 제시했지요.[3] 2013년 OECD에서 발간한 보건의료 개혁에 관한 보고서는 어쩌면 당연히도 교육 개혁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4]

그러나 최근 들어 ‘의학 교육 혁신’이라는 표현을 자주 접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장협회(KAMC)는 ‘KAMC 의학교육혁신상’을 수여합니다.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의학교육학교실은 교실 20주년을 정리하면서 이를 『도전과 혁신―의학 교육학과 20년』이라는 소책자로 정리한 바 있습니다.[5] 2018년 강원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은 ‘의학 교육혁신센터’를 출범시켰네요.

개혁과 혁신의 차이는 앞에서 살폈으니, 기존에는 점진적인 변화를 중시하다 최근에는 급진적 변화를 강조하게 되었구나 하는 데서 그치면 될 일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저는 한 번 더 생각해보게 됩니다. 왜 굳이 혁신일까, 하고 말입니다. 단어의 사용 뒤에 놓인 생각을 차분히 들여다보면 어떨까요. 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신지영 교수가 저서 『언어의 줄다리기』에서 지적한 것처럼, “내 생각이 바뀌고 우리의 생각이 바뀌게 되면 지금까지 배웠던 언어 표현으로는 변화한 내 생각 혹은 우리의 생각을 담을 수 없음을 자각”할 수밖에 없습니다.[6] 그럼 의학 교육 개혁이 의학 교육 혁신으로 바뀐 것에는 어떤 생각의 차이가 있는 걸까요? 이를 살펴보기 위해서는 맨 처음 의학 교육 개혁이라는 말이 나왔던 시공간으로 돌아갈 필요가 있습니다. 20세기 초, 북미 대륙으로 말입니다.

 

20세기 초, 의과대학을 새롭게 바꾸다

20세기 초 미국과 캐나다에는 의과대학이 155개 있었어요. 별로 많지 않은 수라고 생각하실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2013년 기준 의사 학위(MD)를 수여하는 대학은 미국에 141개, 캐나다에 17개입니다.[7] 100년 전에 벌써 현재와 비슷할 정도로 많은 의과대학이 있었던 이유는 당시 의과대학 설립을 규제하지 않았던 탓도 있지만, 무엇보다 설립자의 필요와 학습자의 수요가 맞아떨어졌기 때문입니다. 미국이 아직 유럽의 변방이던 19세기, 신대륙 의학은 크게 두 가지 방식으로 교육되었어요. 우선 지역에서 명망을 떨치고 있던 의사 밑에서 이뤄지던 도제 교육이 점차 사설 학원으로 발전했습니다. 한편 유럽에서 신학문을 배워 온 유학파들은 의과대학을 설립해 자신이 배운 지식과 경험을 전파하는 동시에 진료의 발판으로 삼았습니다. 당시 의사가 수입을 얻던 방식이 대학이나 공공 병원에서 저소득층을 상대로 진료하여 지역에서 신뢰를 쌓은 뒤 고소득층을 대상으로 한 개인 진료실을 차리는 것이었던 탓도 있고, 교육기관 운영 자체도 수입원이었으니까요.

19세기 말이 되어 의과대학과 사설 교육 기관이 많아지자 지역 의사회는 이를 불편하게 생각합니다. 의사 수가 증가하면 문제가 될 거라 여겼던 거지요. 이에 의료권을 독점하고 의사 수를 조절하기 위해 미국의사협회를 설립합니다.[8] 미국의사협회는 의과대학을 규제할 효과적인 방법으로 대학 평가를 선택하고, 1904년 산하에 의학교육위원회를 발족시킵니다. 의학교육위원회는 의과대학을 평가했지만 이를 대외적으로 발표하진 못했다고 해요. 의사협회가 이익단체의 형태를 하고 있었기에 신뢰를 얻지 못할 거라고 판단했던 모양입니다. 이들은 객관적인 입증 자료를 마련하기 위해 1908년 카네기 교육진흥재단에 북미 지역 의과대학을 대상으로  실태조사를 의뢰합니다. 그리고 그 역할을 맡았던 사람이 미국의 교육개혁가 에이브러햄 플렉스너(Abraham Flexner, 1866~1959)입니다. 그전에 이미 미국 대학에 대한 평가를 진행한 적이 있는 데다 의학계 외부인이라 공정한 판단을 내릴 수 있을 거라는 점에서 적임자로 여겼던 것 같습니다.

Abraham Flexner, (1866. 11. 13, – 1959. 9. 21)

그는 미국과 캐나다에 위치한 의과대학을 직접 돌아다니면서 보고서를 작성합니다. 그 결과물로 1910년 『플렉스너 보고서: 미국과 캐나다의 의학 교육』을 발표하게 되지요.[9] 플렉스너는 1893년에 설립된 존스 홉킨스 의과대학을 이상적인 교육기관으로 두고 이에 미치지 못한 의과대학을 비판합니다. 그는 시설이나 입학 기준, 교수진 숫자를 중점적으로 파악했습니다. 그에 반해 교육 방법이나 교수진 수준에는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여기에서 의과대학의 입학기준과 표준 교육 모형이 탄생하게 되었어요. 일단 의과대학에 입학하려면 4년제 대학을 졸업해 학사학위를 취득해야 합니다. 그 이유는 의과대학에 입학하여 높은 수준의 과학 과목을 따라갈 수 있어야 했기 때문이죠. 플렉스너는 의과대학 교육은 4년 동안 이루어지는데, 초반 2년은 기초의학을, 후반 2년은 임상의학을 가르쳐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기초의학이란 해부학, 생리학, 병리학, 생화학, 약리학 등 의학을 지탱하는 과학 과목을 가리킵니다. 이를 충실하게 이행한 학생만이 임상의학, 즉 환자를 직접 만나 병력을 듣고 진단하며, 진단에 기초하여 치료를 수행하는 개별 분과 학문을 배울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림. 1900년 경 하버드대학교 의과대학의 화학 실험실을 촬영한 이 사진에서 당시 의학 교육이 이뤄지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우리도 물론 마찬가지지만, 의학교육은 오랫동안 대규모 강의 후 학생 실습으로 진행되었다. 교실 뒤에서 담배를 물고서 약품을 따르고 있는 두 학생의 모습이 인상적으로 다가오는 것은 필자의 눈이 실험실 안전 수칙에 익숙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출처: Carroll KL의 논문[10]
플렉스너는 과학과 의학이 분리될 수 없는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임상의학은 기초의학에 깊이 뿌리내린 상태에서 이뤄져야 하며, 그 둘 간에 우위를 따질 수 없다고 생각했지요. 이런 입장은 그가 19세기를 경험의 시대라고 정의하는 데서 잘 드러납니다. 다른 학문도 그렇지만 의학은 특히 경험주의자(empiricist)가 득세하는 분야라고 본 것이죠. 이것은 플렉스너 자신이 의사가 아니라는 점, 그리고 당시 미국 의학이 처한 상황에서 나온 결론이라고 봐야 할 것 같아요. 저명한 의학사가(medical historian)인 윌리엄 바이넘(William F. Bynum, 1943~)이 쓴 『서양의학사』는 의학을 다섯 가지 유형으로 구분합니다.[11] 머리맡 의학, 도서관 의학, 병원 의학, 지역사회 의학, 실험실 의학이 그것인데요. 18세기까지 의학은 앞의 두 가지, 머리맡 의학과 도서관 의학이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습니다. 독일에서 막 지역사회 의학이, 프랑스에서 병원 의학이, 프랑스와 독일, 영국에서 실험실 의학이 막 싹트던 시점인 19세기에 아직 이들 분야는 실제 진료와 거리가 있었던 게 사실이라 실생활과는 괴리가 있는 신학문 취급을 받고 있었죠. 결국 당시 진료를 담당하고 있던 것은 전통과 경험이었다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플렉스너는 인과 관계를 알지 못한 채 이러저러하게 하니 병이 나았다는 식으로 접근하는 것이 과거의 의학이었다면, 새로운 의학은 자연과학이 추구한 엄밀함에 기초하여 원인과 결과를 연구를 통해 내놓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보기엔 당연한 말처럼 들릴지도 모르겠어요. 의학 또한 과학이라는 생각, 아니 ‘의과학(scientific medicine or biomedicine)’이라는 표현이 당연한 지금은요. 바로 이 생각에 의학 교육 개혁을 이끄는 핵심이 있었습니다. 과학적 방법론에 익숙해진 학생이 환자를 진단하고 치료하는 방법을 배우면 기존에 경험적으로 정립되어 온 의학은 다시 과학적 엄밀함으로 분석될 것이라는 생각, 이런 생각을 바탕으로 하는 의학 교육 개혁은 교육학적 엄밀함을 통해 교과 과정과 교수법(敎授法, teaching method)을 바꾸며 “기존의 제도를 뜯어고치는” 데 매진해 왔습니다. 평가는 객관적이어야 하며, 교육은 효율적이어야 합니다. 학생은 같은 시간에 더 많은 성취를 이뤄야 합니다. 그것은 교수가 더 잘 가르치는 데서, 정돈된 교과과정에서 나오는 산물입니다.

 

의사-과학자를 만드는 일에 관하여

플렉스너 보고서는 엄청난 파장을 불러왔습니다. 제멋대로 이뤄지던 의과대학 교과과정을 표준화했고, 수준 낮은 의과대학을 정리했습니다. 보고서 이후 의과대학은 절반으로 줄어들어, 1922년 81개, 1929년 76개로 감소했습니다. 여기에는 부작용도 있었죠. 여성과 유색인종을 받던 의과대학 또한 폐쇄된 것이 그중 하나입니다. 이후 오랫동안 여성은 의과대학에 입학하지 못했습니다. 저소득층이 의사가 되는 길은 한동안 요원해졌고요. 의과대학이 종합대학으로 들어가면서 소외계층이 의학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제도적 지원이 이뤄지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여러 형태의 대체의학(alternative medicine)은 1960년대 저항문화운동(counterculture movement)을 통해 다시 부상할 때까지 제도권 밖으로 완전히 밀려나게 됩니다.

플렉스너 보고서는 발간 이후부터 의학 교육의 방향타를 잡고 의학이 나아갈 길을 결정했습니다. 물론 그 보고서가 새로운 방향을 제시한 것은 아니에요. 단지 그 흐름을 가속했을 뿐, 이미 역사는 이쪽으로 흐르고 있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입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흐름이란 결국 어떤 의사를 만들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일 텐데요. 다른 여러 분야의 영향을 받고 또 여러 직역으로 나아가는 여타 전공과 의료라는 전문 직종이 차이가 나게 되는 지점이 여기에 있습니다. 전문직 구성원을 길러내는 것은 전문직 교육 기관이 유일하기 때문에 교육 기관에서 이뤄지는 교육이 전문직 자체를 규정하게 되죠. 주체화*라는 철학적 개념을 잘 살펴볼 수 있는 분야 중 하나로 의학 교육을 꼽을 수 있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예컨대 의사는 의학 교육 교과과정을 통해 자신을 어떠한 사람이라고 정의하게 됩니다.

* 主體化, subjectivation. 주체(主體, subject)가 자기를 구축하는 과정 또는 형성되는 과정이라는 의미를 지닌 개념입니다.

19세기까지 의사는 ‘의사-사서(doctor-librarian)’라고 부를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들에게 의학은 전해져 내려온 지식을 정리하고 기록하는 역사기록학(historiography)이었습니다. 당시 의사에게 의학은 히포크라테스로부터 유유히 흘러 내려오는 서구 의학의 전통이었으며, 선배 의사 밑에서 도제 교육으로 배운 경험의 소산이었습니다. 이에 반해 플렉스너 보고서는 의사를 ‘의사-과학자* (doctor-scientist)’로 규정합니다.기초의학 공부를 통해 자신을 과학자로 인식하게 된 의과 대학생이 이후 병원에서 환자를 마주하면서 배우는 임상의학은 이미 과학의 시선으로 걸러진 의학입니다.

* 이 표현은 최근 대두한 의사-연구자(physician-scientist 또는 MD-PhD) 개념과 약간 차이가 있습니다. 의사-연구자의 경우 의과대학을 졸업한 의사가 기초의학 연구실에 남아 기초의학 연구를 지속하는 것을 의미하며 그 수는 많지 않습니다. 반면, 여기에서 말한 의사-과학자란 의사 직종 전체가 자신을 과학자로 정의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여기에 잘못이 있다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이들은 플렉스너 보고서가 의학적 권위주의와 독점을 낳은 원천이라며 힐난하는데, 적절한 평가라고 보긴 어려워요. 우리가 지식을 생산하고 인식하는 방법으로 과학을 정립하고 또 이를 모두가 받아들이고 있는 상황에서 과학적인 시선을 통해 의학을 바라보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리고 이것이 과학인 이상, 의학은 표준화, 합리화의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단지 여기에서 파생되는 문제가 하나 있지요. 사물을 대상으로 하거나, 인간을 향한다 해도 인간 집단을 대상으로 한 모든 과학 분야와 달리, 의학은 개별적이고 고유한 인간이 시행의 주체이자 객체라는 점입니다.

아프면 병원에 가는 것에 더해, 우리는 명의를 찾습니다. 이 명의란 개념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잘 치료하는 사람이라는 것은 확실합니다. 그런데 왜 잘 치료하는 걸까요? 뭐가 다른 걸까요? 만약 의학이 표준화될 수 있는 것이라면, 명의란 개념은 말이 되지 않습니다. 표준화는 누가 치료해도 같은 결과가 나와야 함을 전제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알고 있습니다. 의사가 누구인지 환자가 누구인지에 따라 그 결과는 다를 수 있다는 것을요.

그렇다면 다시 물어볼 일입니다. 의사-과학자는 20세기 초 과학의 발전과 함께 나타난 필연이었습니다. 그러나 이것만을 진리로, 이상적인 모형으로 가정할 필요가 있을까요? 굳이 현재 겪고 있는 여러 난국, 특히 의과학이 인간에 봉사하는 것을 넘어 인간을 좌지우지하려는 상황까지 언급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의사-과학자를 표준 모형으로 정립하는 것이 의학 교육 개혁이었다면, 이제 다른 모형을 생각해 볼 때도 되지 않았을까 싶어요. 그것은 시대가 마주한 당면 과제이기도 할 것입니다. ‘의학 교육 혁신’이라는 표현이 겨냥하고 있는 것 또한 이 지점이 아닐까요?

혁신이라는 단어는 개혁이 강조하던 것과는 뭔가 다른 것을 요구하고 있어요. 표현 때문에 조심스럽지만, 아마 “4차 산업 시대를 선도하는 누군가를 길러내는 것”이 혁신에 걸려있는 판돈 중 하나인 것 같습니다. 알파고가 던진 충격은 자율주행 자동차로 이어지고 있지요. 의학에선 전문의보다 암을 더 잘 진단한다는 왓슨 온콜로지 시스템(Watson Oncology System)을 한때 너도나도 도입했습니다. 이제는 왓슨에 대해 회의적인 인식이 커지고 있긴 하지만, 영상의학이나 진단병리학 등 세부영역에서 빅데이터와 인공지능은 그 적용 가능성을 점차 넓히고 있습니다. 인공지능이 인간의 일을 넘보기 시작했다면, 이전에 하지 않았거나 혹은 여러 가지 이유로 하지 못했던 일을 찾아 떠나는 사람들을 키우는 것이 의학 교육의 새로운 목적이어야 할 것입니다. 그렇게 본다면 의학 교육이 제도의 개혁을 넘어 의학 자체에 혁신을 가져와야 한다는 요구는 당연할지도 모르겠어요.

한 예로 플렉스너 보고서 100주년을 맞아 발간된 새 플렉스너 보고서, 『의학 교육의 개혁과 미래』는 의학 교육에서 “학습 결과의 표준화와 학습 과정의 개별화”, “지식의 통합”, “탐구와 혁신의 습관”, “전문가적 정체성”을 새로운 네 가지 과제로 내세웠어요.[12] 이 과제는 이제 의사의 모습이 바뀔 때라는 것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플렉스너 보고서는 학습 과정을 표준화하려 했다면, 이제 시대는 그것을 바탕에 두고 의사 각자가 다양한 학습을 통해 자신이 주목하는 분야를 좇으라고 요청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획일적인 의사를 길러내는데 주력해온 의학 교육이 이제 눈을 돌리고 있다고 봐도 좋겠지요. 그렇다면 의사-사서에서 의사-과학자로 이어진 의사의 계보는 이제 다른 방향으로 뻗어 나갈 때가 된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떤 가능성이 있을까요? 앞으로 이어지는 글에서 몇몇 유형을 찾아보려 합니다. 우리가 이미 만났지만, 작은 목소리로만 남아있는 별종 의사의 흔적들을 통해서요.

 

참고문헌

[1] 김지나. 경제단체장 신년사 키워드는 ‘규제개혁·혁신’. 뉴스핌. 2018년 12월 27일.

[2] 최성우. [우리말바루기] 개혁 / 혁신. 중앙일보. 2008년 6월 12일. 

[3] 서울대학교 교수학습개발센터. 학내 기관 탐방: 의학 교육실. 2005.

[4] OECD, 『Health Reform Meeting the Challenge of Ageing and Multiple Morbidities』. OECD Publishing, 2013.

[5]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의학 교육학과, 「도전과 혁신―의학 교육학과 20년」, 2016.

[6] 신지영, 『언어의 줄다리기: 언어 속 숨은 이데올로기 톺아보기』, 21세기북스, 2018.

[7] AAMC, Medical Schools. 2013.

[8] 황상익. 20세기초 미국 의학 교육의 개혁과 <플렉스너 보고서>. 의사학. 1994;3(1):1-20.

[9] 에이브러햄 플렉스너, 김선 옮김, 『플렉스너 보고서: 미국과 캐나다의 의학 교육』, 한길사, 2005.

[10] Carroll KL. Creating the Modern Physician: The Architecture of American Medical Schools in the Era of Medical Education Reform. JSAH. 2016;75(1):48-73.

[11] 윌리엄 바이넘, 박승만 옮김, 『서양의학사』, 교유서가, 2017.

[12] 몰리 쿡, 데이비드 어비, 브리지트 오브라이언 공저, 신익균 등 옮김, 『의학 교육의 개혁과 미래』, 학지사,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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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깎는 의사

의료윤리와 의료인문학을 전공한 소아치과 의사로, 의료와 사회, 이야기가 교차하는 지점을 연구하고 가르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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