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샬럿 퍼킨스 길먼의 『누런 벽지』를 원작으로 한 영화 <The Yellow Wallpaper> (2016) 에서. 출처: IMDb
19세기 미국의 여성 작가 샬럿 퍼킨스 길먼(Charlotte Perkins Gilman, 1860~1935)은 1892년 『누런 벽지』라는 소설을 발표합니다. 이 작품은 *신경쇠약(neurasthenia)에 걸린 주인공 여성이 의사인 남편과 함께 3개월 동안 낡은 별장에 묵으면서 겪게 되는 심경의 변화를 1인칭 시점에서 기록한 것인데요. 화자는 벽지에 그려진 무늬에서 당시 여성에게 가해진 사회적 억압을 봅니다. 길먼이 자신의 결혼과 출산 과정에서 겪은 정신적 어려움을 녹여낸 이 자전적 소설은 예상치 못했던 성공을 거두며 그가 작가로서의 삶을 살아가도록 하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고 합니다. 흥미로운 이야기는 1970년대 비평가들이 이 작품을 당대 남성적 의료 권력의 여성 억압 방식을 드러내고 동시에 그에 대한 여성의 저항을 그려냈다고 읽으면서 시작됩니다.
*신경쇠약 : 19세기에 사용된 정신의학 용어로, 환자가 정신적인 사유로 무력감과 우울증을 호소하는 증상을 말한다. 당시 여러 진단명이 그렇듯, 신경쇠약 역시 현대 정신의학이 여러 가지로 분류하고 있는 질병 다수를 통칭해서 부르는 용어로, 당시 많은 환자들에게 이 진단명이 부여되면서 신경쇠약이라는 진단명은 단순한 질병 분류를 넘어 사회문화적 의미까지 강하게 지니게 되었다. 진단의 기준이 체액의 불균형(히포크라테스가 주장하고 갈레노스가 완성한)에서 병리생리학적 이상으로 옮겨가기 시작하는, 새로운 진단 기준이 등장하던 당시 시점에선 당연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길먼이 우울증 치료를 받고자 찾아갔던 사람은 당대의 저명한 의사이자 작가인 사일러스 위어 미첼(Silas Weir Mitchell, 1829~1914)였습니다. 미국 필라델피아의 부유한 가문 출신인 미첼은 프랑스 파리에서 당시의 최신 의과학이던 생리학을 배웠고, 또 의학적 발견이 실험실에서도 가능하다는 것을 익혔던 유학파였지요. 그는 미국으로 돌아와 뱀독에 관한 연구를 하다가 남북전쟁 중에 군의관으로 복무하면서 신경정신 분야에 관심을 갖게 됩니다. 뇌과학자 라마찬드란(G. N. Ramachandran, 1922~2001)과 신경과 의사이자 작가인 올리버 색스(Oliver Wolf Sacks, 1933~2015)의 책을 통해 유명해진 환상통(phantom pain), 즉 사지가 절단되어 통증을 느낄 부위가 없는데도 손과 발의 통증을 호소하는 증상에 그 이름을 붙여준 사람이 바로 미첼이었어요. 다른 의사들과 달리 전쟁 중에 돌봐야 했던 환자 여럿이 호소했던 증상을 그저 헛소리로 치부하지 않았던 미첼의 업적이었죠.
그림. 환상통이란 절단되어 존재하지 않는 말단 부위에 통증을 느끼는 현상이다. 이 현상은 절단된 신경 말단 부위에 염증이 생겨 통증 신호를 뇌로 전달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해 왔으나, 염증이 생긴 것으로 보이는 신경 말단 부위를 제거해도 통증 치료에는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 라마찬드란은 환자가 절단되지 않은 반대편 사지를 거울에 비춰 절단된 부위가 여전히 있고 이를 움직일 수 있는 것처럼 느낀다면 환상통이 해소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 ‘거울 치료’가 모든 사람에게 통용되는 것은 아니지만, 통증이 줄었다고 느낀 사람이 있었다. 현재는 뇌의 각 부위가 연결되어 서로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보여주는 현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출처: BBC
미첼은 전쟁이 끝난 후 신경정신과적 치료에 집중합니다. 그에게 치료를 받고자 했던 환자 중 다수가 길먼과 비슷한 증상을 보였습니다. 여성이었고, 우울증을 동반한 무력감을 보였으며, 결혼과 출산 이후에 증상이 나타나곤 했지요. 상당수는 고등교육을 받고 일이나 사회 참여를 고민하고 있었어요. 이들에게 미첼이 권한 치료법은 휴식 치료(rest cure)였습니다. 6~8주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고 누워 고지방 음식과 우유를 먹는 것이 치료법이었지요. 길먼에게도 이 치료법이 제시되었고, 정신과적 어려움으로 미첼을 찾았던 버지니아 울프(Virginia Woolf, 1882~1941)에게 처방된 치료법 또한 이 휴식 치료였어요. 길먼과 울프 두 작가는 이 치료법을 끔찍하게 여겼다고 합니다. 꼼짝도 못 하게 하다니, 그야말로 치료를 빙자한 억압이 아닌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다수의 비평가는 이런 생각에서 미첼의 휴식 치료를 가부장제의 산물인 여성에 대한 의학적 *훈육(訓育)이라고 여겼습니다. 당대의 여성상(女性像)을 의학이라는 제도를 통해 강제하는 방식의 하나라는 것이죠. 물론 어떻게 보면 감금이라고 할 수도 있는 휴식 치료였지만 현재의 관점을 반영하면 좋게 봐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미첼이 21세기에 활동하다 시간 여행을 통해 과거로 돌아간 의사가 아닌 이상, 당시의 사회문화적 관점에서 벗어나 사고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지요. 오히려 그런 견해를 보였던 사람들, 예컨대 1869년 저서 『여성의 종속』을 통해 여성 평등을 주장한 영국의 철학자이자 정치가인 존 스튜어트 밀(John Stuart Mill, 1806~1873)과 같은 사람은 매우 특별한 경우이니까요.
*훈육이란 신체적 성장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품성, 도덕 등을 가르쳐 기른다는 의미를 지닌 훈육에 대해 미셸 푸코(Michel Foucault, 1926~1984)는 사람의 신체를 통제하여 사회가 요구하는 것을 몸으로 받아들이게 만드는 방식이라는 의미로 받아들인다. 이를테면, 체육 시간에 했던 국민체조, 도열, 매스 게임을 떠올려 보자. 왜 앞뒤 간격을 맞추어 줄을 서고 특정한 자세를 유지해야 할까? 국민체조가 지닌 특정한 순서와 신체 각부(各部)에 대한 자극은 어떤 의미일까? 매스 게임은 집단의 움직임을 강조하며 ‘틀리지 않을 것’을 반복적으로 연습하는데, 공연이 아니라면 이를 아동에게 시키는 이유는 무엇일까? 푸코의 생각을 따른다면 이런 체육은 신체를 ‘길들이는’ 도구다. 상급자의 명령에 따라야 한다는 것을 몸으로 받아들이게 만드는 교육의 수단이라는 것이다.
그림. 작가이자 사회개혁가인 샬럿 퍼킨스 길먼은 여성이 사회에서 동등한 역할을 맡아야 한다고 역설했다. 특히 당시 진화론이 남성과 여성의 뇌는 다르게 진화하여 공격적인 남성과 순종적인 여성으로 이어졌다고 주장한 것에 반박하며 일갈했다. “여성적인 뇌는 없다. 뇌는 성 기관이 아니다. 왜 여성적 간은 말하지 않는가.” 여성의 경제적 독립과 자유를 주장한 길먼의 작품 『여성과 경제(Women and Economics)』, 『가정: 그 작동과 영향력(The Home: Its Work and Influence)』, 『여자만의 나라』 등은 이후 페미니즘 운동에 큰 영향을 미쳤다. 출처: 위키미디어 커먼즈
그렇다면 고민해봐야 할 지점은 미첼 개인의 잘못보다는 당대의 편견이 의학에 어떻게 영향을 미쳤는가일 것입니다. 이를 위해 먼저 길먼의 『누런 벽지』를 다시 읽어보려 해요. 여러 비평이 길먼의 작품을 “남성적 의학 담론에 대한 저항”으로 읽어 왔고 이런 독해는 아직도 충분히 가치 있습니다.[1] 미첼이 여성에게 권한 휴식 치료와 남성 환자에게 제시한 ‘서부 치료’(West cure)를 살펴 미첼이 어떤 입장을 취했는지, 그리고 그가 신경쇠약과 해당 환자에게 접근하던 방식은 무엇이었는지를 고민해보려 합니다. 제 생각에는 길먼의 작품과 미첼의 치료는 서로 영향을 주고받았어요. 그리고 그 상호 영향은 의사와 환자의 관계라는 틀에서 의학이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하나의 모형이 될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찾아내야 하는 것이 한쪽에서 재단하고 결정한 답이 아닌 서로의 견해를 절충하는 방안이라면, 둘의 이야기를 모두 들어보는 것은 중요할 겁니다.
『누런 벽지』, 벽지 뒤에 갇혀 있던 여성의 휴식과 탈출
주인공인 여성은 남편 존과 함께 여름 별장에 잠시 머물게 됩니다. 이 별장은 호젓한 곳에 지어진 작은 초가가 아니라 “식민지풍의 대저택”입니다.[2] 싸게 나온 집에 머문 것은 행운일 수도 있지만, 주인공은 집이 싸게 나온 것에는 어떤 이유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집이 싸고, 오랫동안 비어 있던 데에는 분명 무슨 이유가 있을 거라고 믿은 것이지요. 이런 주인공에겐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는 아프고, 남편은 의사입니다. 이게 왜 문제냐고요? 주인공이 보기에 “그가 의사라는 사실이 내가 빨리 회복하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인데, 그것은 “내가 아프다는 사실을 그가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남편이 그에게 내린 진단, 즉 일시적 신경쇠약을 주인공은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남편은 휴식 치료를 권하며 “강장제를 먹으면서 여행을 하고, 신선한 공기를 마시며 운동을” 할 것을 종용하지요. 얼핏 보기에 좋을 것 같지만, 주인공은 이것 때문에 숨이 막힙니다. 글을 쓰지 말라고 강요하거든요.
몇 년 동안 비어 있어 망가진 집을 보며 주인공은 그곳에 유령 같은 기이한 것이 있다고 믿습니다. 묵기로 한 방도 주인공 마음에 들지 않지만 어쩔 수 없습니다. 남편은 “매우 조심스럽고 다정다감”하지만, 주인공의 “얘기를 들어줄 리 없”는 사람이거든요. 출산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주인공은 아이를 돌보기 위해 육아실을 마련합니다. 남편은 아내를 배려한다고 침실에서 가까운 2층에 육아실을 마련하지만, 그 방은 문제가 있습니다. 창문이 다 “창살로 막혀” 있고 “벽마다 종 같은 것이 걸려 있”는 방을 보고 주인공은 “육아실, 다음에는 놀이방, 그 다음에는 체육관”을 떠올립니다. 아이가 성장하면서 지낼 공간을 그저 떠올린 것일 수도 있지만, 육아, 놀이, 체육은 모두 훈육의 방식이라는 점에서 주인공의 연상이 아찔한 부분도 있지요.
한편, 주인공이 머무는 방에는 벽지가 붙어 있는데 여기저기 벗겨지고 색도 바랬습니다. 벽지 “무늬는 눈이 어지러울 만큼 단조롭고 지루했으며, 계속 살펴보면 동요를 느낄 정도로 또렷”하며 “혐오감을 자아내는” 누런색에 주인공은 욕지기를 느낄 정도였습니다. 이후 육아실에 머무는 주인공은 벽지를 바꿔 달라고 요청하지만, 남편은 “벽지를 바꾼 다음에는 육중한 침대가 그 다음 차례가 될 것이고, 그 다음에는 창살 친 창문, 그 다음에는 계단 입구” 등으로 마음에 안 드는 대상이 옮겨 갈 것이고, “환상에 굴복하는 것만큼 신경증 환자에게 나쁜 것은 없다”라며 거절합니다. 그 말 때문일까요. 벽지를 바라보는 주인공은 벽지에 무언가 있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벽지에서 “부러진 목처럼 축 늘어지고 불룩한 두 개의 눈동자가 누군가를 거꾸로 노려보는 모습”을 본 주인공은 벽지가 “표정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하지요.
주인공은 계속 글을 쓰려 합니다. 하지만 남편이, 올케가 글쓰기를 방해합니다. 둘 다 “글쓰기가 [주인공을] 병들게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주인공은 “왜 이 글을 쓰는지 모르겠다”라고 고백하면서도 계속 써 내려갑니다. 주인공이 글을 쓰는 것과 함께 벽지는 점차 형태를 갖추기 시작합니다. “무늬 뒤에서 한 여자가 웅크리고 주변을 기어 다니는 것 같다.” 주인공이 불안해하던 유령의 출몰일까요. 주인공은 빛에 따라 벽지 무늬가 바뀐다며, 밤이 되어 “석양빛이든, 촛불, 램프, 아니면 가장 최악인 달빛이든 간에” 비추기 시작하면 무늬가 창살로 바뀐다고 생각해요. 무늬가 만드는 창살과 창살에 갇힌 여자. 이쯤 되면 주인공이 자신의 상황을 벽지에 투사(投射)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밤에 자신을 완전히 드러내는 주인공과 벽지 속 여자. 반면, “낮에 [벽지 속 여자]는 억제되어 잠잠해”지고, 주인공 또한 조용해집니다.
그림. 『누런 벽지』는 여러 번 영화화되었다. 위 사진은 스튜어트 핵쇼 감독이 2011년 발표한 단편 <The Yellow Wallpaper>의 한 장면으로, 영화화 작업이 작품의 중심 소재인 ‘벽지’를 어떻게 그려내는가를 비교하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예컨대 이 작품에서는 주인공이 벽지에서 새로운 무늬를 보면, 그 무늬가 컴퓨터 그래픽을 통해 벽지에 덧입혀진다. 출처: IMDb
벽지 속 여자는 밖으로 빠져나가려 합니다. 하지만 “무늬를 뚫고 기어 나올 수”가 없는데, 무늬가 “그들을 목 졸라 거꾸로 세워놓고 그들의 눈을 허옇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이때부터 주인공과 벽지 속 여자는 뒤섞이기 시작해요. 벽지 속 여자가 낮에 밖으로 나와 기어 다니는 걸 봤다고 말하는 주인공은 동시에 “나는 낮에 기어 다닐 때는 언제나 문을 잠근다”라고 말하거든요. 이제 주인공은 곧 벽지 속 여자입니다. 이 이중의 감금, 즉 휴식 치료라는 감금에 갇혀 글을 쓰지 못하는 주인공과 벽지에 갇혀 밖으로 나오지 못하는 벽지 속 여자는 해결책을 찾아냅니다. 벽지를 벗겨내는 겁니다.
저택을 떠나는 마지막 날, 주인공은 탈출을 결행합니다. 방문을 잠가 놓고 벽지를 벗겨내기 시작해요. 주인공은 벽지 속 여자가 도망가면 묶기 위해 밧줄을 준비해놓았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소설 마지막, 벽지를 벗겨내던 주인공은 어느새 벽지 속 여자로 바뀌지요. 그는 다른 여자들도 자신처럼 “벽지에서 나온 것인지 의아”해하고, 자신에 대해서도 “숨겨놓은 밧줄로 안전하게 꽁꽁 묶여 있”다고 말하거든요. 아내를 막으려던 남편은 주인공이 기어 다니는 모습을 보고 기절합니다. 이제 주인공, 아니 벽지 속 여자는 방에서, 벽지에서 탈출합니다.
중간에 남편이 ‘위어 미첼’에게 진료를 받으러 보내겠다고 말하는 것, 주인공이 받는 치료가 미첼의 휴식 치료라는 점에서 미루어 볼 때 길먼이 의도하고 있는 바는 명확합니다. 미첼이, 휴식 치료가 병을 낫게 하기는커녕 더 악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지요. 사실, 길먼은 “왜 나는 『누런 벽지』를 썼는가?”라는 글에서 미첼이 잘못하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서 글을 썼다고 말해요.[3] 처음에 말씀드렸지만, 실제로 길먼은 지금 기준으로 볼 때 산후 우울증으로 추측되는 증상을 보여 미첼을 찾아갔고, 휴식 치료를 받습니다. 하지만 길먼은 미첼의 치료법이 전혀 도움이 되지 않고 오히려 문제를 악화시킨다고 느꼈습니다. 몇 년이 지나 길먼이 『누런 벽지』를 써서 그를 비판했다는 이야기로 미첼과 길먼의 관계가 끝난 것이라면 뭔가 석연치 않은 부분이 있습니다. 미첼은 잘 듣지도 않는 치료법을, 심지어 환자에게 나쁜 영향을 미칠 수도 있는 치료법을 고집스레 밀어붙인 정신 나간 의사에 불과했던 걸까요? 또 그의 치료는 여성을 억압해 가부장적 구조에 순응시키는 또 하나의 방법, 즉 ‘의학적 여성 혐오’였을까요?
미첼, 당대의 노동에 비판적 치료를 제시하다
미첼이 활동하던 19세기는 그 이전과 마찬가지로 여전히 ‘광기’를 감금하던 시대였어요. 광인을 가둬 사회에서 배제하는 것으로 끝났다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당시 광인을 치료하던 방식은 소위 ‘도덕적 치료’였지요. 광기의 원인을 기독교의 칠죄종(七罪宗), 즉 교만, 질투, 분노, 나태, 탐욕, 식탐, 색욕에 돌리고 이를 교정하기 위해 환자에게 자신을 통제할 것을 다그치고, 뜨거운 물과 찬물을 반복적으로 끼얹어 말 그대로 정신을 ‘번쩍 들게’ 하며, 물속에 질식할 때까지 몸을 집어넣어 악령이 빠져나가게 하는 것이 바로 당시의 정신질환 치료법이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신경쇠약을 하나의 진단명으로 구분한 것은 미국 신경학자 조지 비어드(George Beard, 1839~1883)였어요. 피로, 불안, 두통, 발기부전, 신경통, 우울증 등의 증상군(症狀群)을 보이는 환자에게 내린 진단인 신경쇠약은 지금 기준으로 볼 때 의학적 진단명이라기보다는 *문화적 증후(신드롬)에 가깝습니다. 비어드는 신경쇠약이 나타나는 이유를 당시 빠르게 발전하던 산업 문명에서 찾았습니다. 산업화와 도시화의 강력한 물결에 떠밀려 경쟁에 내몰린 사람들이 신경을 너무나도 많이 쓰다 보니 신경이 허약해지고 그 결과 앞의 증상들이 나타났다고 생각했습니다.
*사회문화적 조건에 의해 특징적으로 나타나는 현상 중에서 질병과 유사한 양상을 보이는 것을 일컫는다.
그림. 미첼은 신경성 질환을 치료한 의사로도 유명하지만, 시인 겸 소설가이기도 했다. 미국 독립 전쟁 시절의 인물을 그린 역사소설 『휴 윈(Hugh Wynne)』이 유명하다. 출처: 위키미디어 커먼즈.
미첼이 여기에 동의한 것은 그의 참전 경험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어요. 남북 전쟁 중에 부상한 병사들은 신체적 외상과 함께 정신적 이상 증상을 보였고, 당시 생리학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미첼은 이를 신경 손상에 의한 것이라고 해석했던 것 같아요.[4] 그는 이런 환자를 해부하면 신경계에 발생한 변화를 관찰할 수 있다고 주장했지요. 이런 생각은 전후 부유한 계층의 여성 환자를 진료하는 데까지 이어집니다. 미첼은 여성들이 자신을 찾아와 신경쇠약을 호소하는 이유를 이들 여성이 신경을 너무 많이 써 신경에 손상이 발생했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렇다면 이 생각의 결말은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환자에게 이제 신경을 좀 그만 쓰라고 말해야 했던 것이죠.
이 논리가 여성을 대상으로만 작동했다면 그가 여성 혐오를 보였다고 말해도 그다지 이상하진 않을 거예요. 하지만 그는 남성에게도 같은 접근 방식을 취했습니다. 그가 남성에게 제시한 것은 서부 치료였어요. 서부 치료가 뭐냐고요? 말 그대로, 당시 미개척지가 많았던 서부로 가서 신체적 활동에 참여하고 대자연에 빠져 지내면 된다는 치료법이었습니다.[5] 물론 이 과정에서 환자를 지치게 한 정신적 업무는 손에서 놓고, ‘남성적’인 활동에 매진해야 했지요. 미첼 자신이 스스로 신경쇠약이라고 진단해 서부 치료를 시행했고, 미국의 ‘국민 시인’ 월트 휘트먼(Walt Whitman, 1819~1892)이나 대통령 시어도어 루스벨트(Theodore Roosevelt, 1858~1919)에게도 같은 처방을 내렸습니다.
물론 미첼의 처방은 아쉽습니다. 여성은 집에서 쉬어야 하고, 남성은 자연으로 나가 신체 활동을 즐겨야 한다는 것은 당시의 사회문화적 편견에 기초한 것일 테니까요. 이미 여성 평등권 주장이 나오기 시작한 시절임에도 기존의 질서를 옹호한 것은 잘못입니다. 미첼의 치료는 당시 남성성과 여성성의 이상(理想)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지요. 서부에서 말을 달리는 ‘남성적인 남성’과 집에서 조신하게 가정을 돌보는 ‘여성적인 여성’ 말입니다. 그러나 미첼이 주목했던 것은 성별의 이상적인 모습보다는 휴식이었다고 봐야 할 것 같아요. 점차 속력을 높여가던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람들이 지쳐가는 모습을 보고 그에 맞는 처방으로 휴식을 내려야겠다고 생각한 미첼을 무작정 비난하기는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죠.
더군다나 미첼의 휴식 치료를 통해 회복한 여성도 많이 있었습니다. 이를테면 문학비평가이자 역사학자인 아멜리아 기어 메이슨(Amelia Gere Mason, 1831~1923)이나 집안을 돌보며 글을 썼던 사라 버틀러 위스터(Sarah Butler Wister, 1835~1908)는 길먼과 사회경제적 지위도 비슷하고 하던 일에도 유사성이 있었지만, 미첼의 치료를 통해 신경쇠약에서 회복합니다.[6] 메이슨과 위스터는 길먼과 달리 미첼의 치료가 너무 권위적이라는 문제는 있어도 충분히 효과적이라고 생각했다고 해요. 메이슨은 미첼이 고통의 순간에 평안을 가져다줄 수 있는 의사의 능력을 지니고 있다고 믿었습니다. 위스터는 미첼의 치료를 가사와 글쓰기를 병행하다 지치는 순간 누리게 되는 휴식기로 받아들였지요. 둘은 미첼의 ‘휴식’을 자신의 방식으로 활용했습니다.
메이슨, 위스터의 사례와 달리 길먼과 미첼의 만남에는 안타까운 부분이 많이 있지요. 이를테면 둘은 처음 만났을 때부터 어딘가 삐걱거렸다고 해요. 글을 쓰는 데 익숙했던 길먼은 미첼을 만나기 전 자신의 증상과 병력을 상세히 적은 글을 가지고 갔다고 합니다. 하지만 미첼은 그 글에 신경을 쓰지 않았어요. 길먼은 시작부터 무시당하고 있다고 생각했다지요. 이렇게, 처음부터 맞지 않았던 두 사람의 치료적 관계가 결국 파국에 다다른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길먼과 미첼은 서로를 무시했지요.
병을 치료할 때 병인론(病因論) 즉, 병이 왜 생겼는지를 파악하고 그에 맞는 처방을 내리는 것은 중요합니다. 더불어 환자와 의료인이 맺는 관계도 중요하지요. 병원에서 여러 번 경험했으리라 믿어요. 어떤 이유에서든, 심지어 아주 사소한 이유에서라도 환자가 의료진을 신뢰할 때 치료 경과가 더 좋았던 경험 말입니다. 따라서, 치료 과정을 통해 환자와 의료인이 서로 원하는 바를 이루려면 매끄러운 관계는 필수적이라고들 합니다.
그림. 길먼의 『누런 벽지』 1899년판 표지. 길먼은 소설 출간 시에 첫 남편 찰스 월터 스텟슨(Charles Walter Stetson, 1858~1911)의 성을 쓰고 있었다. 소설이 사회를 바꿀 수 있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이 책을 추천해도 좋을 것이다. 출처: 위키미디어 커먼즈
그렇지만 길먼과 미첼의 관계가 그저 둘에게 아무 의미가 없었다거나, 그저 길먼 쪽에서 큰 손해를 보았을 뿐이라고 생각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아요. 길먼은 미첼에게 받은 치료 경험을 통해 『누런 벽지』를 써서 당시 사회가 여성을 옭아매는 방식을 성공적으로 그려낼 수 있었지요. 더구나 길먼은 나중에 들었다고 해요. 미첼이 이후에 『누런 벽지』를 읽었고 치료 방법을 수정했다는 사실을요. 길먼을 인용하면, “하지만 최고의 결과는 이거였어요. 몇 년 뒤, 나는 그 위대한 전문의가 자기 친구에게 『누런 벽지』를 읽은 뒤 신경쇠약 치료법을 바꿨다고 말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지요.”[3] 물론 『누런 벽지』 이후에도 미첼이 휴식 치료를 중단한 것은 아닙니다. 그는 휴식 치료를 보급하기 위해 계속 노력했지요. 기록이 없어 확실하지는 않지만, 미첼이 휴식 치료를 활용하는 방식을 약간 바꾸지 않았나 싶습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휴식’이지 성 역할에 대한 강제가 아니었기에, 길먼에 대한 응답이 휴식 치료의 중단일 필요는 없었던 것이죠.
처음부터 잘 맞는 톱니바퀴처럼 매끄럽게 굴러가는 관계를 맺는 것은 서로에게 행복한 일입니다. 환자와 의료인 사이에선 더욱 그렇지요. 안 그래도 바쁜 병원 환경에서 서로 좋은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양쪽에게 큰 축복입니다. 하지만 그렇지 못할 때도 있지요. 환자 쪽에서 혹은 의료인 쪽에서 다른 쪽을 힘겹게 느낄 수 있습니다. 우리 인간 관계가 다 그렇듯 말이죠. 하지만 이렇게 잘 맞지 않은 관계도 그 나름의 가치가 있습니다. 미첼의 치료는 길먼의 병을 낫게 하진 못했지만, 그에게 글의 소재를 제공했지요. 그리고 길먼의 글은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리기는 했지만, 미첼의 치료법을 바꾸게 했고요.
이런 사이를 그저 나쁜 환자 혹은 나쁜 의사의 전형으로 치부하거나 권위적인 의사의 강압에 대한 대표적인 예라고 생각하는 대신, 환자와 의료인이 관계를 맺을 수 있는 또 다른 방식으로 바라보는 것은 어떨까요. 처음에는 서로가 서로를 비판했을지도 모르지만, 나중엔 어떤 면에서 상대방을 받아들인 것이니까요. 길먼의 이야기는 한 여성이 미쳐가는 이야기이긴 하지만, 어찌 보면 광기를 통해 스스로 억압에서 빠져나온 여성을 그린 것이기도 합니다. 또 미첼의 휴식 치료는 길먼을 통해 변화했기에 20세기를 거쳐 널리 퍼져, 지금까지도 치료적 접근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여전히, 아니 점점 더 심하게 우리는 신경이 쓰이는 일들에 둘러싸여 지쳐가고 있지요. 휴가 또는 여행이 그 순간에 회복을 가져다줄 수 있음을 아는 것은 일상에서 중요합니다. 그 효과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있기에 우리는 휴가를 누릴 수 있지 싶어요. 물론 여행은 고대로부터 있어 왔고, 좋은 공기 또는 기운을 통해 치료받기 위해 사람들은 멀리 여행을 떠나곤 했습니다만, 우리가 지금 떠나는 휴가는 미첼의 손을 통해 ‘발명’된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리고 쓴 소리를 아까지 않았던 길먼 덕분에 휴가는 권리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요.
참고문헌 [1] 손정희, 한우리. 샬롯 퍼킨스 길먼: 사회를 치료하는 여성 작가/의사. 『영미연구』. 2015;32;99-121. [2] 샬럿 퍼킨스 길먼. 「누런 벽지」. 정진영 옮김. 『세계 호러 걸작선 2』. 책세상. 2004. [3] Gilman CP. ‘Why I wrote The Yellow Wallpaper?’, by Charlotte Perkins Gilman. Adv Psychiatr Treat. 2011;17(4):265. [4] Thrailkill JF. Doctoring “The Yellow Wallpaper”. ELH. 2002;69(2):525-566. [5] Stiles A. Go Rest, Young Man. APA. 2012;43(1):32. [6] Schuster DG. Personalizing Illness and Modernity: S. Weir Mitchell, Literary Women, and Neurasthenia, 1870-1914. Bull Hist Med. 2005;79(4):695-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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