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탕이 중독이라면 이 음식은?

한 맛 칼럼니스트가 시작한 설탕의 유해성 논쟁이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처음에는 백종원씨를 향하던 펜 끝이 이제 국내 식품학의 대가이시자 국립대를 정년 퇴임 하셔서 세상에 무서울 것 하나 없이 쓴소리를 날리시는 이태호 교수님에게까지 날아들었다.

내가 그의 모든 글들과 방송을 보지 못해서 그의 주장의 모든 과학적 배경을 안다고는 이야기 할 수 없지만, 현재까지 소위 과학계 인물 두 명이 그의 주장을 뒷받침 하기 위해(?) 소환 된 것으로 보인다. 한 명은 UCSF 교수인 로버트 러스티그. 설탕의 질병과의 연관성을 주장하는 인물이다. “칼로리라고 모두 다 같은 칼로리가 아니다”라는 칼로리 개념 발견자가 울고 갈 비과학적 명언을 남겼다. 그의 주장은 지난 글을 통해 반박한 바 있다.

니콜 아베나 (Nicole Avena)

이번에는 새로운 인물이 한명 등장했다. 니콜 아베나 (Nicole Avena). 2006년 미국 아이비 명문 프린스턴 대학에서 박사를 받고 뉴욕의 러커펠러에서 포닥을 하신 분이다. 저자 및 공저자로 약 77편의 논문을 냈으며, 논문 목록을 보면 약 15년간의 설탕 타도 외길 인생을 살아 오셨음을 알 수 있다. 주요 관심사는 설탕 타도, 다이어트법, 임산부 영양 등이다. 현재는 기업이나 개인의 식단 컨설팅을 해 주며 각종 TV 출연과 강연등으로 바쁘게 살고 계신다.

그녀의 대표작 “쾌락적 먹기 – 음식이 주는 즐거움이 너의 뇌와 행동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음식이 주는 즐거움을 멀리 해야 건강하게 살 수 있다는 주장이다.
뭔가 중세시대 금욕주의 사상의 현대판 식품 버전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은 나 뿐인가.

CV(이력서)를 뒤져 봐야 알 수 있을 만한 이런 자세한 경력을 어떻게 알 수 있냐고? 그분의 이름을 딴 홈페이지에 이런 내용이 버젓이 있기 때문이다.

그녀의 홈페이지. 누가 박사 아니랄까봐 앞게 Dr.를 반드시 붙인 drnicoleavena.com 이라는 도메인까지 확보하셨다. 구글로 검색하면 유사품에 주의하세요 같은 느낌의 “Official Website”라는 말이 크게 눈에 뜨인다. 홈페이지에서는 그녀의 책을 바로 구매하거나 식단 컨설팅을 원하는 사람들이 그녀와의 상담을 신청할 수 있다.

아직 로버트 러스티그 만큼의 유명세는 없으신지 그녀만의 위키피디아 페이지는 없지만 이 또한 멀지 않은 것 같다.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을 통해서도 그녀를 만날 수 있다.

로버트 러스티그와는 상부상조하는 공동 전선을 이루고 있다. 자신의 페이스북 페이지에서 Nicole Avena를 직접 언급하는 로버트 러스티그. 한 명은 설탕의 중독성을, 또 다른 한명은 설탕의 건강 위험성을 주장한다. 중독도 되면서 건강에도 나쁜 설탕은 중독성도 없고 건강에도 특별한 해가 없는 LSD보다도 나쁜 물질인가보다.

TED를 통해서도 그녀의 음성을 만날 수 있다. 그 맛칼럼니스트가 언급한 바로 그 영상이다. 본인의 주장과 일치하는 자료라고 하면서도 본인은 이 영상보다도 더 먼저부터 이 주장을 하였다는 깨알 같은 디테일이 돋보인다.

그 분의 아래 영상 추천사

그녀의 주장은 설탕이 히로뽕, 아편과 같은 강력한 중독을 유발하는 물질이라서 설탕을 계속 먹게 되면 자제력을 잃을 정도의 설탕 중독에 빠지게 된다는 것이다. 한계효용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는 모양이다. 신경 전달 물질이자 성취감과 보상감에 관여하는 물질인 도파민은 이 영상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단어이다. 도파민에 대해서는 기회가 된다면 나중에 한번 풀어 보겠다.

그녀의 논문

그녀의 논문들 중 가장 핵심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논문은 2008년에 발표한 다음 논문인 것으로 보인다.

설탕 중독의 증거 : 비정기적인 과도한 양의 설탕 섭취가 신경과 행동에 미치는 영향

제목부터 의미심장하다. 설탕 중독의 증거다. 그 전까지는 가설로만 존재하던 것을 증명해 냈다는 것이다. 실험 대상은 쥐(rat)였다. (쥐에게서 사실인 것이 인간에게서도 사실인지 여부는 차치하자.)

실험 방법은 다음과 같다. 그녀는 쥐를 12시간 동안 굶겼다. 그리고 이후 동안 설탕물과 쥐 먹이(chow)를 충분히 제공했다. 이렇게 한 달여간을 지속한 후 쥐들의 움직임과 분자생물학적 분석을 통해 이 쥐들이 약에 중독된 것과 동일한 양상을 나타냈다고 결론 지었다.

그런데 실험 설계를 한번 들여다 보자. 일반적으로 쥐 사육을 할 때에는 먹이와 물을 충분히 두고 쥐가 배고프면 알아서 먹도록 한다. (ad libitum, 일명 애드립으로 먹이를 먹는다고 한다.) 크기가 작은 동물일수록 하루에 여러번 씩 자주 먹다보니 하루에 시간 정해 놓고 삼시 세끼 주는 방식으로는 키울 수가 없기 때문이다. 몸에 에너지를 저장할 수 있는 공간 자체가 부족하다. 몸집이 커다란 동물들이야 몇 일 혹은 몇 달을 굶다가 한번에 폭식해서 살기도 하지만, 쥐와 같이 몸집이 작은 동물은 그렇게 오랜 굶음을 견디지 못한다.

그런데 이런 쥐에게 무려 12시간동안 아무것도 주지 않았다. 음식은 커녕 물도 말이다. 쥐를 빈사와 탈수 직전의 상태까지 몰아 놓고서는 갑자기 설탕물과 (어느 정도의 농도인지는 논문에 나오지 않았다.) 음식을 12시간 동안 마음껏 먹을 수 있도록 제공하였다. 그리고 이 사이클을 무려 한 달 동안 반복했다.

이런 상황이라면 음식과 물이 무엇인지에 상관 없이 환장하는 것이 당연하다. 칼로리를 섭취할 수 있는 기회가 왔을때 최대한 몸에 축적해 두는 것은 오랜 진화가 모든 생명체의 유전자에 박아 놓은 본능이다. 쥐의 12시간은 사람으로 치면 대충 몇일 정도는 된다. 몇 일동안 금식을 한 사람에게 띄엄 띄엄 밥과 설탕물을 준다면, 여기에 중독에 가까운 반응을 하는 것은 당연하다.

지난번 로버트 러스티그의 어처구니 없는 설탕 실험만큼이나 실험의 기본도 갖추지 못한 것을 논문이랍시고 내 놓은 것이다. 그리고 무슨 논문에 Material and method도 없다. 달랑 한 문장으로 단락을 실험 방법이라고 써 놨다. 게다가 어느 정도 농도의 설탕물을 제공했는지, 쥐들이 실제로 먹은 설탕의 양은 얼마나 되는지 등과 같은 기본적인 사항들도 적혀있지 않다.

가운데 있는 달랑 한 단락이 실험 설계에 관한 모든 설명이다.

설탕이 그렇게 위험하다면, 이 음식은?

현재까지 그 맛칼럼니스트의 설탕 혐오 사유는 대략 세 가지 정도 되는것 같다. 일단 건강에 안좋고 (로버트 러스티그), 중독성을 일으키고 (니콜 아베나), 진짜 맛있는 것을 맛있게 느끼지 못하게 한다 (본인, 저 위 인용한 문단) 이 세가지를 사유를 섞어 가며 설탕의 위해성을 주장하니 정확히 무엇 때문에 설탕이 싫다는 것인지 조금 헷갈린다.

이런식으로 따진다면 우리가 중독을 인식하지 못한 채 매 끼니에 올라오는 아주 위험한 음식이 있다. 바로 김치다. 한식 밥상에서 김치 없는 모습은 상상하기 쉽지 않다. 해외 여행 일주일 다녀와서 밥 한 숟가락 위에 올린 김치를 입에 넣으며, 아… 이제 진짜 식사지.. 라고 생각 하는 사람 적지 않을 것이다. 하루만 김치를 못먹어도 금단증상 보이는 사람들 많다. 김치가 없으면 최소한 단무지라도 먹어서 그 김치 갈증을 해결해 주어야 할 정도로 김치 중독이다.

생으로도 먹고 구워서도 먹고 끓여도 먹고 전에도 넣어 먹고 라면에도 곁들여 먹으며 심지어는 막걸리와도 같이 먹는다. 김치만 먹어도 맛있지만 다른 반찬에 곁들여 밥과 함께 먹을때 더 맛있어 과식을 종용한다. 특히 건강에 안좋은 음식의 대명사인 라면과는 찰떡 궁합이다. 각종 탄수화물, 알코올, 나트륨, 다이어트의 적이라는 영양가 없는 칼로리(?)의 섭취를 강력 촉진하는 나쁜 음식이다. 심지어는 기름 진 느끼한 음식의 거부감을 신선한 청량감으로 해소시켜 심혈관 질환의 적이라는 포화지방산도 맛있게 섭취할 수 있게 한다. 한국인의 뇌에서 도파민을 펑펑 터뜨리는 중독의 원흉이다. 오죽하면 김치 없이는 못살아 정말 못살아라는 노래까지 유행한 적이 있다. 아래 사진만 보아도 입에 침이 고이는 당신은 이미 파블로프의 개가 아닐지 의심해 보아야 한다.


김치는 이미 심각한 사회 문제다. 심지어는 외국 나갈 때 현지 검역 당국의 규정을 어기는 불법행위까지 해 가면서 몰래 싸 가지고 간다. 이 정도면 전 국민적 심각한 중독 아닌가?
김치도 가끔 먹어야 맛있는 것이다. 매 끼니 식탁에 올라오면 김치의 참 맛을 느낄 수 없게 된다. 김치를 우리 식탁에서 줄이자. 그게 김치를 더 맛있게 먹는 법이다. (이미지소스)

만드는 과정은 또 얼마나 복잡하고 어려운가. 자동화가 어려워서 어마어마한 노동력이 투입된다. 혼자 만들기는 어려워서 품앗이 하듯이 몇몇 지인들이나 식구들이 모여서 크게 만들어 나누어 가진다. 이 식구들이 모이기 위해 이동하며 내뿜는 이산화탄소는 지구 온난화에 악영향을 미친다. 오고 가다 교통 사고라도 나면 더 큰일이다.

게다가 김장철의 배추는 투기의 온상이다. 이 시기의 배추는 원유나 금에 비교 될 정도여서 배추 파동, 금치라는 말이 낯설지 않을 정도다. 이게 다 어마어마한 사회적 비용이다.

이쯤 되면 국가가 나서서 김치 제한 정책을 걸어야 한다. 하루에 1인당 섭취할 수 있는 최대 김치 양을 정해 주어야 한다. 혹은 김치세를 도입해야 한다. 한국담배인삼공사처럼 한국김치깍두기공사를 만들어 모든 김치의 제조와 판매를 국가가 독점하고 가격을 컨트롤 해야 한다. 우리 나라 사람들에게서 발병 1위인 위암의 원인이 김치일지도 모른다. 국가가 식탁에 개입해야 하는 이유다.

자, 김치가 더 위험한가 설탕이 더 위험한가?

논문을 보자. 유튜브와 테드가 아니라.

“테드 과학자”라는 것이 정확히 뭔지 모르겠지만, 과학자의 입에서 나온 말이라고 해서 다 신빙성이 있는 것은 아니다. 테드 아니라 노벨상 수상자가 나타나도 헛소리를 지껄이면 바로 축출되는 곳이 과학계다. 스토리 텔링만 잘 하면 불러서 아무런 검증 없이 자기 이야기 떠드는 흥미 위주의 테드를 과학적 증거라고 내미는 것은 그의 머릿속에 구성되어 있는 주장의 배경 논리가 얼마나 과학적으로 빈약한 기반위에 지어진 것인지를 보여준다. 특히 일부 상업화된 과학계 종사자들이 미국인을 대상으로 하는 강연들을 가지고 우리 나라의 현실에 적용하려는 것은 매우 비상식적이다. 어제 미국에서 총기 난사 사건이 발생했다고 우리 나라의 총기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과학 연구의 결과는 거의 대부분 논문의 형태로 저널이라는 미디어를 통해 유통된다. 하지만 논문의 형태로 저널을 통해 배포되었다고 해서 다 과학적이지는 않다. 이번에 문제가 된 상위 1% 과학자 사건을 보더라도 이 논문 시장이 얼나마 교란되기 쉬운 곳인지를 알 수 있다. 필자 개인적으로 CNS로 대표되는 대형 저널들의 독점적 지위에 대해서 비판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CNS를 무시하지 못하는 것은, 거기에 실릴 정도의 논문이라면 치열한 비판을 다 이겨낸, 나름 갖출 것은 다 갖춘 제대로 된 논문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아직까지 CNS의 영향력을 완전히 무시하지 못하는 현실적인 이유이다. (여담이지만 CNS에 부여된 이 힘의 원천은 peer review 해 주는 과학자들이다. 과학자들이 담합하여 무상 peer review 서비스를 중단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쇼닥터들

과학자라는 직업은 사실 경계와 정의가 다소 불투명하다. 의사, 교사, 변호사와 같이 제대로 된 자격증 같은 것도 없다. 과학을 통해 벌어 먹고 사는 사람이라고 정의 내리기에는 범위가 너무 넓어진다. 그러다보니 보통은 학교나 연구소에 소속되어 과학 관련 연구를 전업으로 하고 있는 사람 정도가 과학자로 인식된다. 주로 대학 교수들이 이에 해당한다. 그러다보니 유명한 대학을 나와 교수 타이틀을 달고 있으면 다 자연스레 과학자로 간주되고 그들이 하는 모든 말이 과학적이라 여겨지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이들의 말에 실린 권위는 하나의 권력이 되고 이윤 추구를 할 수 있는 작은 길이 열린다. 이 틈새를 이용하여 대중들의 주목을 끌 수 있을만한 소재를 (주로 우려 마케팅) 큰 소리로 외치며 그 과정에서 수입을 올리는 사람들을 일명 쇼닥터라고 한다.

이런 사람들을 제대로 된 과학자들로부터 솎아 내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대략적으로 구분할 수 있는 방법이 있기는 하다.

첫째, 사회적으로 큰 우려가 섞인 주장을 “독자적”, 혹은 일부 소그룹의 사람들과 한다. 지구 온난화를 떠올려보자. 그것을 외치는 과학자들이 많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누구 하나 대표적인 이름이 떠오르는지 한번 생각해 보라. 이런 확실한 사실들은 보통 여러 과학자들의 컨센서스에 의해 나오기 때문에 스타 과학자 한명이 주목받지 못한다. 반면 이런 쇼닥터들은 자신의 이름이 곧 브랜드 이미지이다. 모두가 예스 라고 할 때 혼자 도도히 노 라고 말하는 사람이 더 주목 받기 쉽다. 이들은 이것을 적극 이용한다. 같은 우려 마케팅을 하는 동종업계 종사자라 하더라도 서로가 경쟁의 상대이다보니 이들은 상생 관계가 확실할 때에만 같이 일한다.

둘째, 본인의 이름을 앞세운 홈페이지를 가지고 있는 경우가 꽤 많다. 절대적인 기준이 될 수는 없겠지만, 본인의 브랜딩이 중요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이름 도메인은 기본이다. 보통 이런 홈페이지들에서는 자신의 저서나 관련 제품 판매에 열심이다. 보통 제대로 된 과학자의 이력은 그가 속한 학교나 연구소의 홈페이지 한 섹션에서 찾아 보기가 더 쉽다. 본인 이름의 도메인을 가진 홈페이지를 운영할 정도의 사람은 그럴만한 이유가 있는거다. 연구에 종사하는 제대로 된 과학자는 그럴 이유가 별로 없다.

셋째, 이해관계가 얽혀있는 주장을 한다. 로버트 러스티그나 니콜 아베나나 그들의 다양한 강연 활동과 저서 집필, 또 컨설팅 서비스로 볼때 그들의 주장은 그들의 수익 사업과 연관되어 있다. 작게는 우려 마케팅을 이용한 책 판매 및 강연, 그리고 유명세를 이용한 각종 수익 사업으로 연결되는 주장을 한다.

넷째, 본인의 학력이나 학위, 소속을 매우 크게 이야기 한다. 자신의 주장과 지식, 과학적 논리성만으로는 마케팅 파워가 부족하기 때문에 주로 커다란 이름을 뒤에 싣는다. 심지어 니콜 아베나의 경우는 자신이 강연을 한번이라도 나갔던 유명한 학교들은 모두 다 홈페이지에 로고를 심어 놓고 있다.

그녀의 홈페이지 발췌

과학계에 몸 담았던 경력을 근거로 자기 개인 수익 사업을 추구하는 쇼닥터들. 이들이야말로 적폐이며 사회적 퇴출 순위 1순위다. 이들의 말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현혹되어 헛돈을 쓰는지 생각해 보자. 사회적으로 자신의 말을 들어주는 사람이 적지 않은 사람이라면 적어도 쇼닥터와 그렇지 않은 사람 정도는 구분할 수 있는 안목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

대중에게 팩트를 전달하고자 할 때에는 유튜브나 테드가 아닌 논문을 읽자. 신문 기사도 못믿을게 많다. 놀라운 소식이 신문에 나왔다면 그 배경 논문을 반드시 찾아 볼 필요가 있다. 말하면서도 안타깝지만 그래도 CNS급에 나온 논문이라면 로직 상 큰 문제가 없으면서 사회적 파급력이 크거나, 다른 동료 과학자들의 치열한 비판을 이겨 내고 빛을 본, 어느 정도 수준이 되는 논문들이다.

영어만 할 줄 알면 사실 논문 읽는게 그렇게 어렵지는 않다. 데이타 해석이 어렵다면 맨 처음 나오는 초록 정도만 천천히 읽어 봐도 대략 무슨 말을 하려는지는 알 수 있다. 이해가 안가면 주변의 과학자에게 물어보자. 그거 친절하게 설명 안해 줄 과학자 없다. Ted나 유튜브 강연을 맹신하지 말고 논문을 읽자. 적어도 대중을 상대로 “과학적”인 증거를 제시하고 싶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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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KD

나는 누구고 여긴 어딘데 나는 왜 유전자에 관한 글을 쓰고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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