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하루 8잔의 기적? 물은 목마를 때 마시는 것

인체의 60~70%가 물이다. 70kg 체중의 40~50kg이 물인 셈이다. 시중에는 이런 물의 중요성을 빗대 온갖 엉터리이론과 학설이 난무한다. 육각수, 알칼리온수 등 각종 기능성 물이 인체에 어떻다느니, 현대인은 만성적인 물 부족현상이라 하루 2L 이상 마시라느니 등 물 관련 잘못된 정보와 동영상이 넘친다. 정말 그런가 따져보자.

 

 

인체 내 물의 역할

물은 영양성분을 비롯한 생리적 기능을 담당하는 모든 물질의 운송수단이다. 물은 영양성분을 체액에 녹여 각 세포로 운반하고, 대사 및 생리 반응이 수행되는 환경이 된다. 대사 과정에서 생긴 각종 노폐물, 음식과 함께 섭취한 불필요한 성분을 녹여 오줌으로 배설하며 눈물, 콧물, 침, 각종 분비물이 되어 몸을 보호한다. 체온이 오를 때 땀으로 기화열을 뺏어 체온을 낮추는 역할도 담당한다. 동시에 세포의 삼투압을 유지케 하는 중요한 기능도 있다.

물은 세포 내외의 농도를 맞추기 위해 마신다. 혈액, 림프액, 세포간액, 세포질액 속에는 온갖 물질이 녹아있다. 이 물질(주로 염류)의 농도는 약 0.9%다. 혈액 속의 농도가 이보다 더 높아지면 갈증이 생겨 수분을 요구하고, 낮아지면 콩팥에서 수분을 배출해 농도를 조절한다.

혈액의 농도가 세포내액보다 높아지면 갈증을 느낀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 물을 마셔 혈액을 희석해 세포 내와 농도를 맞춘다. 당연히 땀, 침 등으로 소모되는 물의 보충을 위해서도 물을 마실 필요는 있다.

농도가 맞춰지지 않을 경우는 어떤 현상이 벌어질까? 혈액의 농도가 0.9% 이상으로 높아지면 적혈구 등의 세포 내 물이 밖으로 빠져나오게 된다. 이때 걸리는 압력이 삼투압이다. 이런 현상은 모든 세포에 동일하다. 이런 삼투압에 영향을 가장 많이 미치는 물질이 소금이다. 짠 음식이 갈증을 유발하는 이유다.

고염도 음식물을 섭취하면 혈압이 높아지는데 이는 염의 농도를 맞추기 위해 물을 마셔 체액이 늘어났다는 의미다. 체내의 물이 1%만 줄어도 심한 갈증이 일어나고, 5% 정도에서 혼수상태에 이르고, 10%가 넘으면 생명까지 위태로워진다.

 

하루에 필요한 물의 양은?

정해진 양은 없다. 하루에 마시는 물의 양은 기후, 운동 여부, 신체조건, 먹은 음식의 양과 종류에 따라 달라진다. 그런데 신체 내 물의 중요성을 대충 알아챈 반풍수가 하루에 물 7~8잔, 2L 이상 마실 것을 권장한다.

식사 전 30분, 식사 후 30분 등 하루에 7~8번 마시는 방법과 양까지도 알려준다. 무슨 헛소리를! 물은 마시고 싶을 때 마시면 된다. 목이 마르지도 않는데 일부러, 혹은 무리하게 들이켤 필요까지는 없다. 물론 열이 나거나 특별하게 병적인 환자를 제외하고는.

이런 가설은 2007년 영국의 한 저널이 제기한 믿거나 말거나 한 주장에서 비롯됐다. 저자도 기사의 내용이 잘못 전달됐다고 정정 보도를 내기도 했다. 엉터리 주장이 잘못 전달된 대표적인 사례로 거론된다. 2018년 1월 12일 뉴욕타임스에도 ‘No, You do not have to drink 8 glasses of water a day’라는 제목의 글이 실렸다. “건강에 대한 잘못된 상식 가운데 아마도 불멸의 지위를 얻은 게 있다면, 하루에 꼭 물 8잔을 마셔야 한다는 거다. 결론부터 말해서 이는 사실이 아니며 과학적으로 근거가 없는 주장이다”라고 했다. 10여 년 전 영국의 BBC가 ‘허구로 밝혀진 7가지의 의학 미신‘이라는 타이틀로 보도한 기사도 있다. ‘하루에 물 8잔을 마시면 건강해진다’가 가장 첫 번째로 꼽혔다.

 

 

그 이유의 연원은 1945년 식품영양위원회에서도 나온다. ‘사람에겐 하루에 2.5L 정도의 물이 필요하다’는 문장이 보고서에 있어서다. 그런데 이 문장만 놓고 보면 정말 쉼 없이 물을 마셔야 할 것 같은데, 바로 뒤이어 오는 문장은 이렇다. “우리가 섭취하는 음식에 있는 수분으로도 필요한 물의 대부분이 충당된다. 과일, 채소를 먹는 것, 주스, 맥주, 심지어 차와 커피를 마시는 것도 수분을 섭취하는 일이다. 식사에 곁들이는 물만으로도 충분하다”라고.

이에 더불어 우리가 섭취한 영양성분도 대사되어 물과 탄산가스로 변한다. 게다가 우리의 콩팥도 체액의 농도를 맞추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계속하고 있으니 여간해서는 심각한 탈수현상이 일어나지 않는다.

물 마시는 것 자체가 나쁘다는 말이 아니다. 가장 건강한 음료를 꼽으라면 주저 없이 물을 든다. 하지만 물을 마시는 것 외에도 수분을 섭취하는 방법에는 수십 가지가 있다. 갈증을 느끼기도 전에 이미 몸에 수분이 부족해지면 어떡하나 걱정할 필요가 없다. 우리 몸은 탈수증세가 오기 한참 전에 이미 수분을 보충하라는 신호를 보내니까. 물을 많이 마시면 피부가 더 촉촉해지거나 건강해 보이고 주름이 줄어든다는 주장을 뒷받침할 만한 과학적 근거는 아직 찾지 못했다.

물을 많이 마신다고 건강해지는 건 아니다. 몸에 수분이 부족한 상태를 일컫는 ‘탈수 증세’는 질병이나 격렬한 운동으로 많은 땀을 흘렸을 때, 물을 마시지 못하는 상황일 때 심각해질 수는 있다. 하지만 간단한 탈수증세는 대부분 미리 징후가 나타나기 때문에 심각한 상황은 벌어지지 않는다.

결론적으로 하루에 사람이 마셔야 할 정해진 물 권장량은 없다. 음식의 종류, 환경, 체질, 생활 습관에 따라 마셔야 할 물의 양이 다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물이 아니라도 마실 거리는 다양하다. 그런데도 현대인은 만성적인 탈수 증세에 시달리고 있다고 하면 말이 안 된다.

학계에선 물이 건강을 유지하는데 필수적인 요소이긴 하지만 물의 과다섭취가 가져다주는 긍정적 효과는 과학적으로 증명된 것이 거의 없다고 주장한다. 오히려 물을 너무 많이 마시면 부종이나 저나트륨증에 빠질 수도 있다. 체내에 수분이 너무 많으면 오히려 건강에 해롭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물 중독(Water intoxication)‘에 걸려 사망에 이를 수도 있다는 주장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물을 많이 마시면 건강에 좋다고 알려졌을까. 의학계에서는 음료기업의 상술을 원인으로 꼽고 있다.

 

결론 한마디. 물은 목마를 때 마셔라.

세간에는 좋은 물, 나쁜 물, 기능성 물 운운하며 물에 대해 말이 많다. 육각수, 이온수, 전해환원수, 수소수, 탄산수 등 되지도 않은 다양한 기능성 물이 넘쳐난다. 소비자들을 물 먹이는 이런 사기성 상품에 대해서는 다음에 다룰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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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태호

부산대학교 미생물학과 정년 명예 교수 이태호 입니다. 식품 생명 공학에 관한 연구를 위해 평생을 노력해 왔습니다. 식품에 관한 오해와 진실을 이야기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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