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이식에 성공

기억의 저장 방식을 설명하는 기존 이론에 새로운 관점을 제기하는 연구 결과가 어제 (5월 14일) 발표되었습니다. RNA를 통해 한 개체로부터 다른 개체에 기억이 전달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RNA”입니다.

RNA는 정보 전달 물질(mRNA)이자 코돈과 아미노산의 짝을 연결해 주는 물질(tRNA), 그리고 각종 세포 내 조절자로 더 널리 알려져 있는데, 이제는 RNA가 기억에도 관여할 가능성이 제기되었습니다. 이쯤 되면 RNA가 하는 기능보다 하지 못하는 기능을 찾는 것이 더 빠를지도 모르겠습니다.

신경과학회지의 온라인 버전인 eNeuro에 발표된 이 논문에서 UCLA의 연구진은 군소 (혹은 바다 달팽이, Apylsia)를 대상으로 재미있는 실험을 하였습니다. 약 20,000개의 뉴런을 가진 군소는 신경 생물학의 모델 생물로 많이 활용되는 단골 손님입니다.

바다 달팽이, 혹은 군소 (Aplysia dactylomela)

기억의 주입

연구진은 이 군소에게 일정한 시간적 간격을 두고 전기 자극을 반복적으로 주고 군소가 움추러든 상태로 머물러 있는 시간을 측정하였습니다. 일반적으로 자극을 받아 본 적이 없는 군소는 약 1초간 움추러든 상태로 있다가 원상 복귀하는 반면, 지속적으로 자극을 준 군소는 약 50초 동안 움추러 든 상태로 있는 것을 확인하였습니다. 군소에 학습을 통한 “기억”을 주입한 것입니다. 이 기억 주입의 과정을 “sensitization”이라고 합니다.

 

RNA를 통한 기억의 전이

이후 sensitization이 된 군소로부터 RNA를 추출하여 그렇지 않은 달팽이에게 주입하였더니 이 달팽이는 예전에 전기 충격을 받은 경험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약 40초동안의 움추러든 반응을 보였습니다. sensitization이 되지 않은 군소로부터 추출된 RNA 를 주입 받은 군소(대조군)는 자연상태의 군소와 동일한 수준인 1초 정도의 움추러듦을 보였습니다. 학습된 기억이 전혀 다른 개체에게 전달된 것이었으며, 기억 전달의 주체는 RNA라는 것을 확인한 것입니다.

 

뉴런 세포안의 RNA가 기억 전달의 매체로 확인

이것이 신경세포에서의 변화가 아닌, 단순한 근육 세포에서의 어떤 발현 변화에 의한 움추러듦일 가능성도 있습니다. 따라서 신경 유래의 RNA가 그 원인임을 확인하기 위한 검증이 필요합니다. 또 이 반응을 좀 더 세부적인 레벨인 세포 단위에서 확인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연구진은 추가 실험을 설계했습니다.

일단 여러개의 배양 접시에 sensitization이 되지 않은 군소의 뉴런 세포만을 뽑아서 배양하였습니다. 그리고  sensitization이 된 달팽이에게서 뉴런 세포와 운동 세포를 분리한뒤, 각각에서 RNA를 추출하여 이 접시들에 주입한 후 전기 자극을 주었습니다. 그 결과 sensitization이 된 달팽이의 뉴런 세포에서 추출한 RNA가 들어간 배양 접시의 세포들만 전기 자극에 강한 반응을 나타내고 운동 세포에서의 RNA가 주입된 접시의 세포들은 아무 반응이 없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이 기억의 전달 주체가 “뉴런 세포에서 존재하는 RNA”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순간이었습니다.

이 실험을 통해 RNA 또한 기억의 일부를 담당할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일반적으로 기억은 뉴런 세포에 존재하는 시냅스들의 연결 방식이나 강도의 형태로 저장된다고 알려져 있었는데, 뉴런 세포의 핵 안에 주로 존재하는 RNA들을 통해서도 기억이 존재할 수 있으며, 심지어는 이 기억을 다른 개체에게 전이시키는 것도 가능하다는 것을 확인한 것입니다.

물론 이 실험만으로 아직 기존 가설을 완전히 반박하기는 어렵습니다만, 기억의 저장은 우리가 생각하는것보다 훨씬 더 복잡한 메카니즘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해당 논문은 이곳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웹사이트, PDF)

이 쯤에서 다시 보는 예전 기사

살아있는 뇌를 보신 적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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