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의 해악 – 이래도 술을 마실텐가?

연말이다. 술 마실 기회가 많아졌다. 오래전에 다른 매체에 요약해 쓴 글의 풀 버전(full version)을 다시 실어 경고한다. 술꾼들 좀 자제하고 각성하라고 필자 반복해 말과 글로 협박(?)하고 있지만 별반 효과가 있을 것 같지는 않다. 이때까지 그랬으니까.

사회적 해악

 

술은 마약 같은 향정신성 물질이다.

마약류관리법에 따른 향정신성의약품의 정의

마약? 술하고 무슨 관계인데? 깊은 관계가 있다. 시시한 마약보다 더 치명적이다. 마약이란 “미량으로 강력한 진통작용과 마취작용이 나타나고 계속하면 습관성이 생기는 향정신성물질“로 정의한다. 사용을 중단하면 격렬한 금단증세가 나타나고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게 되며, 결국은 육체적, 정신적으로 폐인이 되게 하는 물질이기도 하다. 마약의 종류에는 천연, 합성 등 수 십 종류가 넘는다.

이 정의를 보면 술과 마약이 다를 게 없다. 미량이라는 단어만 빼면. 술도 습관성이 강하며 중독환자는 마약중독 못지않게 증상이 심각하고 치료가 어렵다. 알코올 중독자의 치료는 마약중독자 못지않게 어렵다고 하지 않는가. 알코올성 지방간, 알코올성 간 경변, 알코올성 치매 등의 질병이 알코올에서 비롯된다. 알코올 중독자에게 환상과 환청이 오는 것은 뇌의 손상에 의한 결과다.

술이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을 보면 긍정적인(?) 측면(약간)과 부정적인 측면을 동시에 다가지고 있다. 사회적, 정신적 측면에서 보면 기분이 울적할 때에 술을 마시면 정신상태가 고양되고 스트레스가 해소된다. 걱정이 있거나 잠이 안 올 때, 소심하여 할 말을 못할 때, 술의 힘을 빌리기도 한다. 그것이 사랑 고백일수도 있고 시비일 수도 있다. 이 정도가 긍정적이지도 않지만 긍정적이라고 해두자.

술만 먹으면 행동이 돌변하여 싸움도 하고 범법행위를 하는 사람도 있다. 한국 사람은 술에 대해서 특별히 관대한 국민성을 갖고 있어 술김에 했다하면 용서되고 이해된다. 범죄의 형량까지도 참작된다. 조두순사건에서도 보여줬다. 이를 계기로 주취자(음주자)에 대한 형벌감경’(음주감경) 제도를 폐지해야한다는 주장이 촉발됐을 정도다.

음주에 의한 형벌 감경의 근거가 되는 형법 제 10조대법원 판례, 85도1235

술의 폐해를 없애기 위해 정부차원에서 “주폭과의 전쟁”이라는 행정명령도 과거에 있었다. 술만 먹으면 인성이 변하고 난폭해져 주위사람의 감당이 않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주위에 싸움을 걸어오고 길거리의 행패는 예사고 늦은 시간 유흥업소 근방은 난장판이 되는 것을 자주 목격한다. 평소에 점잖고 멀쩡하던 사람이 술만 들어가면 개(짐승)로 변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경찰의 단속을 우습게 알고 파출소에서 난동을 부리는 간 큰 인간도 있다. 한국만큼 공권력이 무력한 나라도 드물다. 교통사고의 원인 중 음주운전이 으뜸이다.

2012년도 주폭 단속 결과

술이 건강을 해치고 음주에 소요되는 사회비용이 만만찮다. 가정을 붕괴시키고 대인관계를 훼손한다. 물론 인간관계의 긍정적인 측면도 있어 관계개선이나 사업의 원활화에 기여하는 부분도 있긴 하다. 이는 기여하는 게 아니라 정확한 사리판단을 흐리게 하고 인성을 마비시킨 결과인지도 모르겠다.

필자는 술과 담배를 향정신성 물질로 분류하여 이용을 제한하는 것을 주장하고 싶다. 술과 담배의 판매를 금지하는 나라도 있지 않은가. 술이 향정신성이 강한데도 금지하지 않는 이유는 인간의 역사와 더불어 먹어왔기 때문인 것으로 짐작이 간다. 알코올이 만약 최근에 발견됐다면 그 치명적인 부작용 때문에 마약처럼 판매가 금지됐을 게 뻔하다. 또 술 판매가 국가재정의 중요한 세원이기도 해서 금지를 못하는 이유도 있다. 소비자 가격의 70-80%가 세금이라는 걸 감안하면 아무리 지껄여 봤자 쉽게 규제될 사안은 아닌 것 같다.

 

인체에 미치는 생리적 해악

사설이 길었다. 본격적으로 인체에 미치는 해악을 설명하지! 영양학적, 생리학적인 측면에서 보자. 알코올에는 종류가 수없이 많다. 다 독성을 나타내 식용이 불가능하다. 그 중에서 유독 독성이 그나마 약한 것이 술이라는 에타놀(C2H5OH)이다. 구조가 비슷하고 탄소수가 하나 적은 메타놀(CH3OH)은 소주잔 두 잔 정도만 마셔도 즉사한다. 한잔 마시면 눈이 멀고.

가장 간단한 세 가지 종류 알코올의 분자 구조. 우리는 두번째 것만 먹을 수 있음.

에탄올은 고 에너지화합물로 우리가 먹었을 때 좋은 영양성분이 될 수 있다. 포도당에 들어있는 열량의 80% 이상이 에탄올에 그냥 남아있어서다. 그러나 우리가 열량공급원으로 술을 먹지는 않기 때문에 이 경우는 긍정적인 측면이라고는 볼 수 없다. 에너지 공급원으로 밥 대신 술을 먹는 사람이 어디 있나? 미생물이 포도당 한 분자를 분해하여 일부의 열량만을 이용하고, 인간을 위해(?) 만들어 주는 것이 2분자의 에탄올이다. 우리가 포도당(전분)을 먹는 것 보다는 에너지 함량은 다소 줄어들지만 술을 많이 먹어도 물론 살이 찐다.

술은 생리학적인 측면에서 보면 백해무익한 물질이다. 술을 조금씩 먹는 것은 건강에 좋다고 이야기하나 천만의 말씀이다. 이는 위에서 언급한 정신적인 측면뿐이다. 물론 생리적으로는 혈관을 확장하여 혈액순환을 도우며 심장병의 예방효과는 조금 있는 걸로는 되어 있다. 심장병의 예방효과를 기대하고 술을 먹으면 이익보다 해가 더 많다는 것은 뻔한 이치다. 더구나 혈액순환이, 심장이 정상인 사람이 더 좋게 할 이유가 뭐 있으며 이를 위해 술을 먹는 사람이 있는가.

와인 마시면 오래 산다는 주장에 대한 연구 결과. 그리 큰 차이 없다고 함.

알코올은 진정작용이 있다. 전신 마취제처럼 대뇌피질을 마비시켜 억제성 조절작용(자제력)을 상실케 하고 신경세포의 정상적인 기능을 방해한다. 항 이뇨호르몬의 작용을 억제해 소변의 배출을 촉진, 탈수현상을 초래한다. 혈관을 확장, 체온의 손실을 동반하며 동사의 위험성을 높인다. 저혈당을 초래하고 혈액을 산성화하며 자방의 합성을 촉진한다. 여성의 에스트로겐 호르몬의 수치를 높여 유방암의 발생을 촉진한다는 등의 생리적 부작용이 있다.

에탄올은 대단히 살균력이 강하다. 주사 맞을 때 주사부위를 소독하는 것이 바로 70% 에탄올이다. 미생물을 죽이는 살균력이라면 사람세포는 온전하겠는가. 쥐에다 이 농도의 알코올을 강제로 먹이면 위에서 출혈이 일어나는 현상이 실험적으로 증명됐다. 빈속에 먹는 술이 맛있다는 술꾼도 있다. 독한 술일수록 목구멍을 짜릿하게 하기 때문에 그 맛으로 먹는다는 사람도 있다. 식도와 위에 상처를 내는데도 그런가. 얼마나 용감하고 무식한가. 술 많이 먹고 나면 다음 날 속이 쓰리다 한다. 알코올에 의해 위가 손상 됐는데도 다음날 속 푼다고 해장술을 또 한잔 걸친다. 숙취라면서 다음날 비실거린다. 간과 뇌가 손상을 받아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기 때문인데도 예사로 생각한다.

빈 속에 알콜 섭취는 소화기관 내벽 손상과 심할 경우 출혈까지 야기할 수 있다.

그런데 알코올이 국제암연구소가 지정한 1군 발암물질이고 대사 중간물질인 아세트알데히드가 2군 발암물질이라는 걸 술꾼들이 알게 된다면 조금은 자제하려나 모르겠다. 또 알코올이 대사되면서 일어나는 현상을 한번보자. 혈관 속에서 묽은 농도의 알코올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은 그렇게 크지 않다고 치자. 문제는 이놈이 대사되면서 나오는 중간물질이다. 이 중간물질 중의 하나가 아세트알데하이드(acetaldehyde)라는 것으로 반응성이 아주 강한 독성물질이다. 활성산소(ROS)도 동반생성 한다. 이 물질이 여기저기에 해를 입혀 머리도 아프게 하고 간과 뇌에도 탈을 낸다. 술로 나타나는 부작용은 모두 이물질에 의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아세트알하이드는 여러 단계의 효소작용에 의해 대사되어 최종적으로는 탄산가스와 물로 변한다. 아세트알데하이드가 다음 물질로 빨리 변하면 그 독성은 사라진다. 즉 빨리 변하게 하는 효소의 활동성(활성)이 좋으면 독성은 빨리 줄어든다는 뜻이다.

WHO 산하 국제 암연구소의 발암물질 분류. 대표적인 발암물질로 알려진 포름알데히드와 음료 안의 알콜이 모두 1군 발암 물질로 분류 되어 있다. 알콜의 2차 대사물인 아세트알데히드는 2B군.

술에 강한 체질을 가진 사람은 선천적으로 이 효소의 양이 많다고 알려져 있다. 그래서 이런 체질은 유전성이라 하고 술꾼의 자식은 술꾼이 된다하지 않던가. 서양인들은 위스키를 병 채로 마시는 광경을 영화에서 많이 봤다. 이는 서양인이 동양인보다 이 효소의 활성이 강한 신체적 특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한국인의 술 소비량은 세계의 등참위에 들어간다.

정리하자면, 술의 생리적 해악은 다음과 같다.

◇ acetaldehyde는 간세포에 toxic하게 작용하여 간경변, 지방간 등을 유발, ​동시에 활성산소도 동반생성 되어 피해를 입힌다.

◇ 에너지대사경로인 TCA cycle를 저해하고 acetyl CoA를 환원하여 acetate를 생성하며 유산도 동시에 만들어 혈액을 산성화한다.

◇ 체내 포도당의 합성(gluconeogenesis)을 저해하여 저혈당이 된다.

◇ 지방산의 합성을 촉진하여 지방간이 된다.

◇ 여성의 경우 남성보다 알콜분해효소의 활성이 낮아 뇌 속의 농도가 높아져 더 나쁜 영향을 미친다. 나이 들수록 효소의 양은 줄어 폐경기 여성의 경우 술의 피해가 더 커진다.

◇ 과할 경우 간과 뇌신경을 마비시켜 사망까지 이르게 한다.

​◇ 알코올은 1군, 대사(代謝)산물인 아세트알데하이드는 2군 발암물질이다.

◇ 뇌신경이 망가져 기억력 깜빡깜빡, 필름이 끊어지며 호흡곤란을 동반한다.

◇ 하루 평균 50g(소주 1병)의 알코올을 매일 섭취하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대장암에 걸릴 위험이 21% 높다. 아세트알데하이드는 대장암 외에도 간암,유방암 등을 유발한다.

◇ 얼굴이 잘 붉어지는 사람은 아세트알데하이드를 잘 분해하지 못하는 사람, 이런 사람의 대장암 발병위험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6배나 높다. 유전적으로 아세트알데하이드를 잘 분해하지 못하는 한국인은 16%가량, 서양인의 1~5%보다 훨씬 많다.

 

2015년 통계로는 15세 이상 우리국민 1인당 술 소비량이 순수 알코올 14.8ℓ정도란다. 20% 소주로 환산하면 약200병에 해당된다. 지금 응애∼하면서 태어나는 갓난애도 산소 호흡기에 연명하는 임종직전의 환자도 당연 포함된다. 술 못 먹는 필자 입장에서는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양이다. 누가 다 마셔댔을까? 혹시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이?

 

이 쯤에서 다시 보는 과거 기사

술과 에탄올에 관한 오해와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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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태호

부산대학교 미생물학과 정년 명예 교수 이태호 입니다. 식품 생명 공학에 관한 연구를 위해 평생을 노력해 왔습니다. 식품에 관한 오해와 진실을 이야기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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